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죽음,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 / 이덕진
―오진탁 저,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청림출판, 2004)―
1.들어가는 말
생사학(生死學, Thanatology)이란 죽음에 관한 문제를 학제적(學際的)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즉 철학·의학·심리학·민속학·문화인류학·종교·예술 등 인류문화의 모든 면에서
죽음에 접근하고자 시도하는 학문이다.
주지하듯이 본격적인 의미의 생사학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되었다.
1965년 글라세(Glaser)와 스트라우스(Straus)의 공저인 《죽음의 인지(Awareness of Dying)》가
아마 이 분야 최초의 연구서일 것이다.
이후 큐불러 로스(Elisabeth Ku?ler Ross)가 《죽음의 순간(On Death and Dying)》을 발간하자
전 세계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로스 박사의 저작을 통하여 현대인들은
죽음이 하나의 학문으로써 연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깊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저자는 거의 10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학자로서는 드물게, 생사학에 천착해왔다.
저자는 ‘생사학이나 죽음 준비교육은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준비를 통해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변모시키도록 도모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을 준비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고 여겨,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더욱 의미 있는 죽음,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아서 이 일에 매진해왔다고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아직 생소한 우리나라에서 저자의 연구는 개척자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본다면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은 척박한 인문학의 풍토와
생사학에 대한 몰이해라는 이중의 산고 속에서 태어난 옥동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자는 어렵게 얻은 생사학 연구서를 독서하게 될 기회를 얻었음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동시에 우리 학계에서는 아주 귀한 이 생사학 전문가가
계속 연구에 매진하여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내놓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서평]죽음,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 / 이덕진
―오진탁 저,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청림출판, 2004)―
2. 이 책의 구성과 내용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은 읽는 이의 견해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 책이다.
또 그것은 저자와는 다른 독자 자신만의 권리일 수도 있다.
평자는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았다.
고심 끝에 하나의 관점을 세워서 독서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 책의 제목에 충실하게 독서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하는 기본적인 사유체계는 ‘죽음과 삶의 함수관계’가 된다.
다시 말해서 삶과 죽음은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의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평자는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을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므로,
어떻게 하면 우리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삶의 고귀함을 유지한 채로 저 세상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읽기로 하였다.
이렇게 골격을 세워놓고 볼 때,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중심을 두고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1장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안락사에 대한 논란’,
2장 ‘죽어 가는 사람의 여섯 가지 반응’, 3장 ‘데레사 수녀의 니르말 흐리다이와 호스피스’,
8장 ‘죽음, 끝이 아닌 이유’에 있게 된다.
나머지 4장 ‘낙태, 그 침묵의 절규’, 5장 ‘자살은 사회적 살인이다’,
6장 ‘사형수의 마지막 증언’, 7장 ‘지구촌 최대의 당면과제, 에이즈’는 각론으로서,
죽음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된다.
따라서 평자는 담론의 중심을 1장, 2장, 3장, 8장에 두고자 한다.
이 담론의 중심에는 저자의 독특한 생사관이 있다.
저자는 그의 아주 드물게 ‘독특한’ 생사관을 바탕으로 안락사 문제나 호스피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낙태·자살·사형제도·에이즈 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저자의 독특한 생사관이 들어있는 제 8장을 우선 이해하여야 한다.
8장에서, 저자는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단정한다.
동시에 저자는 죽으면 끝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현대 과학과 의학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불완전하고 부족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인간의 부족한 안목으로
죽음을 연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세계의 모든 위대한 영적 전통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분명하게 밝히면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비전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비전은 역으로 현재 우리의 삶에 성스러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저자가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라고 확신하면서 내놓는 주장과
그리고 그 주장에 대한 증명이다.
그는 《티베트 사자의 서》에 제시된 내용, 가톨릭·개신교 등 다양한 종교의 가르침,
임사체험자의 증언, 빙의 현상, 호스피스 봉사자의 증언 등 다섯 가지를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8장에서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이 있다는 논증을 하고 난 이후,
저자는 1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 대해서 논구한다.
저자는 의학과 의료기구의 발달로 무수한 생명이 구해지고 고통이 크게 경감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죽어가는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의사들이 많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제 환자가 자신의 삶을 불필요하게 연장하지 않고 인간적이면서 존귀한 죽음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즉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할 시점이 되었다고 토로한다.
그런 다음, 2장에서 엘리자베스 큐불러 로스 박사의
죽어가는 사람이 겪게 되는 5단계의 심리적 반응을 우선 소개한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의 여섯 번째 반응으로, 저자의 독자적 견해인 ‘희망’을 이야기한다.
저자에 의하면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간에 보여주는 삶의 마지막 모습은 많이 다르다.
하나의 사례로 티베트 수행자들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므로,
죽음이 재앙이 아니라, 하나의 축복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 저자는 현대 호스피스 활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인다.
호스피스라는 언명은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로서,
환자가 여생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환자와 가족을 신체적·정서적·사회적·영적으로 도우며,
사별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경감시키기 위한 총체적인 돌봄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때문에 호스피스의 철학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인간성 회복과 복지사회를 이룰 수 있게 하는 돌봄의 봉사로써,
구체적으로 말기환자와 임종환자와 그 가족들을 돌보고 지지하며,
남은 생을 가능한 한 편안하게 하고 충만된 삶을 살도록 해주고,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죽음을 삶의 자연스런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