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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스 퍼온글

작성자천용진|작성시간10.10.09|조회수721 목록 댓글 0

시몽님의 글

 

 

그까짓 100만원?

 

 

“엊그제 아주머니 TV에 나오셨데.”

“ 아~ 이번 비로 집에 물이 좀 들어서 신고하러 갔다가 그만....”

“그래, 피해가 많았나요?”

“아니 이만큼(발목 위를 가리키면서) 물이 차서 냉장고가 고장 났어요.”

“그래도 수재보상금은 좀 받으셨겠네.”

“그까짓 100만원을 주는데... 그거 뭐...”

엊그제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가 채소코너를 임대해서 장사하는 아주머니와 나눈 대화다.

 

TV에서 얼굴을 봤다고, 또 인터뷰를 잘하더라고 인사치레 한 마디하려 했다가 ‘그까짓 100만원’이란 말에 내가 그만 열을 받고 말았다.

정색을 하고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주머니 집에 물이 찬 것이 정부의 책임인가요? 물론 하수 관리를 잘못한 점도 있겠죠. 그러나 근본 원인을 따지자면 하늘 탓이고, 아주머니가 미리 대비하지 못한 책임도 적지 않죠.”

대뜸 책임문제부터 들먹이자 대꾸할 말이 궁색했던지, 아니면 시끄러워서 피하는 것인지 아주머니는 조용해졌다.

“아주머니, 정부에서 수재를 당한 국민에게 100만원을 줬으면 감사할 일이 아닌가요? 국민이 수재를 당했다고 현금으로 이렇게 즉각 보상하는 나라가 세계에 몇 나라나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셨나요? 나라가 이만큼 사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내 분이 풀리지 않아서 삼가 했어야 할 말까지 그냥 쏟아 놓고 말았다.

“아주머니가 여기서 하루에 버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100만원을 ‘그까짓...’이라고 하다니요.”

내 훈계(?)가 심했나보다. 그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손님들 쪽으로 가 버렸다.

 

내가 이렇게 심한 소리를 했지만 나도 그 아주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안다.

요즘 정부시책에 고분고분 수긍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는다. 속으로는 고마워도 일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콧방귀부터 뀌어야 한다. 그래야 의식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정부의 발표도 일단 부정부터 하고 본다. 아니면 최소한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듯해야 남이 모르는 뭔가를 좀 아는 사람으로 주위의 관심을 끌 수 있다. 그래서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합동 조사를 통해 발표한 천안함 폭침爆沈사건을 놓고도 이상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그까짓...’하며 콧방귀를 뀐 것도 다 이런 우리의 사회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끼리라면 이정도 엇박자 정도는 양념으로 받아드리고 살 수 있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딴 길로 간 탕자는 어느 시대에도 있었고 또 어디에도 있게 마련이다. 성경 속의 탕자도 참고 기다렸더니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는 3대 세습이라는 희세稀世의 왕조를 동족이라며 머리 위에 얹고 살고 있다. 그들은 우리정부와 국민 사이에 난 조금마한 틈으로도 황소바람을 불어 넣어 사회를 어지럽힐 기회만을 찾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정부를 이렇게 소 닭 보듯 경원시하는 풍조를 어느 때까지 보고만 있어야 하겠는가?

 

그래서 그 슈퍼 아주머니에게 지나친 소리를 해댔는가 보다.

내일은 사과도할 겸 찾아가서 그 비싸다는 금채金菜(?)라도 좀 사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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