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상 신부]2026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월) 복음 묵상 (마태 5,38-42) (이근상 신부)

작성자박베드로SJ|작성시간26.06.14|조회수38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월) 복음 묵상 (마태 5,38-42) (이근상 신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5,38-4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이 말은 본래 복수를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복수를 제한하는 말이었다. 받은 만큼만 갚아라. 더 갚지 마라. 앙갚음이 끝없이 번져 가지 않게 하라. 그러나 예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복수의 금지를 넘어, 사랑의 한계 없음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모욕을 받으면 모욕으로 돌아가고 싶다. 빼앗기면 빼앗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강요당하면 그 강요의 논리 안에서 똑같이 굳어지고 싶다. 우리 안에는 그런 마음이 있다. 예수는 그 마음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다만 그 마음이 우리의 전부가 되게 하지 않는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길 말고,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폭력을 견디고 방치하라는 뜻은 아니다. 예수 자신도 뺨을 맞았을 때 물었다. “내가 옳게 말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요한 18,23) 예수는 폭력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았다. 악을 못 본 척하지도 않았다. 다만 폭력이 자기 안에 또 다른 폭력을 낳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뺨을 돌려 대는 것은 굴종이 아니다. 이상한 자유다. 너는 나를 모욕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의 모양까지 정할 수는 없다. 너는 내 옷을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자유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너는 나에게 천 걸음을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걷는 다음 걸음의 의미까지 네가 소유할 수는 없다.

어쩌면 예수는 우리에게 아주 어려운 자유를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악이 내 행동의 형식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자유. 원수가 내 마음의 경계를 정하지 못하게 하는 자유. 받은 대로 돌려주는 낡은 장부를 찢고, 하느님의 방식으로 다른 응답을 시작하는 자유.

사랑은 뺨을 맞아도 끝나지 않는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hare/p/1ELbWg6dj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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