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絕望(절망)의 終着驛(종착역)은 所望(소망)의 出發驛(출발역)이라는 것을 아는가?(애 3:17~22)
◾부제목 : 所望(소망)의 끝에도 所望(소망)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주(主)께서 내 심령(心靈)으로 평강(平康)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福)을 잊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對)한 내 소망(所望)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내 고초(苦楚)와 재난(災難), 곧 쑥과 담즙(膽汁)을 기억(記憶)하소서. 내 심령(心靈)이 그것을 기억(記憶)하고 낙심(落心)이 되오나, 중심(中心)에 회상(回想)한즉, 오히려 소망(所望)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慈悲)와 긍휼(矜恤)이 무궁(無窮)하시므로, 우리가 진멸(殄滅)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序論(서론) 및 背景(배경)
본문 말씀은, 절망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발견하고, 소망을 붙잡는, 애가서 전체의 핵심과, 가장 아름다운 반전을 말씀하고 있다.
✔ 역사적인 배경은,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이다. 예레미야 애가의 역사적 배경은, 주전(BC) 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한,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이다.
✔ 당시 이스라엘의 한실은 참혹했다.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을 허물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중심지였던 솔로몬 성전을 불태웠다.
✔ 왕족과 지도자들은, 눈이 뽑히거나, 쇠사슬에 묶여서 포로로 끌려갔다. 성에 남은 사람들은, 극심한 기근으로 자신의 자녀를 삶아서 먹는 비찬한 일이 일어났다.
"처녀(處女) 내 백성(百姓)의 멸망(滅亡)할 때에, 자비(慈悲)한 부녀(婦女)가 손으로, 자기(自己) ✔자녀(子女)를 삶아 식물(食物)을 삼았도다"(애 4:10).
✔ 하나님의 침묵과 분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의 파괴는 단순한 패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 "우리가 믿던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에게 패배했다는, 엄청난 신앙적인 충격(공황 상태)을 받았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파멸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민족의 죄악에 대한 아픔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 그래서 예레미야 애가서의 이름이, "슬픈 노래"를 의미하는 애가(哀歌)이다. 예레미야 애가는, 총 5장으로 구성되었다. 그중에서 3장은, 책의 구조상 가장 중심(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 특별히 3장은 다른 장들과 달리, 히브리어 자음 순서(답관체, 아크로스틱)를 더욱 격식있게 사용하여, 한 자음당 세 구절씩 배정해서, 총 66절로 이루어져 있다.
특별히 3장 중에서도, 17절~22절은 거대한 절망의 한가운데서, 소망이라는 반전이 시작되는 분수령 같은 곳이다.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17절~20절은, 절망의 바닥을 치는 고백이다.
선지자는 자신의 심정을, "평강을 잃어버렸고, 내게서 소망이 끊어졌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고통의 기억(쑥과 담즙)을 떠올릴 때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완전히 낙심(Depressed)을 해서, 바닥에 엎드러진 상태이다.
✔ 그러나 21절~22절은, 위대한 신앙의 반전이다(소망의 근거).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오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1~22).
그토록 괴로워하던 예레미야 선지자가, 갑자기 21절에서 생각을 바꾸자, 절망 중에도 소망이 생겼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 소망의 근거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다. 여전히 예루살렘은 폐허고, 바벨론은 강하다. 그러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해 냈을 때에 반전이 일어났다.
인자(헤세드, Hesed)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긍휼(라하밈, Rachamim)은, 어머니의 태가 비틀어지는 듯한, 깊은 측은지심과 자비를 의미한다.
✔ 예레미야 애가 3장 17절~22절이 주는 핵심 메시지는, "징계 중에도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되지 않았다"라는 점이다.
유다가 망해서, 당장 눈앞에는 소망이 없다. 그러나 완전히 진멸되지 않고, 살아 남아서 이 고통을 노래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덕분이라는 역설적인 고백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아니다. 회복을 위한 아픈 과정일 뿐이라는, 깊은 신뢰가 이 배경 속에 깔려 있다.
✔ 본문 말씀을 음미해 보면, 기가 막히도록 처절하다. 아니 너무나도 안타깝다. 산넘어 산이요, 설상가상이다. 소망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 나열되는 단어를 보라
▪평강이 멀리 떠났다.
▪복을 잃어 버렸다.
▪힘과 소망이 끊어 졌다.
▪고초와, 재난과, 쑥과, 담즙이라는, 4가지 재앙이 나열되고 있다.
✔ 이치럼 4가지 재앙을 기억할 때에, 당연히 심령이 낙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이다.
눈 앞의 현실은, 업친데 덥친격이다. 최악의 쓰디쓴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결코 진멸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소망이 있다고 회상하고 있다.
17절~18절 말씀에 보면, 심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몸과 마음의 피페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견디기 힘든 고통을 절규하고 있다.
17절에 보면, 주께서 자신의 심령을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셨다고 토로하고 있다. "멀리 떠나게 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자나흐≫이다. 이는, "버린다"라는 의미이다.
히브리어 동사 ≪자나흐≫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과, 그의 사람들을 버리는 것과 관련하여,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시 43:2, 44:9).
✔ 히브리어 ≪자나흐≫는, 본서에서는 3번 사용되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재단"을 버리는 것(애 2:7)과, 자신의 "백성들"을 버리는 것(애 2:31)에 사용되었다.
"평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솰롬≫이다. 이는 바로, "평화"와, "평안"과, "번영"과, "완전" 등을 의미한다. 구약 싱경에는 250회가 등장한다.
✔ 솰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황만이 아니다. 완전과 무결점과 조화와 완성 등을 의미한다. 번영과 행복이 보장된 상태이다.
솰롬이 구약 성경에서 갖는 신학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행위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의의 결과를 나타 낸다(사 32:7).
솰롬은 "하나님의 임재"의 결과로 이루어진, 완전한 충족의 상태를 묘사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특별히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과, 다윗 계통의 "왕들"과 맺은 평화언약(민 25:12, 사 54:10)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닙의 언약관계가 파괴된 상태에서는, 더 이상 솰롬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황에서, 내 심령을 평강으로부터 버리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 실로 참된 솰롬은, 하나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 하나님과 무관한 자는, 어떤 행복과 번영과 평강을, 결코 기대할 수가 없다.
18절에서는,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소망이 남아 있지 않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나의 힘"은 히브리 단어로 ≪네차흐≫이다. 이는 "힘"과, "승리"와, "영원히"를 의미하고 있다.
선지자는 대적들과 싸워서 이길 힘은 커녕,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을 견뎌낼 만한, 그 어떠한 여력조차도 없다고 탄식하고 있다.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비참하게 죽을 순간만을 기다리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에 대한 소망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 그러나 18절은, 3장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전환점)가 되고 있다. 그 전환점은 바로, "여호와께 대한 소망"이라는 표현에 함축되어 있다.
선지자는 오직 여호와가, 자신과 유다 백성들의 궁극적인 소망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19절에 보면, "곧 쑥 담즙을 기억하소서"라고, 여호와께 외처롭게 절규하고 있다. 선지자의 깊은 회한과 절망이 드러 난다.
✔ 그러나 선지자는,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다.
선지자는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소망의 메시지를 전함으써, 하나님의 무궁한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선지자는 여호와를 향하여, 심각한 고난에 처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쑥과 담즙(쓸개 즙)은 은유적인 표현으로써, "고통"과, "고초"와, "재난"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하다.
"기억하소서"라는 말의 히브리어 단어는 ≪자카르≫이다. 기억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출 2:24)하시고, 보존(레 26:44~45)하시는 결과를 가져 온다.
"기억"은 회개(겔 6:9)와, 계명의 준수(민 15:40)와, 안식일(출 20:8)을 지키는 등의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기억은, 출애굽의 구원(출 2:23~25)을 상기시켜 준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구원의 행위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기억해 주시는 데서부터 출발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19~22절에서 선지자는, 고통과 낙심 중에도 선민을 진멸하지 않으시는, 여호와 안에서 회복에 대한 소망을 토로하고 있다.
선지자는 내 심령이 고통과 재난을 기억하는 것치럼, 이를 보시는 여호와께서도 기억해 주실 것을, 간절히 확신하면서 기도하고 있다.
21절에 보면, 선지자는 깊은 좌절과 고초가운데서도, 오직 여호와께 소망을 둘 것을 노래하는, 시편의 말씀으로 인도하고 있다.
"내 영혼(靈魂)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落望)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不安)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因)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讚頌)하리로다"(시 42:5).
✔ 22절의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란 말씀의 의미는, 고난 중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가 소망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 인자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 등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헤쎄드≫이다. 이는 "하나님의 베푸시는 사랑"과, "언약적인 사랑"과, "자애로우신 사랑"과, "진실한 사랑"을 나타낼 때에 사용된다.
✔ 히브리어 ≪헤쎄드≫는 ≪솰롬≫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족장들과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다. 이는 "깊히 사랑한다"와,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라는 뜻이다.
✔ 비록 유다가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진멸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영원무궁하기 때문이다.
🔥 가장 불행했던 요한 세바스찬 바하
✔ 바하는 너무나 인생을 불행하게 살았다. 바하는 10살이 되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 그를 키워준 형은, 귀가 먹었다. 형은 동생을 몹시 미워했다.
✔ 바하는 장성하여 결혼을 했다. 결혼한 지 13년 만에, 부인이 죽었다. 재혼을 했던 부인에게, 모두 20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 중에서 10명은 어려서 죽었다. 1명은 20살에 죽었다. 그리고 1명은 정신박약아이다.
✔ 바하는 나이가 많아지자, 앞을 못 보는 소경이 되었다. 뇌출혈로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 바하는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다.
✔ 바하는 오르간 연주만을 위한, 작품들의 첫 부분에는, I.N.J(In Nomine Jesus, 예수의 이름으로)라고 적어 놓았다.
✔ 바하는 세계 역사상, 모든 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뛰어 났다고 인정을 받는다. 바하는 독실한 신자이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몰두했다. 오늘날 가장 존경받는 음악가가 되었다.
바하가 이처럼, 가장 극심한 고통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위대하고 아름다운 곡을 많이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고난 속에서도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역경 중에도 찬양하는 삶을 살게 되면, 어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이를 충분하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 역경 중에도 찬송을 하면, 우리의 인격도 순화되고 영성도 맑아 진다. 찬송을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다.
※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의 저자인 릭 미국의 "릭 워렌" 목자는, 낙심의 특징을 3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낙심은 보편적인 것이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둘째, 한 번 낙심한 사람은, 또다시 낙심한다.
▪셋째, 낙심은 전염성이 강하다.
※ 낙심의 원인을 4가지로 지목을 했다.
▪첫째, 피로이다.
▪둘째, 좌절이다.
▪셋째, 실패이다.
▪넷째, 두려움이다.
※ 느헤미야 4장을 기반으로 하여, 낙심을 이기는 4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아무리 바빠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둘째, 옳은 일을 옳은 방법으로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
▪셋째,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고 도우심을 구하라.
▪넷째, 낙심에 지지 말고, 낙심에 맞서기를 선택하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도, 때때로 절망하고 넘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은, 감정의 문제이고 일시적인 현상이다.
이겨 내기가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생기더라도,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 곧 사라질 감정에 빠져서, 결코 절망을 해서는 안된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항상 천군천사를 보내서 돕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에 소망을 두기를 바란다.
🔥 용기(勇氣)는 절망(絕望)에서 생긴다
✔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펄벅(Pearl Buck 1892~1973)여사는, 선교사(宣敎師)인 아버지를 따라서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해에, 중국에서 극심(極甚)한 가뭄이 들었다. 그녀가 살던 마을에서, "백인 가족이 우리 마을에 살기 때문에 신(神)이 분노(憤怒)하여, 가뭄이 계속된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점점 분노(憤怒)로 변했다.
✔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마을 사람들이 삽과 곡괭이와 쇠스랑 등, 농기구를 들고서 펄벅의 집으로 몰려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아버지가 외국으로 출장 중이라서, 집에는 어머니와, 어린 펄벅 밖에는 없었다. 그러므호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펄벅 어머니는, 집안의 찻잔을 모두다 꺼내어서 차를 준비하고, 케이크와 과일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손님들을 초대한 것치럼, 대문과 집안의 모든 방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어린 펄벅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도록 하고는,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고 있었다.
✔ 얼마 뒤에 농기구를 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대문이 굳게 잠기고, 집안은 깜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횃불을 들고 몰려 들었다.
그런데 대문이 열려 있있다. 마당으로 들어 섰더니, 모든 방문이 열려 있었다. 방마다 불이 환하게 켜진 것을 보고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방마다, 차와 케익과 과일이 차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더욱 어리둥절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멈칫거리게 되었다.
✔ 어머니는 정중히 마을분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정말로 잘 오셨이요. 방에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씩 드시만서 말씀을 하라고 했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횃불을 내려놓고시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 그리고 구석에서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차를 마시고 케이크와 과일을 먹고서 모두다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토록 기다린 비가 내렸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벅 여사에게, 그날 밤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 그날 밤에 도망칠 방법이 있었다면, 도망을 가다다 잡혀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살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보았다고 했다.
✔ 그리고 어미니는 늘 입버릇처럼 말씀했다.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 이 말은 펄벅 여사가, 절망적인 순간에 항상 떠올리는 말이 되었다.
세상에는 돈과 시간과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용기와 겸손과 진실과 리더십과 인내 등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고난의 시간을 거치면서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귀중하게 쓰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의 시간을 허락하셔서, 이러한 믿음의 귀중한 덕목을 갖추도록 하신다.
✔ 톨스토이(Lev Tolstoy 1828~1910)는 말하기를, “고난을 받는 사람들로 인하여 세상은 전진해 간다”라고 했다.
✔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 1821-1881)는, “눈에 눈물이 없으면
영혼의 무지개를 볼 수 없다” 라고 했다.
* 結論(결론) 및 敵用(적용)
본문 말쓴은, 단순히 과거의 슬픈 노래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을 통과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영적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생각의 방향이 소망의 방향이다. 본문 말씀의 핵심 결론은, 고난의 환경에 머물던 시선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옮길 때에, 절망이 소망으로 격변한다는 것을 아는가?
선지자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쑥과 담즙)를 묵상할 때는, 영혼이 낙심하여 바닥을 쳤다. 그러나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기억해 보았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가?
인전히 진멸되지 않은 것이 은혜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나라가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숨을 쉬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자비라는 것을 아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아침마다 새롭다. 하나님의 인자(헤세드)와, 긍휼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어제 아무리 깊은 심판의 밤을 지났을지라도, 오늘 아침에 우리를 먹이시는 새로운 은혜로 다가온다는 것을 아는가?
우리의 삶에도, 유다의 멸망만큼이나 참혹한 정신적, 환경적인 예루살렘 멸망을 경험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예레미야는 아픔을 대충 덮거나, 긍정주의로 포장하지 않았다. "평강을 잃었다"와, "내 소망이 끊어졌다"오, "쑥과 담즙 같다"라고 했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다 쏟아 내었다는 것을 아는가?
고통스러울 때에, 괜찮은 척 연기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서는 울어도 되고, 절망을 고백해도 된다는 것을 아는가?
참된 소망은 나의 바닥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아는가?
고난의 감정에 휩쓸려 가던 마음을 힘써 붙잡아, 하나님의 약속으로 강제 유턴(U-Turn)시키는 영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가?
어려운 문제와, 억울한 일과,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만 계속 묵상(Loop)하면, 영혼은 반드시 우울해 진다는 것을 아는가?
의도적으로 생각을 멈추고,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사랑과, 과거에 도우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해 내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선지자는 징계가 다 끝나고,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후에, 감사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폐허 속에 앉아 있으면서, 오늘 숨을 쉬게 하시는, 아침마다 새로운 긍휼을 바라보았다는 것을 아는가?
먼 미래의 완벽한 해결책이,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광야 같은 삶을 사는 우리에게, 한 달 치와 일 년 치 만나를, 한꺼번에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아는가?
오늘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눈물겨운 오늘의 은혜를 매일 아침 공급하신다. 하루만큼만 주님을 신뢰하며 걸어가면 된다는 것을 아는가?
밤이 깊을수록 아침이 가까워지는 것처럼, 소망이 끊어진 그 자리가 바로 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헤세드)이 시작되는 자리라는 것을 아는가?
고통을 묵상하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성품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 자발적인 선교 후원금은, 국내외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 대한, 말씀 선교 사역에 귀하게 사용됩니다.
▪Nadulbok Ch Professor and Missionary.
▪Ph.D. in Homiletics.
▪Doctor of Missiology.
▪︎Ph.D. in Biblical Studies.
▪︎Honorary Doctor of Education.
▪Thailand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rofessors.
▪Laos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rofessors.
▪Myanmar's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rofessors.
▪︎Cambodia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Dean.
▪︎President of Jilin Theological Seminary, China.
▪︎President of Thailand Bible Semin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