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해냈다 / 이임순
우중충한 날씨 같은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5개월 전 약속이라 참석은 하는데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가는 것 같다. 약속 장소에 회원이 도착한다. 모두의 표정이 밝다. 나도 애써 웃음을 띤다. 그러다 시들해진다.
일행을 태운 차는 쉼 없이 두 시간을 달려 목표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다. 안내원을 만나 승선표를 받고 서둘러 홍도행 배에 오른다. 내 자리는 236번 맨 끝이다. 일행 다섯 명이 앞뒤로 앉는다.
배가 출발하고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나마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속이 매스껍다. 기분을 바꾸려고 심호홉을 계속한다. 다소 진정된 속이 배가 흔들거리니 다시 거북하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니 승무원이 비닐봉지를 내민다. 내 앞의 사람도 그것을 들고 화장실 문을 연다. 구석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비닐봉지를 열어 얼른 입을 댄다.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몸을 잔뜩 웅크리고 토사물을 쏟아낸다. 그러고 나니 정신이 안개 낀 유리창 같다는 느낌이 든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나오는 사람 얼굴이 새하얗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얼른 그 안으로 들어가 변기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은 허둥지둥 간단히 먹었는데 어제 것까지 모조리 나온다.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입 주위를 닦는데 사람이 들어온다. 볼 일이 있으니 자리를 비워달라고 한다. 옆으로 비켜 앉으니 내 행세를 보고 더이상 말을 않고 변기에 볼 일을 본다. 두 여자가 위 아래로 쏟아낸다. 그녀가 나가면서 “당신이 나 보다 심하요?” 한다.
한참 만에 자리로 돌아가니 일행이 놀라며 얼른 입구 쪽으로 앉으란다.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사람들이 짐을 챙기는데 만사가 귀찮고 눕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 가방까지 들고 눈으로 내리자는 신호를 보낸다. 겨우 걸음을 떼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일행이 카트에 가방을 싣는다. 그 속에 노트북이 있는데 오르막길에서 떨어질 것 같아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좁은 골목길이 사람들로 가득 찬다. 안내원이 다음 일정이 있으니 숙소에 가방만 내려놓고 바로 나오라고 한다. 그 소리가 당신도 와야 한다고 하는 것 같아 참 냉정하게 들린다. 함께하는 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눈을 질끔 감고 문을 닫는다.
1코스는 해안을 따라 걷는 둘레길이고, 2코스는 산 중턱까지 데크 길인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장관이란다. 3코스는 학교 옆을 돌아 해안가인데 거기서 저녁 식사를 한다며 자기 몸의 상태에 따라 걸으라고 한다.
일행 다섯 명은 식당으로 먼저 간다. 부실하게 먹은 점심을 싱싱한 생선회로 보충부터 하자는 것이다. 평소에는 입에 대지도 않던 막걸리 잔이 내 앞에도 있다. 먼저 시원한 냉수로 빈속을 다스린다. 육지와 달리 바다에서 건져 올리고 해풍으로 자란 나물로 된 상차림에 큰 생선회 접시가 놓인다.
누울 자리만 보이더니 싱싱한 회와 푸짐한 반찬을 보니 먹어야 기운을 차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구수한 이야기가 곁들여 입을 즐겁게 한다. 속을 든든하게 하려고 양파, 미역, 톺, 방풍나물, 밭에서 갓 솎아 온 상추를 우직우직 씹는다. 모듬회와 해삼과 소라가 지금까지 먹어본 것과 다르다며 젓가락이 오간다.
일행 중 다리가 불편한 두 사람이 미적거린다. 고생하고 왔으니 홍도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다 눈에 담겠다는 생각으로 둘레길을 나선다. 평소의 내 신체 리듬은 아니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다. 벌써 하산하는 사람이 있어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걸음을 빨리 뗀다.
군락을 이르고 있는 원추리가 눈을 크게 뜨게 하고 유난히 반짝거리는 나뭇잎이 피로를 덜어낸다. 둘레길이 배에서 잃어버린 내 감각을 불러들인다. 포기하지 않고 길을 나선 자신에게 스스로 칭찬하니 걸음이 활기차진다.
실로 오랜만에 배 멀미를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족이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마라도 가는 배에서 심하게 속이 뒤틀어 올랐다. 그리고는 여태 편하게 배를 탔는데 오늘 멀미는 요즈음 내 심경의 변화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이틀 전 치른 지방선거에서 평소 내가 존경하는 후보자 중 한 사람이 예상 밖으로 밀렸다. 그 충격이 심경에 변화를 주었다. 지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분이라 더 실망이 컸다. 그래서 나설 때부터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 한 자락을 두고 온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소 불편한 몸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내 끈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2박 3일의 여행은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계기가 아닌가 싶다. 첫날 일정을 잘 마무리했으니 남은 날도 몸 상태를 최대한 끌어올려 즐겁게 보내리라 믿는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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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과수원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9 심리적인 부담이 많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지방선거 휴유증이 빨리 없어지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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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미숙 작성시간 26.06.09 고생한 만큼 즐거운 시간 보내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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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과수원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9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 중입니다. 여행 내내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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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미옥 작성시간 26.06.09 배 멀미 정말 힘든데요. 여행 잘 마무리하신 걸 보니 선생님은 글도 건강도 최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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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과수원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9 고맙습니다. 내가 지방선거에 출마한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가 많네요. 아직도 털어내려고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