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기 병인양요(1866) 때 강화도 정족산에서 큰 공을 세움
김기명은 울주군 삼남면 신화리 출신이다. 자는 성오(聲五)요. 호는 화계(華溪)이며 판관(判官) 김언원(金彦元)의 후손이다.
고종 3년(1866)의 병인양오(丙寅洋擾) 때 훈련초관(訓練硝官)으로 천총(千摠) 양헌수(梁憲洙)의 휘하에서 참전하여 강화도 정족산성(鼎足山城)에서 불란서군과 싸워 크게 이기고 적을 물리쳤다.
소요가 끝나자 고종이 춘당대(春塘臺)에 친히 나와 불란서의 도적들을 멀리 달아나게 하였음은 정족산성의 승첩에 있는 것이니 이때 장광(將官) 장교(將校)들의 공적을 품계하라 하였다.
이에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영군초관(領軍硝官) 김기명은 싸움에 다달아 한걸음의 후퇴도 없이 성을 뛰쳐나가 추격하여 도적들을 쏘아죽여 없앴다고 하였다.
이러한 군공으로 1등공으로 영장(營將)에 승진하고 벼슬이 다대포첨사(多大浦僉使)에 이르렀다.
공(公)의 위패는 삼남면 신화리 마산(馬山)마을에 있는 김녕김씨 문중의 재실, 경의재(오른쪽 사진)에 모셔져 있다.
한편, 싸움에 임하여 적암포(赤巖浦)를 건너갈 때 읊은 시가 전해온다.
돛달고 夜羊에 10리를 가니
將軍威德은 人和로 임일세
精兵 5百이 찬강을 건너며
뜻품고 쇠노고등 치며 노래 부르네
<자료출처> '내고장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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