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8일 연중 제10주간 (월) 복음 묵상 (마태 5,1-12) (이근상 신부)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3)
그때 예수는 군중을 보았다. 그냥 많은 사람을 본 것이 아니다. 지친 얼굴들, 밀려난 사람들, 자기 삶을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산에 올라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그의 첫 가르침은 명령이 아니었다. 훈계도 아니었다. 더 노력하라는 말도 아니었다. 그의 가르침은 행복선언이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할 수 없는 이들에게 행복을 선언하는 가르침. 자기 안에서 아무 근거도 발견하지 못하는 이들, 더 이상 내세울 힘도, 붙들 자격도,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도 없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예수는 그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행복을 먼저 알아본다. 그러므로 이 행복은 감정의 상태가 아니다. 성공한 삶의 보상도 아니다. 하느님 나라가 이미 그들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선언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단순히 성격이 겸손한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마태오가 말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영혼의 밑바닥에서 더 이상 하느님 말고는 붙들 것이 없어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상처가 많아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가난 자체가 복이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그 가난 속에서 더 이상 자신을 포장할 수 없고, 더 이상 자기 의로 버틸 수 없고, 더 이상 거짓된 충만으로 자신을 속일 수 없게 되었기에, 하느님 나라를 받을 수 있는 빈자리가 생긴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에게 “행복해져라” 하고 말하지 않는다. “행복하여라” 하고 선언한다. 너희가 아직 느끼지 못해도, 너희가 아직 믿지 못해도, 하느님은 이미 너희 편에 와 계신다는 선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 말이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언젠가 그들의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그들의 것이다. 예수의 행복선언은 미래의 위로만이 아니라 현재의 전복이다. 세상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실패한 사람, 무능한 사람, 밀려난 사람으로 부른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자리를 본다. 세상이 비어 있다고 말하는 그 자리, 바로 그 자리가 하느님이 들어오시는 자리다. 그래서 행복선언은 가난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함부로 불행이라고 규정하는 세상의 판단을 깨뜨린다. “너희는 버려진 이들이 아니다. 너희는 이미 하느님 나라의 사람들이다.” 이것이 산 위에서 열린 첫 가르침의 놀라움이다.
이어지는 행복선언의 주인공들은 사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주석이다. 하나 하나의 곡진한 삶의 아픔을 주님이 행복함으로 어루만지고 있다. 그들의 행복을, 가치를 귀함을 선포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