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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및 단상

[단상]무임 승차

작성자야고보아저씨|작성시간26.06.05|조회수31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6일 토요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무임 승차

 

내가 스물한 살 때 말단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동생들을 가르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그 때 한 달 봉급이 4천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쌀을 사기도 힘든 때였는데 둘째 여동생은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도 서울에서 작은 회사의 사환으로 근무하면서 야간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동생을 보러 갔는데 그렇게 까칠하고 깡마른 동생이 손을 비비고 손을 시려하고 서서 오빠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지금도 바짝 말라 있는 동생을 보면 그 때의 그 모습이 떠올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가득히 차오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가는 기차 삯이 60원 정도 할 때이니까 주머니에 100원은 있으려니 하고 동생에게 900원 정도의 돈을 다 털어주고 쳐다보면 눈물을 보일까봐 그냥 돌아서서 서울역에 와버렸습니다그리고 호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주머니엔 30원만 달랑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표 파는 곳으로 가서 입장권을 5원을 주고 끊었습니다그러니 입장권만을 사가지고 기차를 탄 것이죠그 당시 사람들은 만원이어서 고향까지 약 3시간을 서서 가야하는데 통학하는 친구들이 가르쳐준 노하우(know-how)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아주 느리게 가는 증기기관차의 객차 세 번째 칸에서 한 가운데 서 있으면 차표 검사를 오면 반대편으로 눈치를 보며 도망가야만 했습니다그리고 정거장에 차가 정차하면 차표 검사를 끝낸 차 칸으로 재빨리 옮겨 타야 했는데 다행인지 아주 잘 지나갔습니다그런데 고향 역은 비교적 큰 역으로 표 받는데 보통 엄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런데 만약 걸리면 무임승차의 세배를 물어야 하니 표 받는 곳이 아주 허술한 간이역에 어쩔 수 없이 내려야만 했는데 걸어서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집이 있었습니다그날 나는 사방이 흰 눈이 내려서 미끄럽고바람이 모질게 불었어도보름달에 하얗게 비친 철길을 따라 별을 이고 달과 같이 걷는 그 이 십리 길이 왜 그렇게 행복하고 밤새워 걸어도 싫지 않은 길이었는지 모릅니다내가 동생에게 가장 많이 기쁜 마음으로 주었던 용돈에 대한 기억이 아련히 남아있습니다.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시겠다는 주님께서는 오늘은 가장 적은 돈이지만 가장 많은 헌금을 한 사람으로 과부를 지칭하신 이유를 조금은 알듯합니다그러면서 어떻게 가진 것 모두를 나누며 베풀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나는 동생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고도 또 부족해서 더 주고 싶은 것이 없는지 생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정말 동생을 사랑했기 때문에 무임승차를 하고 기차 안에서 들킬까봐 마음이 불안하였고 긴 시간 동안 앉지도 못하였어도 또 그렇게 먼 길을 걸었고 춥고 떨리는 배를 움켜쥐었지만 조금도 슬프지 않았습니다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아낌없이 주고도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주일에 감사의 헌금을 어떻게 낼 것인지 반성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꾸만 더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가진 것을 아낌없이 헌금하고 싶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나는 동생을 믿었기 때문입니다고생하고 있는 그 아이가 그 용돈으로 노트랑연필을 사서 얼마나 기뻐 할 것인지 또 오빠에게 얼마나 고마워할 것인지를 생각하니 이는 상상할 수 없이 행복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나서 동생은 독학으로 영문학사를 받았고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할 때는 이미 40이 넘은 나이였습니다졸업식장에서 오빠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릴 때 여동생은 그 때 오빠가 주었던 그 용돈이 얼마나 행복하였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그래서 무임승차를 한 그날 그 이십 리 길을 얼마나 행복하게 걸었는지 말해 주었습니다그래서 동생을 품에 안고 정말 기쁨의 울음을 터뜨렸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혈연으로 맺어진 인연도 있지만 서로 의지하고 믿었기 때문에 아낌없이 줄 수 있습니다우리가 정말 하느님을 믿으며그분께 내 믿음을 보이고 싶다면 어떻게 헌금할 것인지 생각됩니다.

 

셋째는 희망이 있어야 하겠지요경영학적으로 투자가치가 없으면 어느 누구든 내어 놓으며 적극투자하지 않습니다그건 세상의 정한 이치입니다내가 동생에게 투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그 아이를 보고 내가 어떻게 뒤돌아 그냥 올 수 있었겠습니까하느님께 절대적으로 의탁하고 그 분의 무한하신 권능에 대해서 신뢰한다면 정말 그렇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놓을 것입니다가난한 과부는 그날 저녁부터 살길이 막막한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재산을 바친 것입니다렙톤 두 닢은 지금 돈으로 계산하면 40cent 정도의 돈이니까 600원이 조금 못되는 돈이랍니다.

 

향주삼덕(向主三德)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주님의 계시와 예지에 대한 응답으로 믿음을주님의 무한하신 권능에 대한 응답으로 희망을 가지며주님의 사랑에 아낌없이 사랑으로 응답하는 애덕을 말합니다. 모두 한꺼번에 말해서 신덕망덕애덕(信德望德愛德)을 말하지요신망애 향주삼덕으로 언제나 주님께 감사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예물을 봉헌하고아낌없이 헌금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과부의 정성을 어여쁘게 보시고 저희에게 그렇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저희는 항상 말로만 그렇게 결심하면서도 당신의 사랑에 응답하지 못하고 저희들의 처지만 생각하고 당신에게 아주 옹졸하고이웃에게 인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저희가 가진 것은 참으로 많사오니 항상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고 봉헌하게 하소서사랑의 주님!!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십시오주님께서 의로움의 화관을 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1-8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하느님 앞에서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축일6월 6일 성 노르베르토 (Norbert)

 

신분 대주교설립자

활동 지역 마그데부르크(Magdeburg)

활동 연도 : 1080-1134

같은 이름 노르베르또노르베르뚜스노르베르투스노르베르트놀베르토놀베르트

 

독일 산텐(Xante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노르베르투스(Norbertus, 또는 노르베르토)는 쾰른의 대주교 및 하인리히 5세 황제의 궁전에서 하사품을 관리하는 차부제로 지내며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그러던 어느 날 예식에 참석하고자 말을 타고 가다가 번개를 맞아 땅에 떨어졌다얼마 후 의식이 회복되자 방탕했던 지난 생활에 대해 깊이 통회하며 "주님저로 하여금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하고 옛날의 사도 바오로(Paulus)처럼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이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그는 쾰른 근처 지크부르크(Siegburg)의 한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와 단식으로 시간을 보냈다결국 주님의 뜻을 확신한 그는 쾰른 시로 나와 사제품을 준비하고 1115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 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왔으나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그는 과거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모든 모욕과 냉대를 참으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회로 삼았다그 후 그는 주임 사제직을 사임하고 소유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보속의 길을 떠났다그가 북부 프랑스를 다니며 주님의 말씀을 설교한 것이 큰 효과를 내면서 그는 매우 유명한 설교가로 변신하였다이윽고 포세스(Fosses)의 성 후고(Hugo, 2월 10)가 동반자가 됨으로써 그의 능력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1120년 1월 25일 그는 13명의 동료와 함께 프레몽트레(Premontre)에서 성 마르티누스(Martinus)의 율수 수도회를 개혁하여 새 수도회를 설립하였다새 수도회는 급격히 성장했는데이것이 프레몽트레 수도회의 시작이었다그는 생전에 8개의 대수도원과 2개의 수도원을 세웠고교황 호노리우스 2(Honorius II)로부터 1125년에 공식 인가를 받았다그 후 테오발드(Theobald) 백작이 입회를 요청하자 그는 입회를 거절하고 세상에서 수도회의 규칙을 따라 살도록 제3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그는 독일에 갔다가 황제와 교황 사절의 간청에 굴복하여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가 될 것을 승낙하였다그 교구에는 개혁할 일정리해야 할 일들이 태산 같았다그가 임지에 갔을 때 주교관의 문지기는 너무도 남루한 그의 모습을 보고 거지로 착각해 주교관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새 주교와 그의 개혁 정책에 반감을 갖게 된 이들도 많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방해하며 심지어 그를 처치해 버리려고까지 하였다그러나 그의 덕행과 온화하고 용맹한 마음은 이 모든 장애를 극복해나갔다.

 

1132년 그는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고자 로마에 갔다가 중병에 걸려 4개월간 병상에 눕게 되었으나 그 후 교구로 돌아와 2년간 직무를 수행하다가 1134년 54세로 선종하였다그는 캉브레(Cambrai)에서 이단과 싸우는 대주교를 돕도록 제자 성 발트만(Waltman, 4월 11)을 파견해 도와주었고성체 현존에 관한 이단을 배격하는데 공로가 컸다그는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Gregori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672년 교황 클레멘스 10(Clemens X)는 전 세계 교회에서 그의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다그는 보통 출생지와 연결해서 산텐의 성 노르베르토로 불린다.

 

오늘 축일을 맞은 노르베르토 (Norbert)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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