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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관, 무관

[무관,문관]울산의 전설적인 명사수, 이태남(李泰男)

작성자태홧강|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조선 숙종 시절, 울산 방어진 목장은 왕실의 군마를 키우는 국가의 핵심 기지였지만, 동시에 숲속에서 굶주린 호랑이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공포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툭하면 나라의 말들이 물려 죽고 백성들이 다치니 조정의 시름이 깊었지요.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울산의 토박이 명사수, 이태남(李泰男)이었습니다.

이태남은 본래 성품이 담대하고, 백보 앞의 버들잎도 활로 꿰뚫는 울산 최고의 신궁(神弓)이었습니다. 방어진 일대의 호환(虎患)이 극에 달하자, 그는 자원하여 호랑이를 잡는 특공대인 '산행장(山行將)'의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의 이름 속 '태남(泰男)'이라는 글자처럼, 그야말로 울산의 거대한 장부이자 기둥이었던 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던 방어진 목장에서 집채만 한 호랑이 한 마리가 목장 담벼락을 넘어와 말 세 마리를 순식간에 물어 죽이고 숲으로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군사들이 두려움에 떨며 감히 숲으로 들어가지 못할 때, 이태남은 단 세 명의 착호수(호랑이 잡는 포수)만 이끈 채 붉은 노을이 지는 방어진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호랑이의 눈빛에 기가 눌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내 화살이 놈의 심장을 꿰뚫을 때까지 절대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마라!" 이태남은 부하들을 엄하게 단속하며 숨을 죽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을 뒤흔드는 포효와 함께 피비린내를 풍기는 호랑이가 맹렬하게 덤벼들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이태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시위를 당겼습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호랑이의 기세를 가르며 정확히 미간에 박혔고, 맹수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거꾸러졌습니다. 방어진 목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거대한 재앙이 울산 청년 이태남의 화살 한 발에 종지부를 찍은 순간이었습니다.

이 눈부신 활약상은 즉시 울산도호부를 거쳐 한양의 조정까지 보고되었습니다. 임금은 변방의 작은 고을 울산에서 나라의 재산인 군마를 지켜내고 백성의 눈물을 닦아준 그의 공로를 크게 치하하며, 변방의 무관 직첩을 내리고 포상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태남은 평생을 방어진 목장과 울산의 산야를 지키며 백성들에게는 인자한 이웃으로, 굶주린 맹수들에게는 저승사자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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