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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25-2)

[고친 글] 베토벤의 '운명'과 글쓰기 / 정희연

작성자정희연|작성시간25.11.12|조회수26 목록 댓글 0

베토벤의 '운명'과 글쓰기 / 정희연

 

“빠빠빠밤-, 빠빠빠밤-.”

 

운명은 그렇게 문을 두드렸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의 첫 음이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보다 한 생의 경고음이자 선언이었다. 어둠과 맞서는 인간의 의지,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으려는 생의 숨결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 한 시대의 고뇌와 희망이 그 짧은 리듬 안에서 살아 숨 쉬었다. 그리고 그 울림은 내 운명까지 바꾸어 놓았다.

 

고요하던 세상을 향해 갑작스레 문을 두드리면서 1악장이 시작된다. 그것은 삶이 그에게, 또 우리에게 건넨 질문이었다. 청력을 잃어 가던 그는 절망의 문턱에서, 세상의 혼란 안에서 음악을 붙잡았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오스트리아 빈을 점령하던 때, 그의 악보 위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모든 소리가 멀어져 가던 그때에도, 그는 마음에서 꺼지지 않는 리듬을 들었다. 그것은 두려움 속에서 피어난 결심이었다.

 

억지로 미소를 짓는 자리,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대화, 함께 있지만 더 외로워지는 공간에서 나는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어떻게 나를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불안과 막막했던 순간에서, 베토벤이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 마음을 울렸다. 마치 어둠을 가르며 번쩍이는 번개처럼, 그 울림은 내 안에 숨어 있던 무언의 열망을 일깨웠다. 그 리듬에서 두려움을 마주하, 동시에 나를 향한 첫 희망의 걸음을 내디뎠다. 아무도 대신 써 줄 수 없는 문장, 아무도 걸어 줄 수 없는 내 길. 어둠에서 나만의 빛을 찾아가야 했다.

 

전투적인 1악장과 달리, 2악장은 자유롭고도 아름다운 변주곡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다독이듯 음악은 조용히 다가와 마음을 감싼다. 베토벤은 고통의 한가운데에서도 인간의 품격과 희망을 노래했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선율 속에는 단단한 신념이 숨어 있고, 소용돌이치는 하늘 사이로 스며드는 한 줄기 햇살처럼 내면의 평화와 회복의 순간을 그려 낸다. 운명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 있지만, 베토벤은 인간의 마음이 언제나 빛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마치 새벽 첫 햇살이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조심스레 스며드는 듯, 내 글에도 작은 온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두려웠다. 때로는 왜 써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두렵고 불안한 문장들 사이로, 나도 모르게 나를 다독이는 말이 피어났다. 그 순간마다 나는 내 마음의 숨결을 느끼기 시작했다. 글에서 내 안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언젠가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희망의 선율로 남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꽃피기 시작했다.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번의 어둠은 처음의 공포와는 달랐다. 제3악장 스케르초(빠른 템포, 경쾌하지만 동시에 긴장감 있는 리듬, 더 역동적이고 때로는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는 신비롭고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도 불굴의 용기가 꿈틀거린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낮게 깔리고, 운명 동기를 변형한 리듬이 다시 등장하며, 중간부의 피치카토(보통 활로 켜는 현악기를, 손가락으로 튕겨서 소리를 내는 기법)는 긴장 속의 침묵, 폭풍 전의 고요를 암시한다.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려는 인간의 결심과, 전투를 준비하며 다져진 마음은 4악장에서 찬란한 빛으로 터져 나온다.

 

내 마음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탓에, 세상은 그저 시끄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소음은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결과였다. 리듬을 잃고 세상의 박자에 흔들리던 나였지만, 글을 쓰며 조금씩 나를 붙잡기 시작했다. 혼돈에서 내 마음을 다시 세우는 연습이었다. 베토벤이 운명과 맞서 싸웠듯, 나 또한 내 삶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며, 나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에서 나는 나를 찾아가고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에 머물던 나를 카이로스의 세계로 발을 옮기며, 한 박자 한 박자를 새롭게 쓰고 있다. 가슴벅찬 선율의 응원을 받으며, 완벽하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내 안의 떨림과 울림으로 다시 나를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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