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상 신부]2026년 6월 11일 (목)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복음 묵상 (마태 10,7-13) (이근상 신부)

작성자박베드로SJ|작성시간26.06.11|조회수41 목록 댓글 1

2026년 6월 11일 (목)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복음 묵상 (마태 10,7-13) (이근상 신부)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태 10,11-13)

이 복음은 파견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파견된 사람은 자주 묻는다. 뭐가 삐걱거릴 때, 내가 잘못했나. 내가 부족했나. 내가 더 잘했더라면 받아들여졌을까. 그러나 예수는 말한다. 아니다. 복음이 언제나 열린 문으로만 들어가는게 아니라는 것, 놀랍게도 평화조차 언제나 평화로운 환대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는 그래도 먼저 평화를 빌라고 한다. 그 집이 그걸 받을 만한지 확인한 뒤에 주라는 말이 아니다. 먼저 건네라. 먼저 축복하라. 먼저 마음을 열어라. 받아들여지면 그 평화가 그 집을 살릴 것이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평화는 너에게 돌아올 것이다. 물론 돌아온 평화는 가볍지 않다. 거기에는 거절의 기억, 무안함, 환멸, 상처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사라지거나 변질되지 않고, 돌아온다. 아무도 받아 주지 않은 그 평화는 돌아와 우리를 다시 지킨다.

그러므로 파견된 이는 일이 잘 되어가기 때문에 위로받는 자가 아니다. 생애 내내 단 한 사람에게도 복음의 열매를 확인하지 못하고, 평화가 받아들여지는 순간을 보지 못한다 해도 그 삶은 헛되지 않다. 예수는 그 난감함을 이미 알고 있다. 실패처럼 느껴지는 그 자리, 거절당한 평화의 쓰라림, 내가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어두운 물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의 약함이 일으킨 실수이리라 짐작하지만, 예수는 그 약함도 또 뭐가 뭔지 모르는 실패의 난감함도 없애 주겠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파견의 길 안에 본래 놓여 있는 여정임을 알려 준다.

이 위로는 차갑지 않다. 달달하진 않지만 깊다. 우리가 겪는 이 막막함이 사명 밖의 사고나 실패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게 맡긴 파견의 또 다른 얼굴, 감수해야 할 자리라면, 내 엉터리 같은 삶은 무너진 것이 아니다. 아직 길 위에 있는 것이다. 평화는 거절될 수 있지만, 파견은 헛되지 않다.

거절된 평화. 그렇게 내게 돌아온 평화. 아무와도 좋게 지낼 수 없고, 나 자신에게조차 그게 버거운 날에도 평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당신이 잠시 맡아 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다시 가서 주십사 청하면 된다. 당신의 평화는 언제고 우리 곁에 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hare/p/1Gy5QSa2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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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함께 | 작성시간 26.06.15 복음이 언제나 열린 문으로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것,
    놀랍게도 평화조차 언제나 평화로운 환대로 끝나지 않는다.
    극 공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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