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각자의 우물 안에 산다 / 김세희
“요즘 게을러졌는데요?”
토요일 새벽 5시, 운동장에서 달리고 있는데, 선배 러너가 한마디를 건넨다.
난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운동장에 나왔다. 어제 자기 전에는 스트레칭과 보강 운동으로 오늘 달릴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 달리기를 지속했다. 그래도 목동 마라톤 교실에서는 게으르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 훈련 프로그램으로 워밍업 30분 조깅 후 2000m를 마라톤 레이스 페이스보다 10초 빠르게 3번을 달렸다. 그런데 2000m 질주에서 내가 달리는 모습이 다른 러너들에 비해서 설렁설렁해 보였나 보다. 부상으로 한동안 달리기를 멈춘 이후 요즘 내가 달리는 속도가 다른 러너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느리고, 굼떠 보일 수 있다. 목동 마라톤 교실 기준에서 보면, 게으른 러너로 보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꾸 거슬릴 때
“선생님, 저는 제 기준에 벗어나면 바로 짜증이 나요. ‘그건 아니지’하는 생각이 들고, 신경에 거슬려요. 그러는 저 자신이 피곤해서, 좀 고치고 싶어요.”
“어떨 때 마음이 거슬리고 불편하세요?”
“지하철에서 누군가 큰 목소리로 대화한다거나 동영상을 소리가 나게 본다든가 할 때 ‘어휴, 못 배워서 저러나’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사무실에서도 동료들이 너무 큰 목소리로 장시간 이야기하면, 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힘들어요. 저라면 다른 사람들 방해 안 되게 메신저로 소통하거나 회의실 가서 이야기할 텐데 말이에요.”
“그럴 땐 마음에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이 있나요?”
“‘다 같이 지켜야 할 공공질서를 왜 지키지 않지? 저 사람은 왜 저러지? 다른 사람 생각은 안 하나?’ 생각하죠. 그런데 ‘나는 왜 맨날 남들이 하는 행동, 말 하나하나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또 그걸로 피곤해하지?’ 의문이 들어요.”
“각자 가지고 있는 공공질서나 예절에 대한 기준이 있고 또, 나는 지키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지키지 않으면 마음에 이미 거슬릴 준비가 되어 있죠. 그런데,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기준은 언제부터, 또 어떻게 해서 내면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대체 왜 저래?’ 직장 동료의 업무수행 방식과 태도, 가족의 행동과 표현이 내 기준에서 벗어나면, 마음속으로 구시렁거리게 된다. 우리는 살아온 시대, 자라온 환경, 교육, 문화, 종교, 관습 등에 따라서 각자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 기준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살면서 각자 가진 기준이 다르기에, 마음에 갈등과 오해, 거슬림이 생겨난다. 내가 가진 기준은 타인과 외부를 향한 잣대가 되고, 또 나를 가두는 벽이 된다.
따지듯 말하는 동료의 말투
정저지와(井底之蛙), 좌정관천(坐井觀天). ‘우물에 앉은 개구리’, ‘우물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그 우물이 세상 전부이고 그 우물 위로 보이는 하늘이 우주이다. 우리에게도 각자 태어나고 자라온 우물이 있다. 그런데, 내 우물 안에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도 자기 우물이 있는지, 그 우물은 내 것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가 없다. 내 우물 안에서는 다른 사람의 우물이 보이지 않고, 내가 배우고 듣고 아는 이 세상이 전부다. 내가 생각하는 게 내 기준에서는 모두 맞다.
자기 우물이 전체가 아니라 세상의 부분이라고 자각하게 되면, 마음이 유연해진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언제, 어떻게 내 안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그러면, 그것이 과연 맞을까? 의문을 품게 되면 내 가치관이 상대적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자신에 대해 이해되면 다른 사람도 각자의 기준과 나름의 가치관을 가진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의 기준은 또 어떻게 다른지도 생각하게 된다.
"선생님, 부서를 옮겼는데, 동료 하나가 업무 중에 하도 따지듯이 말하니까 처음엔 제가 뭐 잘못했나 싶고, 그 동료를 대할 때마다 위축되었어요. 그런데 지내다 보니까, 원래 업무 말투가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쟤는 항상 왜 저래?’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사람은 모두 다르다. 각자 사정이 있고 또 자기 기준이 있는 거지’ 생각하니까 불편한 마음이 사그라들어요.”
영태씨는 부서를 갓 옮기고 나서 동료의 말투, 태도에 마음이 쓰이고, 신경이 예민해졌다. ‘업무에 실수가 있었나?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일할 때는 긴장이 높아졌다. 두 달 정도 지나면서 그 동료의 업무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는 걸 알고 나서는 괜찮아졌다.
내 우물을 알고, 네 우물을 알면
“저 요즘 많이 편안해졌어요. 선생님. 약을 이제 먹지 않아도 되겠어요. 일할 때 누가 공격적으로 말하거나 언성을 높이면 가슴이 쿵 하고 한동안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지금은 지나가 져요. ‘나라면 저렇게 안 할 텐데, 나라면 부드럽게 이야기할 텐데’생각이 들긴 하지만, ‘저 사람은 늘 그러는데, 그럴 사정이 있나 보지, 괜찮아’ 생각하고 나면 마음이 다시 안정되어요.”
영미씨도 유관부서 직원의 말투가 공격적이라고 느껴지곤 했는데, ‘그 사람 편에서는 업무 진행을 빠르게 하려고 의도된 어투구나! ’이해되며 마음이 편해졌다.
겉으로 보이는 말이나 행동의 표면만 보면, 상대가 이해되지 않고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이 행동하는 배경과 바탕을 함께 보면 오해가 풀린다. 산에서도 내가 서 있는 위치만 보고, 숲 전체 가운데 내가 있는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면 길을 잃어버린다. 길을 잃었을 땐 전체를 바탕으로 내 위치를 파악하면 출구를 찾는다. 상대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그가 살아온 환경, 시대 등 배경 전체에 올려놓고 보면 이해가 된다.
상대를 대할 때 그가 가진 가치관, 배경과 함께 보고 이해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내가 우물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나는 왜 이런 기준을 가지게 되었지?” “나는 왜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나만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 깨닫게 되면, 나 아닌 다른 사람도 가치관과 기준이 만들어진 바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부모님, 가족, 친구, 자라온 환경, 내가 받은 교육, 속한 사회, 문화, 종교가 모두 내 우물을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내 우물을 알고, 상대가 속한 우물을 배경으로 상대를 보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김세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저자
수정 2026-06-15 09:08
등록 2026-06-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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