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굴종에서 화해의 자유로!
예레 20,10-13; 로마 5,12-15; 마태 10,26-33 / 연중 제12주일; 2026.6.21.
오늘은 연중 12주일이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 기도 중에 맞는 주일이어서, 6월 25일에 묵상해야 할 내용을 교우들이 많이 모이는 오늘에 나누고자 합니다.
1. 시대의 징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 6·25 전쟁 발발 76주년을 맞아 6월 17일부터 25일까지 한반도에 종전선언이 이루어져 평화체제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우리 민족이 화해하기 위한 지향으로 9일 기도를 바치자고 한국 천주교회의 모든 신자들에게 제안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한민족을 이끄시는 시대의 징표를 담은 이러한 제안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시작된 이 연중 시기에 우리의 시선을 겨레의 현실에로 향하도록 재촉합니다. 이 위원회가 한국의 모든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안한 9일 기도의 지향을 보면 우리 교회가 현 시기 한반도의 현실을 바라보는 상황 인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우리 사회의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6.17)
- 상호 존중을 위하여(6.18)
- 평화의 일꾼을 위하여(6.19)
- 이산가족과 북향민을 위하여(6.20)
- 정치 지도자들을 위하여(6.21)
-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위하여(6.22)
- 무기를 내려놓는 평화를 위하여(6.23)
- 전쟁의 희생자들을 위하여(6.24)
- 평화를 지향하는 회심을 위하여(6.25)
2. 상호 증오로 보낸 반백년 역사
무릇 역사상 인류가 기억하는 모든 전쟁은 종전되어서 평화를 회복한 날에 기억하는 법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예외적으로 이 땅에서 76년 전에 일어난 한국 동란을 ‘6·25 전쟁’이라 부르며 전쟁이 발발한 날을 전쟁의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그날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겠지요. 아직도 그 전쟁이 끝나지 않은 데다가 이 전쟁이 공산세력의 남침으로 시작되었으며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남한 지배세력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이는 북측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체의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쇄국 정책으로 일관해 온 북측에서는 남한의 북침으로 이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이제껏 인민들을 세뇌해 왔으니, 상호 증오를 정치적 지배의 원동력으로 삼아 왔다는 점에서 남도 북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은 남과 북은 전쟁 후 지금까지 서로에게 적이었으며, 서로의 법률과 정책과 제도가 모두 상호적대적인 진영논리에 기반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 민족은 남과 북이 모두 전쟁 상태에서 치열한 적대의식으로 긴장하며 해방 이후 지난 세월 반백년이 넘도록 상호 증오하는 굴종 구도 속에서 노예처럼 살아왔습니다. 이를 상징하는 용어가, 툭 하면 종북 논쟁을 쓸데없이 일으켜 온 '빨갱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한국천주교회도 이러한 남북 간 상호 증오를 부추겨온 지배세력의 정치적 의도에 순응해 왔고, 어느 면에서는 ‘반공의 최후 보루’로 자임하며 남한 사회의 우경화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 세워진 정부와 동포들을 무신론 세력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남한 체제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신앙을 적대시하고 말살하려던 무신론 세상이었고 그곳에 신자들이 비밀리에 숨어서 기도생활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감안하여 그저 ‘침묵의 교회’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사실 이 전쟁 이전에도 북한 정권은 천주교를 노골적으로 탄압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았고 따라서 그 어떠한 반성이나 성찰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⒊ 해방 후 50년에 일어난 각성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한 때는 1995년 무렵부터 였습니다. 이때는 아직 정치권과 사회의 분위기 그리고 국민 대다수의 시선은 우경화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먼저, 재야 학계에서부터 해방을 전후로 벌어졌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발굴되면서 민족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사회과학적 성과로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으로 치루어진 6·25 전쟁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이 전쟁은 사실상 우리 겨레를 볼모로 잡고 전쟁을 사주한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 야욕의 결과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막연히 북한 동포들만을 원수로 알고 있던 인식에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습적으로 남침함으로써 전쟁을 시작한 북한 김일성의 전쟁범죄가 씻어질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남북한 동포 전체가 모두 이 전쟁을 사주하고 지원한 강대국들의 희생자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전쟁으로 달라진 것은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었을 뿐, 남이나 북이나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남과 북 양쪽에서 삼백만 명이 넘는 엄청난 수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희생되었고 이산가족이 천만 명 이상 생겨났으며 국토의 거의 산업기반이 파괴되었으며 동족 간에 어마어마한 상호 증오심만 키웠습니다. 이렇게 보면, 6.25 전쟁은 동족을 원수로 만들고 민족 분열을 고착화시킨 사태에 지나지 않았던 셈입니다.
이 무렵 한국 천주교회는, 구약성경이 알려주는 희년 사상에 입각하여 해방 50주년을 맞이하는 때에 민족의 희년을 맞이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쇄신한 가르침 즉 무신론과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전향적 평가에 힘입어 북녘의 신자들을 일컬어 ‘침묵의 교회’라고 부르던 용어를 폐기하고 ‘북한선교’라는 명칭도 ‘민족 화해’라는 명칭으로 전향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이후 민족 분단 현실에 대한 이 전향적 분위기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면서 들어선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전쟁 공포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그리고 이재명 정부 등 민주 정부들도 이러한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이어받으면서 오늘날까지 6·25 전쟁을 기억하기는 하지만 하루빨리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평화체제를 실현시켜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강대국들에 의해 타의로 갈라진 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한 광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각성이 해방 후 반백 년만에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4. 온전한 광복을 위하여
이렇게 해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민족 내부에서 서로를 증오하던 분위기가 서로 화해하고 일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바뀐 지도 벌써 3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통치를 받아 종살이를 한 세월이 36년이요, 하필 그 노예 처지가 풀려나게 된 것이 외세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으며, 6·25 전쟁조차도 형식상으로는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끼리 서로 싸운 동족상잔의 전쟁이었지만 사실상으로는 소련 및 중국을 종주국으로 한 공산진영의 대륙 세력과 미국 및 일본을 종주국으로 한 자본진영의 해양 세력 사이의 국제 분쟁을 대리전으로 치룬 것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진 이상, 이 분단 상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6·25 전쟁에서 북측은 전쟁 초반에 소련이 제공한 군사장비로 부산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점령할 수 있었으나, 남측은 미국을 위시한 유엔 16개국의 참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었다가, 곧 이어 중국군의 개입으로 밀려 내려와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끝에, 현재의 휴전선에서 양측의 세력이 균형을 이룬 것만 보아도 외세가 개입하거나 의존해서는 현재의 대립과 분단 구도 이상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6.25 전쟁은 처음부터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어리석은 비극적 사태였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자주적인 화해 노력이 결실을 거두자면 주변 강대국들의 동의와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이는 그 동안 국력을 신장시킨 남쪽의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침공했다가 별 성과도 없이 이란 측의 요구가 반영된 휴전에 합의한 사태를 보아도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로서 패권을 행사하지 못하며 그럴 의지나 능력도 없음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는 저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고 남북 사이에 약속한 합의를 실천에 옮기려고 해도, 사사건건 발목을 붙잡고 있는 미국 정부의 손길을 뿌리치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압도적인 국민 여론이 뒷받침되어 주어야 합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국력을 반영하는 외교력이 발휘되려면, 이를 의식하는 국민 여론 역시 국력에 맞게 선진화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고 시기가 무르익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 한반도는 전 세계 안에서도 유일하게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자리잡은 탓으로 중국과 일본 이제는 미국까지 상전 노릇을 해 오면서 탐을 내던 노른자위 땅이었습니다. 국력이 약하고 지도자들을 잘못 만난 시절에는 그 강대국들의 종 노릇을 해 왔지만, 이제는 국력도 신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훌륭한 지도자를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굴종의 세월은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 민족이 살아온 이 땅이 지정학적으로 손꼽히는 요충지인데, 사람들이 못나면 종살이를 강요받았지만, 사람들이 깨어나면 그 반대가 될 수 있습니다. 섬 아닌 섬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주변부로 홀대받았던 역사를 청산하고 세계의 중심부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해양수산부가 1917년에 제작하여 정부 각 부서에 배포한 ‘거꾸로 본 세계 지도’를 보면,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꼭지점으로서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음은 물론 갈라져 있는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이룰 수 있는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냉전 구도였던 한반도가 그 동안은 갈라진 인류의 비극을 상징했다면, 앞으로는 인류의 공존과 평화를 열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미국의 침공 위협에 대비하겠다고 개발한 핵무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과 유엔으로부터 받고 있는 경제제재로 말미암아 민생이 피폐해져서 나라로서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반면에, 남한의 대한민국은 일본을 추월하고 미국과 중국조차도 무시하지 못할 역량을 키워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서 주변 나라들을 아우를 수 있는 생명과 평화의 샘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선진화된 역량으로 북한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나라 역시 우리 대한민국뿐입니다. 그러니 민족의 화해는 물론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진정한 독립의 길은 이제부터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는 가장 큰 시대의 징표입니다. 독립과 주체성으로 나아가야 할 진리와 평화의 길에 서 있는 우리에게 오늘 미사의 말씀이 커다란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신장된 국력을 반영하는 국민 여론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이 이 말씀에서 나올 것임을 우리 신자들이 알아야 합니다. 말씀과 신앙에 바탕한 역사의식이 우리 민족의 운명을 하느님 섭리대로 열어 젖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5.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
예언자 예레미야가 소개하는 힘센 용사처럼,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힘과 기운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표현을 빌자면, 한 사람이 세상에 죄를 들여와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된 시절이 지나가고 하느님을 닮으신 또 한 사람께서 들여오신 은총과 선물이 충만히 내리는 시절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시대의 주역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사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은 사람의 일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최고선에 속한 천상적 가치를 지닌 고귀한 일입니다. 그러니 이를 비판하거나 분단구도에 안주하려는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온 겨레 앞에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행동을 통하여 우리의 하느님 사랑과 겨레 사랑을 실천으로 증언할 때가 되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이나 유배 생활을 한 동족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이사 40,2)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을 상기시킨 세례자 요한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르 1,3)
이러한 말씀에 따라 지난 최근 2백여 년 간의 역사를 신앙의 눈으로 돌아보자면 이렇습니다. 19세기에는 조선 왕실과 유림들이 죄 없는 착한 백성을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모질게 박해했던 암흑의 시기였습니다. 그 백 년 박해의 죗값으로 민족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백 년 박해, 백 년 고난입니다. 20세기 전반에는 일제의 종살이를 해야 했고 그러고도 모자라 그 후반에는 강대국이 강요한 분단으로 겨레가 갈라져야 했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루었습니다. 식민 지배와 분단, 독재와 가난이 민족이 받아야 했던 벌이었습니다. 이제 맞이하고 있는 21세기에는 외세가 강요한 분단과 전쟁의 구도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상호 증오의 굴종에서 떨쳐 일어나 온 겨레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의식을 갖추어 사랑과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지난 6월 15일, 그러니까 분단 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던 바로 그 날에 이재명 대통령은 이탈리아 바티칸으로 가서 교황 레오 14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내년 세계 청년 대회를 기해 방한을 예정하고 있는 레오 14세에게 정부 차원의 공식 초청을 하는 동시에 북한도 방문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한 물꼬를 터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이제 김정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의 태도가 관건입니다. 그러니 민족화해위원회가 제안한 지향대로, 그리고 엘리야의 불 같은 열정을 본받아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습니다. 일어나 빛을 비출 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