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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길에서.. <부부, 서로 빚어가는 거룩한 여정>

작성자나래품|작성시간26.06.07|조회수91 목록 댓글 0

 
어제 본당 단체 성지순례 길, 1호차 버스 안에 설치된 TV를 통해 이혼 경험이 있는 이들의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출연진들은 저마다 이혼 사유로 '성격 차이'를 꼽으며, 다음 번에는 자신과 모든 면에서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나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누리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더군요.
 
우리는 흔히 '성격이 잘 맞는 사람'과 사는 것을 성공한 결혼의 척도 중 하나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성공한 결혼이란 단순히 성격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나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대의 젊은 부부들은 갈등을 겪으며 인내하고 수용하는 고단한 과정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미 나에게 완벽하게 맞춰진 파트너를 찾는 것은 편리함이라는 장점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이 한 인격체로서의 성장과 성숙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서로 다른 두 인격체를 결합하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각자의 이기심이라는 좁은 틀을 깨고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거룩한 도구로 쓰이길 바라십니다. 부부라는 관계는 서로의 과거 상처를 치유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밀도 높은 인격 수련의 장입니다.
 
상대방의 다름을 내가 가진 틀로 억지로 재단하려 할 때 갈등은 커집니다. 반면, 상대의 성격이 나와 다름을 '틀린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보완의 기회'로 인정하고, 그 차이 속에서 나를 비추어보는 여유를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부부의 연이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겪는 인내와 고통은 단순한 괴로움이 아니라, 더 큰 인격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화의 과정이자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는 길입니다.
 
성지 미사강론에서 신부님께서 "사랑은 내려 놓는 것"이라 강조하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의 성격, 가치관, 생활습관이나 판단 기준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음입니다. 물론 이 말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기준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의 성격, 가치관이나 기준이 중요한 만큼 배우자의 그것도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수용하라는 뜻입니다.
 
결혼의 성공은 '잘 맞는 사람'을 찾아내어 안일함을 즐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상대방을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존재로 존중하고, 그와의 관계 안에서 나 자신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며 함께 성숙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창조주의 뜻을 실천하는 부부의 참된 모습일 것입니다.

편리함만을 좇는 관계는 그만큼 쉽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서로의 다름을 인내와 공감으로 끌어안으며 빚어낸 관계는 쉽게 깨지지 않는 단단함을 지닙니다.
 
이 시대의 수많은 부부들이 '맞는 사람'을 찾는 길에서 멈추어, 서로를 통해 하느님의 지으심에 합당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로 눈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오늘 나의 배우자에게서 발견한 '다름'은, 혹시 하느님께서 나를 빚으시기 위해 선물하신 '거룩한 불편함'은 아닐까요?
그 불편함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평화로운 여정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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