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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및 단상

[단상]자식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봉양해야 합니다.

작성자야고보아저씨|작성시간26.06.12|조회수16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3일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예수 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성모 신심에 대한 공경은 17세기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요한 외드 성인의 노력으로 점점 보편화되어예수 성심 미사에서 기억하는 형태로 전례 안에서 거행되기 시작하였다비오 12세 교황은 1942년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세상을 봉헌하고 이 기념일을 온 교회가 지내게 하였다처음에는 8월 22일에 선택 기념일로 지냈는데, 1996년 교황청 경신성사성 교령에 따라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에 의무 기념일로 지내게 되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51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자식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봉양해야 합니다.

 

꽃을 키우며 꽃을 피우는 일은 정말 재미있고흥미로운 일입니다작은 화분에서 일생을 살면서 꽃을 피우고잎을 피우고뿌리를 내리는 그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인생을 보는 것 같아서 그 재미에 완전히 빠져버리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나는 어려서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일하고꽃을 키우는 일에는 많은 재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은 기술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학교에 근무할 때는 사람들이 키우다가 거의 죽게 생긴 화분을 되살려 주는 일을 도맡기도 했었는데 그 때마다 신기한 생명의 신비를 느끼곤 하였습니다.

 

동양란을 키우면 새로운 촉이 나올 때 가장 신기한 기분이 듭니다꼭 아기를 출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그 때 어미 촉은 아주 조금씩 시들어갑니다새끼 촉에게 영양분을 주로 공급해주느라고 자신을 말라가는 것입니다그래서 촉 근이 시들시들하고 잎 끝은 마르고 타들어갑니다마치 엄마가 애기에게 젖을 먹이느라고 몸이 축가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을 돌보지 않습니다새끼 촉이 아주 싱싱하게 잎을 피우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새끼 촉은 이제부터 싱싱한 뿌리로 영양분을 빨아들여 어미에게 공급해 줍니다그래서 어미촉도 단단해지고 잎도 영양이 고르게 펴지고 색깔도 고르게 파랗게 회복합니다.

 

이 과정을 관찰하다보면 어버이와 자식의 그 깊은 사랑의 관계가 느껴집니다인생에서도 그 깊은 부모와 자식의 사랑처럼 식물에서도 그 관계가 여실이 드러납니다그래서 선비들이 난초를 그렇게 좋아했는지 모릅니다어버이가 어떻게 자식을 키우고자식은 어떻게 효도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를 난초는 실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요즘 우리 사회에서 효도가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서 가슴이 아픕니다어린 자식들을 학대하고 심지어는 죽이는 부모가 많이 있어서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정말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또한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이런 흉악한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효행을 실천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본을 잘못 보였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유랑하다가 하루는 몹시 울며 슬퍼하는 사람을 만났답니다그는 자신이 우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그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하고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온 것이요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귐을 끊은 것입니다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안 계신 것입니다(子欲養而親不待). 그럴 생각으로 찾아가도 뵈올 수 없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마른 나무에 기대어 죽고 말았답니다그러므로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

자식은 봉양하고자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네.

 

往而不可追者年也(왕이불가추자년야)

흘러가면 쫓을 수 없는 것은 세월이요,

 

去而不見者親也(거이불견자친야)

나가시면 다시 볼 수 없는 것도 어버이이시라.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기를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키 어렵다.’라는 독일의 격언이 있습니다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의무처럼 생각해야 하는 일입니다요즘은 부모가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를 바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대하지만 그러면 효행의 다리는 끊어지고 맙니다부모는 정성으로 자식을 키우고 자식은 부모를 지극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여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져야 합니다그래야 효행의 기본적인 틀이 완성됩니다조금만 정성을 기울여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그 일을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우리 사회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이제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자식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준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지만 노년의 생활을 준비한 부모도 있고준비하지 못한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그 동안 자식들을 부양하느라고 노년을 준비하지 못한 부모를 위해서 자식들은 부모를 봉양할 책임을 져야 합니다모든 자식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봉양하여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그것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9-11

내 백성의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내 백성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축일6월 13일 성 안토니오 (Anthony)

 

신분 신부교회학자설교가

활동 지역 파도바(Padova)

활동 연도 : 1195-1231

같은 이름 안또니오안또니우스안소니안토니우스앤서니앤소니앤터니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페르난도(Fernandus)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포르투갈 국왕 알폰소 2세의 궁중 기사의 아들이었다성 안토니우스는 신앙심 깊은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리스본 주교좌성당 부속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15세 되는 해에 집 근처에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212년에는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와 친척들을 피하고자 다시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참사 수도회로 옮겨 8년 동안 공부와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그 후 1219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1220년 1월 16일 모로코에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순교자들의 유해가 성 십자가 성당으로 옮겨져 왔는데이때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그해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사를 지원하였다그의 소망대로 무어인들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모로코로 파견되었으나도착 직후 병으로 인하여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 후 1221년의 아시시(Assisi)의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에서 개최된 작은 형제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코임브라에서 조용히 은둔하며 고행 생활을 하던 그는 포를리(Forli) 근처의 몬테파올로(Montepaolo) 운둔소로 가게 되었다어느 날 코임브라 관구장인 그란치아노(Granziano) 신부와 함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기 위해 포를리로 갔는데마침 미사에서 강론할 마땅한 사람이 없어 성 안토니우스가 맡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설교가로서의 큰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그는 카타리파(Cathari)가 성행하던 북부 이탈리아 지방과 알비파(Albigenses)가 성행하던 남부 프랑스에서 설교하라는 명을 받고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그의 뛰어난 설교와 화술은 불같았고설득력이 있었으며 모여든 군중들을 매료시켰다그가 가는 곳마다 군중들은 구름처럼 운집하였다그는 작은 형제회의 첫 번째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나설교직에 더욱 헌신하기 위하여 공식적인 직책에서 면제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고해성사를 주는 신부로서의 그의 성공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중 1226년 10월 3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성인이 사망하자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듬해 에밀리아(Emilia) 관구의 관구장 대리로 선출되었으나설교에 전념하기 위해 1230년에 사임한 뒤 파도바 수도원에 정착하면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파도바 전체를 완전히 개종시킨 그의 설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또한 그는 채무자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는 일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단자를 개종시키는 등 끊임없이 활동하였다.

 

1231년 그는 수종 등을 겸한 열병으로 잠시 요양할 목적으로 캄포 산 피에로(Campo San Piero)로 갔으나병이 심해져 파도바로 되돌아오는 길에 베로나(Verona)의 아르첼라(Arcella)에 있는 클라라 수녀회에서 선종하였다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세였다그의 유해는 현재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 성당에 모셔져 있다그는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 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9(Gregorius I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1946년에는 비오 12(Pius XII)로부터 교회학자복음적인 박사로 선언되었다.

 

성 안토니우스의 수많은 기적 이야기와 설교 능력은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전설 중 하나가 되었고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그 당시 사람들은 성 안토니우스를 일컬어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 ‘살아있는 계약의 궤라고 했으며,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그리고 17세기부터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안토니우스 성인에게 기도하면 곧바로 찾는다는 전설이 생겼다이는 어느 수련자가 허락 없이 성인의 시편집을 가져갔다가 성인이 발현하여 돌려달라고 해서 그 시편집을 돌려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가난한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일생 그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인의 이름을 따서 19세기에 안토니우스 성인의 빵이라는 구호단체가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교회 미술에서 그는 주로 팔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그 이유는 한 방문자가 안토니우스 성인이 탈혼 중에 일어난 이 일을 기록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안토니오 (Anthony)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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