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2026년 봄 / 김근옥
젊은 날의 나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이 점점 재미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젊고 화려했던 내 모습은 조금씩 빛을 잃고, 삶은 단조로워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저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살아 보니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이상하게 해가 갈수록 인생은 더 흥미로워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넓어졌고, 하고 싶은 일들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예전에 미처 해보지 못했던 일들에 관심이 생기고 배움에 대한 욕심도 커졌다. "이제 시작해서 될까?"라는 생각보다 "지금이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이 자주 들었다.
나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나둘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버킷리스트 중에 요리 자격증 따기, 새로운 악기 연주 등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글 쓰기를 좋아했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글로 적어보는 시간이 좋았다. 기쁘고 즐거운 날이나 속상하고 힘든 날에도 글 속에서는 솔직해질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나는 거의 매일 밤 일기를 쓰고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 보여 줄 수준의 글은 아니다. 그저 하루의 감정과 생각을 끄적이는 정도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 생각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도 써 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늘 바빴다. 유치원 일과 개인적인 일들에 치여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다. 게다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배워야 할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생각만 하고 있던 어느 날, 새로 발령받은 병설유치원에서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간절히 원하면 길이 열린다더니, 내게는 교장선생님이 바로 귀인이었다. 교장선생님은 글쓰기의 즐거움과 배움의 기회를 알려 주셨다.
그렇게 나는 '일상의 글쓰기' 과정을 수강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설렘만큼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매주 한 편씩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숙제처럼 느껴졌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어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하니 화면만 바라본 적도 많았다. 방향은 정했는데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다.
교수님께서 매주 내어주신 글감 중에는 반가운 것도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처럼 마음속에 이미 차곡차곡 쌓여 있는 기억들은 비교적 쉽게 써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주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글이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경험과 감정이 떠오르는데 그것을 적절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내가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전하고 싶은데 마음만큼 글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부족한 점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수능을 잘 보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조카들에게 늘 이야기 했었는데 정작 내 자신은 책 읽기를 소홀히 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적절한 어휘 하나를 찾지 못해 문장을 몇 번이고 고쳐 쓰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다. 책 속에 담긴 수많은 문장들이 결국 좋은 글쓰기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글을 쓰며 다시한번 배우게 된 것이다.
게을러질 때가 많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완벽한 글을 쓰기보다 꾸준히 써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써 보자는 마음으로 한 주 한 주 과제를 이어 갔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글쓰기의 매력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하게 지나쳤던 일상 속에서 글감이 보이기 시작했고, 무심코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풍경과 감정들이 어느새 글이 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을 만난 것이다. 화상 수업으로만 만나던 교수님과 선생님들을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했던 시간이 참 소중했다. 글로만 읽었던 선생님들의 삶을 직접 듣게 되면서 사람과 사람이 글을 통해 얼마나 깊이 연결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글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선배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도 커졌다. 한 학기 동안 매주 글을 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인데 벌써 10학기가 넘도록 꾸준히 글을 써 오셨다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 꾸준함과 성실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직접 경험해 보니 더 잘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나 역시 조금 더 오래,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깊은 봄을 지나 이제 여름의 문턱이다. 돌아보니 이번 봄은 내게 유난히 특별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배움에 도전했고,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꿈을 한 걸음 실천해 보았기 때문이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와의 약속을 지켜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선생님들과 함께 글을 쓰며 보냈던 2026년의 봄날은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뗐지만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꽃이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계절을 기다리듯이 나 역시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려 한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정희연 작성시간 26.06.08 정말 찬란했던 2026년 봄 이었네요.
수능을 잘 보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글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 참 따뜻하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이팝나무 작성시간 26.06.08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면 이 방에 정말 잘 들어오셨네요. 아직 젊으니 오래하면 누구보다 잘쓰게 될 겁니다. 지금도 처음보다 많이 좋아진걸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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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미숙 작성시간 26.06.09 찬란한 봄에 저도 낄 수 있어서 좋네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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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미옥 작성시간 26.06.09 저는 첫 학기가 참 무서웠는데... 하하. 선생님께는 찬란한 봄이었다니 다행입니다. 글 재밌게 읽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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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상우 작성시간 26.06.09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하루 하루 발전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느끼실 것입니다. 성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