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Numbers)
민수기(Numbers)란 명칭은 아래 구절 때문.
히브리어 명칭 Bammidebar(“광야에서”)이 더 적절한 명칭임.
민수 1,2-3
“너희는 씨족과 집안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의 수를 세어라. 모든 장정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세어라.
너는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에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스무 살 이상 된 남자들을 모두 부대별로 사열하여라.
민수기의 핵심 주제는 광야에서 40년간 일어난 사건을 다룸.
구원과 가나안 땅 정복 사이의 불안정한 중간시기임.
세례와 하늘나라에 들어감 사이의 중간시기와 같음.
이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음.
이 사십 년간의 광야에서의 체험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에집트 탈출에서 시나이 산 도착까지(추래 15,22-18,27), 시나이 산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민수 10,11-36,13). 이렇게 시나이 산을 중심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문학적, 지리학적 이유보다는 신학적인 이유, 즉 ‘반역’에 있다.
불평과 반역의 시기임. 동시에 하느님의 인내와 보살핌과 인도의 시기이기도 함.
이 기간은 하느님게서 당신의 백성을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사막의 모진 훈련으로 그들을 준비시키신 시험기간이다.
1. 하느님의 돌보심의 시기
성서의 여러 곳에서는 광야시기를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서로 친밀했던 시기로 회상하고 있다. “줄곧 지켜주셨다”(여호 24,27), “인도하셨다”(신명 8,2 ; 29,4 ; 시편 136,16), “데려가 주셨고 ....주셨고....기억해 주셨다(시편 105,39-44). ”이스라엘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사막에 열린 포도송이 같더니“(호세 9,10). ”그 때 마른 땅 사막에서 내가 너희를 보살펴 주었건만“(호세 13,5 ; 신명 2,7). 이 표현들은 광야에서 만났던 위험한 고비에서 당신 백성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돌보심’을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절망적이던 때와 장소에서 그들의 육체적, 영적인 모든 궁핍함을 채워 주셨다.
호세아는 광야시기를, 가나안의 풍요다산의 신인 바알과의 간통 이전에 존재했던 밀월시기를 재건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이 되돌아가야만 하는 ‘황금의 시대’로 묘사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꾀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사랑을 속삭여 주면”, 이스라엘은 “에집트에서 나오던 때, 한창 피어나던 시절같이” 성실하게 응답할 기회를 가지게 되리라“(호세 2,16-17). ”이스라엘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사막에 렬린 포도송이 같더니“(호세 9,10).
예레미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나 야훼가 하는 말이다. 씨 뿌리지 못하는 땅 사막에서 나를 따르던 시절, 젊은 날의 네 순정, 약혼시절의 네 사랑을 잊을 수 없구나. 이스라엘은 나에게 깨끗이 몸바쳤었지...”(예레 2,2-3).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으며, 아직 비옥한 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결실과 좋은 것들을 즐기게 되자마자, 주님을 버리고 바알을 선택했다(예레 2,4-13).
신명기에서는 부자관계로 표현하고 있다. 광야체험이 “사람이 자기 자식을 잘 되라고 고생시키듯이”(신명 8,5). “저 끝없고 두렵던 광야”에서의 이러한 인도하심은 “너희에게 시련을 주어 고생시켜 너희가 훗날 잘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 (신명 8,15-16).
광야에서의 돌보심은 모든 면에 걸쳐 있다. 샌달과 옷, 음심(만나, 메추라기).
제1 유형 : 궁핍함-불평-모세의 간원-궁핍함을 해결하는 하느님의 기적적인 개입.
출애 15,22-25 ; 17,1-7 ; 민수 20,1-13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세 설화에서 모두 공통된 점 : 심한 갈증-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모세에게 불평하고 대들었다. 끝의 두 설화에서는 모세가 자기들을 에집트 밖으로 인도해 낸 것에 대해 불평한다-출애굽기의 두 본문들에서 모세는 “하느님께 부르짖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각 경우에 백성들에게 필요한 물을 제공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어떤 특별한 도구를 사용하도록 ㅈ시하신다. 나무를 물 속에 던지거나, 지파이로 바위를 친다.
2. 백성들의 불평과 반역의 시기
출애굽기 18,24와 17,3에서의 불평은 그럴 듯한 이유가 있었다. 즉 그들은 목이 말랐던 것이다. 그런데 시나이 산을 떠난 후의 광야생활에서의 불평은 더욱 심각한 것이 되었고 이에 대한 하느님의 반응도 심각해졌다.
제2의 유형 : 백성들의 불평-하느님의 분노와 처벌-모세의 중재-처벌의 유예.
민수 11,1-3, 17,6-15, 21,4-10에 잘 나타나 있다.
민수기 11-21장을 보면 전체에 걸쳐 불평은 계속 나타나 있다 (11,1-6 ; 12,1-2 ; 14,2-3 ; 16,12-14 ; 20,2-13 ; 21,4-5). 11장 4-13절, 18-23절, 31-35절에서 백성들의 불평은 음식에 단백질이 없음에 대해서이다. 그들은 만나를 풍부히 먹을 수 있었지만 에집트에서 즐겼던 다양한 음식, 특히 고기를 원했다.
“백성이 주님의 귀에 거슬리는 불평을 하였다. 주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진노하셨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었다....그들 가운데에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들이 탐욕을 부리자, 이스라엘 자손들까지 또 다시 울며 말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이제 우리 기운은 떨어지는데, 보이는 것은 이 만나뿐, 아무것도 없구나.”(11,1-6). “너는 또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일을 위하여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하여라. 너희가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너희는 주님의 귀에다 대고,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우리가 이집트에서는 참 좋았는데!′ 하면서 울었다. 이제 주님이 너희에게 고기를 줄 터이니 너희가 먹게 될 것이다. 너희가 하루만 먹는 것이 아니다. 이틀도 아니고 닷새도 아니며, 열흘도 아니고 스무 날도 아니다. 한 달 내내, 너희 콧구멍에서 그것이 나와 구역질이 날 때까지다. 너희 가운데에 있는 주님을 너희가 배척하고, 그 앞에서 ′우리가 어쩌자고 이집트를 떠났던가?′ 하면서 울었기 때문이다.’”(18-20절).
“그런데 그들이 고기를 다 씹기도 전에, 주님께서 백성에게 진노하셨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매우 큰 재앙으로 백성을 치셨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키브롯 타아와라고 하였다. 탐욕스러운 백성을 그곳에 묻었기 때문이다”(11,33-34절).
13-14장에서의 불평의 동기는 적에 대한 공포다. 가나안으로 파견된 정탐꾼이 돌아와 가나안인들은 사람 잡아먹는 거인이라고 보고했을 때, 벽성들은 에집트에 머물러 있는 것이 차라리 나았으리라고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한다(14,1-2). 나아가서 그들은 되돌아가자고까지 했다(14,3).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다. 온 공동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아니면 이 광야에서라도 죽어 버렸으면! 주님께서는 어쩌자고 우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우리는 칼에 맞아 쓰러지고, 우리 아내와 어린것들은 노획물이 되게 하시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그러면서 서로 “우두머리를 하나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 하고 말하였다“(14,1-4).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의 회중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러자 그 땅을 정찰하고 돌아온 이들 가운데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푼네의 아들 칼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저 땅은 정말 무척이나 좋은 땅입니다. 우리가 주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저 땅으로 데려가셔서 그곳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주님을 거역하지만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저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이제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을 덮어 주던 그늘은 이미 걷혀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5-9절)
이 설득도 듣지 않고 돌을 던져 그들을 죽이려하였다(10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은 언제까지 나를 업신여길 것인가?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일으킨 그 모든 표징을 보고도, 이자들은 언제까지 나를 믿지 않을 것인가? 내가 이제 이들을 흑사병으로 치고 쫓아내 버린 다음, 너를 이들보다 더 크고 강한 민족으로 만들겠다.” (11-12절).
이에 모세는 하느님께 호소한다(14,13-10) :
“당신께서 이 백성을 당신의 힘으로 이집트 한가운데에서 데리고 올라오셨는데, 이집트인들이 이 일을 듣게 되면, 그들은 그것을 저 땅의 주민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이 백성 한가운데에 계시다는 말을 그들은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당신께서는 눈과 눈을 마주하여 이 백성에게 나타나 보여 주시고, 당신의 구름이 그들 위에 머무르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몸소 그들 앞에 서서 가신다는 말을 그들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당신께서 이 백성을 사람 하나 죽이듯 죽여 버리시면,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들은 민족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은 저 백성에게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갈 능력이 없어서, 그들을 광야에서 몰살시켜 버렸다.’ 그러니 주님,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발 당신의 힘을 크게 펼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충만하며 죄악과 악행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 하셨으니, 이집트에서 여기에 올 때까지 이 백성을 용서하셨듯이, 이제 당신의 그 크신 자애에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 무렵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민수기 21,4-9).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다 (21,10-19)
“그러자 온 공동체가 돌을 던져 그들을 죽이자고 말해 댔다. 그때 주님의 영광이 만남의 천막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났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은 언제까지 나를 업신여길 것인가?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일으킨 그 모든 표징을 보고도, 이자들은 언제까지 나를 믿지 않을 것인가? 내가 이제 이들을 흑사병으로 치고 쫓아내 버린 다음, 너를 이들보다 더 크고 강한 민족으로 만들겠다.”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당신께서 이 백성을 당신의 힘으로 이집트 한가운데에서 데리고 올라오셨는데, 이집트인들이 이 일을 듣게 되면, 그들은 그것을 저 땅의 주민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이 백성 한가운데에 계시다는 말을 그들은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당신께서는 눈과 눈을 마주하여 이 백성에게 나타나 보여 주시고, 당신의 구름이 그들 위에 머무르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몸소 그들 앞에 서서 가신다는 말을 그들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당신께서 이 백성을 사람 하나 죽이듯 죽여 버리시면,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들은 민족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은 저 백성에게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갈 능력이 없어서, 그들을 광야에서 몰살시켜 버렸다.’ 그러니 주님,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발 당신의 힘을 크게 펼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충만하며 죄악과 악행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 하셨으니, 이집트에서 여기에 올 때까지 이 백성을 용서하셨듯이, 이제 당신의 그 크신 자애에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21,10-19).
용서와 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너의 말대로 내가 용서해 주마.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한, 주님의 영광이 온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 나의 영광, 그리고 이집트와 광야에서 내가 일으킨 표징들을 보고도, 이렇게 열 번 씩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나를 업신여긴 자들은 모두 그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21,20-23). 이 말씀대로 하느님을 거듭 시험한 백성들은 아무도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광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구약성서 전반에 흔히 나타나 있다. 신명기. 시편78편, 106편, 136편. 에제키엘 20장.
3. 종합
불평 중에서 아주 놀라운 것은 출애급의 구원을 그들 편에서 자주 부정하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백성들은 출애급 사건이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랐다(출애 16,3 ; 17,2 ; 민수 11,20 ; 14,2 ; 20,2-5 ; 21,5). 이것은 갈대 바다에서 파라오의 부대의 공격에 당면했을 때 처음으로 표시했던 그런 자세이기도 하다 (출애 14,11-12).
이미 이루어져 있고, 또한 이루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구원을 부정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 백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계속 당신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신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모든 것의 성취는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의지와 행위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4. 오늘날의 의미
“성서 말씀은 모두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기록된 것입니다(로마 15,4). 민수기는 신약성서의 저자들에게는 하나의 준엄한 경고이다. 기적적인 구출과 매일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하느님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하느님을 믿기를 거부하고, 그들의 구원자 이신 하느님께 반항했다. 민수기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줄 그러한 일련의 극적인 심판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민수기의 내용을 후대의 신약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잘 적용시켜주고 있는 곳이 바로 고린토 전서 10장 1-11절이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이 일들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악을 탐냈던 것처럼 우리는 악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백성은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 흥청거리며 놀았다.”고 기록되어 있듯이, 여러분은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처럼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마십시오. 8 또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불륜을 저지른 것처럼 우리는 불륜을 저지르지 맙시다. 그들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어 넘어졌습니다. 9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주님을 시험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은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10 그리고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여러분은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괴자의 손에 죽었습니다. 11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바울로는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체험을 고린토 교회가 처한 상황에 아주 비슷하게 유형론적으로 적용시키고 있다. 불순종과 불신앙이 출애급 사건에 참여한 세대를 약속된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듯이, 그와 같은 죄는 후대의 세대들이 천국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히브 3,7 - 4,13).
7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2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15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반항하던 때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하셨는데, 16 듣고도 반항한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모두 모세의 인도를 받아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17 또 하느님께서는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화가 나셨습니까? 죄를 지은 사람들, 시체가 되어 광야에 쓰러진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18 또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 당신의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습니까? 순종하지 않은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히브 3,7-18).
유다서오 불경건한 자들로 말미암은 현재의 여러 위험에서 교회를 경고하기 위해 민수기의 이야기를 이용하고 있다. “여러분이 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백성을 이집트에서 단번에 구해 내셨지만, 나중에는 믿지 않는 자들을 멸망시키셨습니다 (유다 1,5). 유다서는 그러한 불경건한 자들의 특징적인 죄들로서 음행과 권위의 배척과 탐욕을 들고 있다.
신약의 저자들이 민수기를 이용한 것은, 하느님의 특성과 인간본성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진리와 하느님께 응답하는 인간의 능력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이같이 역사적으로 변하고 발전해가는 상황 속에서도 죄와 은총과 심판이라는 반복되는 주기가 현존해 있고 또 현존할 것이다.
광야시기는 구원사건과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는 ‘사이의 시기’이다. 그리스도교인의 삶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뢀 그리고 그분이 왕국을 완성하시기 위해 재림하시는 ‘사이의 시기’이다. 또 달리 말하자면, 광야시기란 세례를 통한 구원과 새롭게 약속된 땅인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그 ‘사이의 시기’이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이승에서의 ‘현세의 삶’과 같은 것이다. 이 ‘사이의 시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신체적 및 영적인 궁핍함을 돌보아 주신다. 우리가 그분의 구원을 거부하거나 혹은 우리의 필요함보다는 욕구나 욕망 때문에 불평하는 순간에도 그분은 우리를 계속 인도해가고 계신다. 광야에서의 행진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가고 또 떠나는 여행으로 비유할 수 있다. 가뭄과 고생으로 가득 찬 사막길을 통해-그러나 성령으로 인도되어-걸어가면서 완전을 향해 걸어가는 영혼의 행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민수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유형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교훈을 주고 있다. 민수기는 신앙의 측면에서 보면, 과거 하느님 백성의 역사이지만, 하늘 나라에 대한 예언이요, 그리스도인의 현세 삶의 척도요, 성령을 통한 사막에서의 인도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모방이다.
2015.3.25 주임신부 박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