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상 신부]2026년 6월 23일 연중 제12주간 (화) 복음 묵상 (마태 7,6.12-14) (이근상 신부)

작성자박베드로SJ|작성시간26.06.22|조회수17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23일 연중 제12주간 (화) 복음 묵상 (마태 7,6.12-14) (이근상 신부)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7,13-14)

“좁은 문”, 또 생명으로 이끄는 비좁은 길에서 좁다, 스테노스, στενός는 양적인 좁음이 아니라 무엇인가 확장할 수 없이 곁이 막혀 있다는 뜻이다. 더하여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 비좁다 할 때 비좁음은 틀리보, θλίβω, 곧 “누르다, 압박하다, 짓누르다, 조이다”에서 온 말인데, 이 역시 무엇인가 단순히 공간의 비좁음이 아니다. 뭔가 눌리는 길이다. 남이 보이지 않는 욕구, 남을 존중하지 않는 욕구, 남을 내 불안과 인정욕과 성공과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는 욕구, 바로 그것이 눌려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의 좁음은 인간을 작게 만드는 억압이 아니라, 욕구가 사랑보다 커지지 못하게 하는 압박이다. 욕구는 처음부터 모두 악하지 않다. 그러나 욕구는 늘 한계 속에 있어야 한다. 제어되지 않으면 끝없이 넓어지며 내 얼굴 이외에 남의 얼굴을 지운다. 그래서 좁은 문은 욕구의 살해가 아니라 욕구의 식별이고, 좁은 문, 길은 욕구가 사람보다 커지지 못하게 하는 생명의 길이다.

반대로 “넓다"는 공간이 넉넉한, 마음껏 펼쳐질 수 있는”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넓은 길은 단순히 편한 길이 아니다. 욕구가 눌리지 않는 길이다. 화가 나면 쏟아내고, 갖고 싶으면 움켜쥐고, 인정받고 싶으면 드러내고, 불안하면 쌓아 두고, 외로우면 남을 붙잡고, 성공하고 싶으면 남을 밟고 지나가도 된다고 말하는 넓음이다. 세상은 이 길을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부추긴다. “너 자신을 펼쳐라”라고 말하며, 그 펼침이 누구의 자리를 빼앗고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예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욕구가 아무 검증 없이 넓어지는 곳에는 멸망이 있고, 욕구가 사랑 앞에서 눌리고 정화되는 곳에는 비좁지만 생명이 있다. 생명의 욕구 곁에는 늘 타인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산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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