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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흙은 생명의 뿌리 / 이훈

작성자이훈|작성시간26.06.06|조회수37 목록 댓글 1

흙은 생명의 뿌리 / 이훈

 

 

아이들마다 앓은 병은 홍역과 태열이 고작이었다. 홍역은 그때만 해도 누구나 한 번 치르는 병이었지만 태열은 흔치 않은 피부병인데도 그의 아이들은 하나도 안 빼고 다 앓았다. 그 병은 걸음마할 때까지의 한창 예쁜 아기를 보기 싫게 했을 뿐 아니라 자각증상도 상당히 괴로운 편이어서 아이들이 돌 안에 심하게 보챘다. 병원 약이나 생약도 태열엔 별로 신통한 게 없었고 그때의 속설로는 아이가 흙을 밟게 되면 저절로 낫는 걸로 돼 있었다. 그건 아마 걸어다니게 되면 낫는다는 뜻이련만 그의 어머니는 그동안을 못 참고 어린 손자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가 맨발에다 흙을 쓱쓱 묻혀주면서 흙 밟고 태열 뚝 떨어져라, 흙 밟고 태열 뚝 떨어져라, 하고 주문처럼 되뇌곤 했다. 그럴 때 흙은 신비한 생명력의 근원이고 자연의 만병통치약이었다. 흙과는 본능적인 친화감이 있는지 아이들도 그런 흙장난을 좋아했다. 본디 청결을 좋아하는 맹범씨였지만 그의 어머니가 손자의 발에 흙을 묻히는 경건한 의식에는 미소를 금치 못했었다. 어머니에겐 종교에 가까운 의식이 아이에겐 유쾌한 놀이였고 의식과 놀이의 조화가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한번 발에 흙을 묻히는 재미를 터득한 아이는 손으로도 흙을 만지고 싶어했고 나중엔 흙에 뒹굴고 싶어했다. 그러고 나서 흙강아지가 된 아이를 씻기면 밭에서 갓 뽑은 무를 씻는 것처럼 살갗이 싱싱하고 건강했었다.

 

맹범씨는 흙을 보자 그 옛날의 어머니처럼 손자와 함께 흙장난을 하고 싶어졌다. 아이의 손발과 옷은 벌써부터 꾀죄죄했지만 그건 흙이 아니라 도시의 먼지였다. 진짜 흙을 묻혀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그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뜻밖의 생각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손자에게 할아버지다운 정이 우러나는 걸 느꼈다. 그는 돌이 적은 고운 흙을 골라 아이를 내려놓았다. 예상한 대로 아이의 표정이 싱싱하게 살아나면서 흙과 자유자재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기운차게 흙 위를 기고 뒹굴고 흙을 파고 주무르고 흩뿌리고 맛보면서 연방 낄낄거렸다. 아이의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맹범씨는 개의치 않고 같이 장난을 치면서 히히거렸다. 아이의 손톱 밑이 새까매지고 머리털 속에도 흙이 버적버적했다. 어느 틈에 흙을 주워먹었는지 아이의 입에서 흙물이 흐르면서 욕지기를 했다. 맹범씨가 더러운 손가락을 아이 입에 넣고 휘저었다. 아이의 입속이 온통 깔깔한 흙이었다.

 

박완서, <애 보기가 쉽다고?>, <<쥬디 할머니>>, 문학동네, 2026. ‘밀리의 서재’

 

 

 

자연으로부터 특별히 많은 혜택을 받는 아이들에게 자연과의 접촉은 더욱 중요하다. 아이들이 야외로 나가 놀면서 흙과 모래를 손으로 만지고 나무에 기어올라가도록 그냥 내버려두자. 손과 혀와 얼굴을 통해 자연을 맛보고 직접 느끼면서 평생 동안 균형 잡힌 장내 미생물을 키워나갈 수 있다. 아이들이 가끔 흙으로 옷을 잔뜩 더럽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연이 신체와 뇌에 주는 최고의 선물이니까.

 

미셀 르 방 키앵, 김수영 옮김,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프런트페이지, 2023. ‘밀리의 서재’

 

 

박완서 소설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아기의 흙놀이가 증조할머니에게서 증손자까지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그만큼 유서가 깊다는 뜻이다. 생명 진화의 역사가 담겨 있다. 무릇 생명은 흙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엄마의 품이기나 한 듯이 흙에 앉으면 편안해지고 즐겁기까지 한 것이다. 흙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약이다. 마음은 안정되고 몸은 튼튼해진다.

 

이런 즐거운 놀이가 점점 옛날의 얘기가 되어 가고 있다. 웬만한 길은 포장되어 있는 데다가 땅은 오염됐다. 거기다가 기술의 혁명적인 발달로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일이 드물어진다. 장난감도 사금파리나 흙이 아니라 상품으로 나온 걸 인터넷에서 주문한다. 이제 소나무를 베어다 칼을 만드는 아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 어른도 예외일 수 없다. 걷기는 건강을 생각해서 마음먹고 하는 행위이다. 웬만하면 밭에 걸어가지 않는다. 차가 있다. 호미로 김을 매는 사람도 점점 찾기 어려워진다. 아이도 어른도 이제 놀이는 몸으로 하지 않고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직접 경험이 멸종되는 세상에서 학교는 아주 중요한 공간이다. 아이가 또래를 만나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데는 학교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가야 하고 스마트폰과도 놀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학교는 몸을 움직이면서 친구, 자연과 관계를 맺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물론 소풍도 수학여행도 가야 한다. 수박도 키우자. 그래서 흙과 친해지게 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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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곽주현 | 작성시간 26.06.08 흙을 만지며 자라는 아이는 이제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 부모부터가 흙만지는 것을 무슨 병원균체 대하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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