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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와 이미지

작성자강박사|작성시간12.12.30|조회수708 목록 댓글 0

개념어 : 시와 이미지


1. 이미지(심상)의 개념

  

  이미지란 심상(心象) 즉 말에 의해 마음 속에 그려지는 사물의 그림이다. 시어를 읽으면서 마음 속에 떠오르는 감각적 영상을 심상이라고 한다. 심상은 단순히 시어의 의미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과 움직임, 상태 등을 표현함으로써 시인이 전달하려는 감각과 인상을 독자에게 더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 준다.

  가령 ‘꽃이 아름답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아무런 실감이나 구체성을 주지 못한다. 너무나 흔하고 평범한 말이어서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런데 한 시인이 꽃을 보고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불면 꺼질 듯

꺼져서는 다시 피어날 듯

안개처럼 자욱이 서려있는 꽃

           이수익, <안개꽃> 부분


 이 시 구절을 읽으면 안개꽃의 모습이 선명히 연상된다. 희미하고 가벼운 느낌이면서도 마치 꿈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안개꽃의 모습이 마치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시에서 표현하고자하는 대상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주고, 감각적 경험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이미지이다.

 그런데 현대시에 와서는 이 이미지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에즈라 파운드는 시를 음악시, 회화시, 언어시로 구분하면서 현대시는 전통적인 음악시에서 회화시나 언어시로 나아간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음악시에서 회화시로 변화는 음악적 구성의 시에서 조형적 시각적 구성의 시로 바뀌어가고 감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먼저 시가 낭송보다는 눈으로 읽는 형태로 변화되어가기 때문이다. 과거의 시는 노래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공동의 정서와 의식을 서로 공유하고 확인하는 도구로서의 노래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같이 노동을 하면서 노동요를 부른다거나 아니면 집단적 행사에서 공동체적 유대를 확인하기 위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시는 바로 이러한 노래와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오면서 시는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바뀌어진다.

  다음으로는 현대사회의 복잡성을 들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하고 그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의 경험이 그만큼 다양화해짐에 따라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개인의 감각적 구체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시를 생각해 보자. 과거나 지금이나 그런 시들은 아주 많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전의 시들에 있어서 그 이별의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죽거나 아니면 전쟁에 나가거나 아니면 남자가 여자를 버린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생겨나는 이별의 감정도 그다지 개인적 편차가 드러나지 않는다. 김소월의 시에서의 이별 역시 이러한 전통적 이별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의 이별이란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것이다. 옛날처럼 죽거나 버림받은 이별도 있지만, 이혼의 이별, 출장 가서 생긴 이별, 외국으로 떠나가서 아니면 서로 사랑하면서도 느끼는 고독감 등 수많은 복잡한 개인적인 형태의 이별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생기는 이별의 감정은 개인 나름의 개성적인 것이어서 다른 사람이 그 경험을 쉽게 공유할 수 없다. 그런 복잡하고 다양하면서도 개인적인 것들을 남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서로 공유하는 언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구체적 감각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시에서의 이미지다.


2. 이미지의 기능과 종류


 그럼 이미지는 시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

먼저, 정서를 전달한다. 시적 정서를 감각적 구체성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이미지이다. 엘리어트는 이를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말로 정의했다. 어떤 정서나 감정을 그대로 생경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물을 통하여 정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정서의 밀도와 진실성을 높인다.

 예를 들어 ‘나는 외롭다’고 시에서 수없이 반복한다 해도 슬픔의 감정이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않는다. 외로움이라는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이미지 즉 객관적 상관물이 필요하다. 아래 시를 보자.


미아리 날맹이 위로 뜨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달

망우리 산너머 망자들의 등 뒤로 뜨는 달

습기를 품은 밤 공기는 외로워 외로와

산을 껴안고 눈으로 내릴까

바다에 닿아 비로 풀릴까

땅위의 노래는 아직 어지럽고

달무리 하얀 피로 번지는데

괴로워 괴로워 우리들은 모두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 유성인가.


                    최승자, <크리스마스 이브의 달>


 시인은 외로움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 외로움의 고통을 시인은 직접 말로 표현하고 있다. ‘외로와 외로와’, ‘괴로워 괴로워’라는 반복적 어구를 통해 시인의 외로운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정서를 보다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은 이러한 반복에 의한 강조법이 아니라, 시인의 외로움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미지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달’이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객관적 상관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상에서는 모든 즐거움들이 찬란하게 꽃피고 있고 모든 욕망들이 화려하게 춤추고 있는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이러한 크리스마스 이브에 희미하게 떠 있는 달은 지상의 모든 즐거움과 욕망 충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시인의 쓸쓸한 심정을 아주 잘 표현해주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여러 개의 이미지를 중첩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의미의 확대 작업 역시 이미지의 주요한 기능 중의 하나이다. 서로 상반되거나 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미지를 중첩시켜 전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특히 이는 주지적인 현대시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져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 <눈물>


 여기서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사용되고 있다. 눈물을 여러 가지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은 씨앗의 이미지를,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은 보석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거기에 열매의 이미지를 첨가하고 있다. 눈물을 씨앗, 보석, 열매와 연결시켜 눈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보석처럼 단단하고 영롱한 것으로 눈물을 표현함으로 ‘눈물은 슬픔’이라는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의미 이상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자신의 가장 심연에 도달할 때 느껴지는 가장 본질적이고 순수한 감정이 바로 눈물인 것이다.

 흔히 이미지는 시각적인 것만을 생각하기 쉽다.


오늘 아침 청계천을 꽉 메운 차들

내려다보고 있을 때 문득 스치는 풍경

길고 긴 피난민 행렬, 우리들의 무의식

울지도 못하고 떠밀려 가는 보따리 행렬

죽어서도 못 썩을 우리들의 음화


              김혜순, <우리들의 음화> 부분


 위의 시는 시각적인 이미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청계천의 번잡한 풍경 속에서 6・25 때의 피난민 행렬을 보게 만든다. 그것을 통해 이 복잡한 도시에 사는 우리의 삶이 전쟁통에 피난 가는 사람들의 삶과 무엇이 다르겠냐는 인식을 보여준다.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이 시는 시각적인 것보다 청각적인 이미지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 ‘발자국 소리, 호르락(호루라기)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등의 청각적 심상을 통해 사람들의 공포와 고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화자의 깊어지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떨고 비리던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허영자, <감>


 이 시의 이미지는 미각이라는 감각과 관련되어 있다. 젊음을 떫은 맛으로 그리고 나이듬을 단맛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인격적 성숙과 안정감을 구체적 감각으로 잘 전달해 주고 있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아른거린다

열없이 불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 갔구나


                       정지용, <유리창>


 자식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난 서글픈 심정을 표현한 시다. 싸늘한 시신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죽음의 느낌과 죽은 자식 때문에 생긴 삶의 허전하고 막막한 공백감을 유리창의 차가운 촉각적 감각을 통해 아주 선명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이런 것을 촉각적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수면 위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소리가

날카로운 호적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맑은 빛나는 은모래같이

호수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추억의 가지엔

조각난 빙설이 눈부신 빛을 발한다.


                   김광균, <성호부근>


 이미지는 하나의 감각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위의 시에서 차가운 겨울 호수에 비친 달의 이미지는 ‘부서지는 얼음소리’와 ‘날카로운 호적’이라는 청각적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하고 옷소매에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 같은 촉각적 이미지로 변용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겨울 호수의 차갑고도 고요하고 쓸쓸하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감각들이 복합되어 감각의 체험을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이를 특히 ‘공감각적 이미지’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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