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심판하지 마라."
2열왕 17,5-18; 마태 7,1-5 /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2026.6.22.
사람들 사이에서나 나라들 사이에서나 갈등은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이것이 인간 본성이요 세상의 현실입니다.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인 남한과 북한, 대한민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이에서도 그렇습니다. 5천 년 동안 함께 살았고 70년 동안 떨어져 살아온 사이이지만 그렇습니다.
오늘 독서에 보면, 북쪽에서 일어난 아시리아가 삼 년 동안이나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공격하는 바람에 사마리아 주민들은 강제 이주를 당했고, 그 대신 사마리아에는 아시리아 주민들을 집단 이주시켰습니다. 이는 아시리아가 부족한 인력을 재배치하는 한편, 점령지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사마리아를 비롯한 북이스라엘 왕국에는 우상숭배 풍습이 들어왔고, 이주당한 사마리아 주민들은 그곳에서 혼혈 정책에 순응하여 우상숭배 풍습에 적응하거나 또는 순혈주의적 태도로 해외 디아스포라를 이루어 유다인들의 전통을 이어나가거나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았습니다. 이 무렵에 열 지파의 상당 수가 사마리아 땅을 떠나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아무튼 북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던 열 지파들은 혈통상으로는 나라 안팎에서 순수할 수가 없게 되었고, 남유다 왕국을 이루었던 유다와 벤야민 지파 그리고 사제 직분을 맡았던 레위 지파의 일부 정도만 순수한 혈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유다인들은 순혈주의를 고수하려고 하고, 우리 민족도 예전부터 단일민족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민족의 정통성에 있어서나 하느님의 관점에서나 그리고 실제 인류 역사에 있어서도, 혈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입니다. 인류는 어느 민족이든 모두 다 하느님께로부터 창조된 그분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룬 문화가 하느님을 섬기느냐 아니면 우상을 숭배하느냐에 따라 하느님의 심판이 달라집니다. 하느님께서 노하신 것은 혼혈이 되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명하셨던 조상들의 전통을 저버리고 우상숭배 풍습을 따라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혈통상으로 별 의미가 없어진 열두 지파 체제 대신에 당신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는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새로운 하느님 백성다운 질서를 세우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투거나 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판이란 하느님께만 맡겨져 있는 일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이제 막 열두 제자의 공동체를 시작한 참이어서 험부로 다른 제자를 심판하지 말라는 뜻이었고, 공동체에는 공동선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질서가 상존합니다. 이 기준이 존중되지 못하고 각자가 다른 구성원을 심판하게 되면 공동체의 질서가 깨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칫 제자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부추길 수도 있으니 함부로 심판하지 말 것과, 그 보다는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빼내려는 겸손을 더 강조하셨습니다.
평소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안에서 겸손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7) 그런데 그런 스승님께서 생애 마지막의 순간에는 서로가 서로를 섬기도록 발을 씻어 주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겸손에서 섬김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신 것입니다. 이 상호 섬김에 필요한 희생 정신의 본을 보여주시고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희생을 앞두시고 성찬례를 제정하셨으며, 함께 나누어 먹을 빵을 당신 몸이라고 부르시고 함께 나누어 마실 포도주는 당신 피라 부르시며 축성하셨습니다. 이 빵과 포도주의 축성 제사는 고스란히 실제로 십자가상에서 피 흘리는 죽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시어 피를 흘리심으로써 당신 제자들과 새 하느님 백성의 죄를 씻어 주셨다고 알려주었습니다(묵시 5,9). 그리고 그분의 뒤를 따라 순교한 신자들도 어린양의 피로 자신들을 깨끗하게 정화시켰다고 알려주었습니다(묵시 7,14). ‘어린양의 피’가 상징하는 바 진리를 위한 희생이야말로 신앙과 공동체의 중심 가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몸에서도 피는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뇌와 심장에 피가 잘 돌지 않으면 치명적인 마비 증상이 발생하게 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또 교회의 여러 공동체들 안에서도 피가 잘 돌아야 합니다. 그 피는 혈통을 결정짓는 육신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희생이요, 겸손이자 섬김의 가치로서 이것이 영혼의 피입니다. 영적인 피에 해당하는 이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성혈 신심입니다. 피는 깨끗해야 하고, 순환되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와 이에 속한 공동체들이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희생과 섬김과 겸손으로 나타나는 성혈 신심이 깨끗해야 하고 또 원활하게 순환되어야 합니다.
유다 민족이든 한민족이든 또 다른 민족이든지 간에 인류의 역사에서는 혈통이 아니라 문화가 더 중요하고, 하느님께서도 이러한 관점에서 심판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듯이, 교회 안에서도 또 작은 공동체 안에서까지도 중요한 것은 겸손과 섬김 그리고 희생의 문화입니다.
열왕기의 저자는 북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당하고 그 백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은 직접적으로는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가 내린 조치에 따른 결과였지만,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께 죄를 짓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빼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풍속과 이스라엘 임금들이 만들어 낸 것에 따라 걸어갔기 때문이다."(2열왕 17,7-8) 이것이 열왕기를 포함한 역사서들에 담겨 있는 성경 역사신학의 일관적인 관점입니다.
이러한 역사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1945년에 일제로부터 우리 민족이 해방되던 무렵에 남북이 갈라져야 했던 것은 미국과 소련이 대립했던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완충지대를 한반도에 마련함으로서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자 한 정책과 소련의 지원에 편승한 김일성의 남침이었다고 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직접적인 원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욱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19세기에 조선 왕실과 유림이 죄 없는 백성을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백 년 동안이나 박해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분단의 원인뿐만 아니라 그 책임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도 동일한 역사신학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보면, 분단 후 80년을 넘기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하느님을 믿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는 북녘의 동포들보다는 하느님을 믿고 섬기고 있는 이들이 많은 남녘의 우리가 채워야 할 몫이 훨씬 더 큽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몫입니다. 그것은 적어도, 심판은 아닙니다. 민족이 어떻게 화해하고 일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이들이 남녘의 동포들을 설득해야 할 몫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년 여름에 한국을 방문할 레오 14세 교황이 한국 교회의 신자들과 국민 전체에게 던질 메시지가 이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