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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26-1)

지금은 쉬어 갈 때 / 이팝나무

작성자이팝나무|작성시간26.06.07|조회수61 목록 댓글 2

지금은 쉬어 갈 때 / 양선례

 

정년 2년을 남겨 두고 학교를 옮겼다. 이젠 진짜 물러설 곳 없는 교직 생활 마지막 근무지다. 작은 학교로 가고 싶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개교한 지 만 3년이 된 학교에 제2대 교장으로 부임했다.

 

신설 학교여서 시설이나 교육 환경은 훌륭했다.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짓는 중견 건설회사가 설계를 맡았다더니, 과연 기존에 우리가 알던 학교와는 구조가 많이 달랐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오르면 내 사무실이 있다. 교무실도 같은 층이고, 행정실은 3층에 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은 1층과 2, 3층에 고르게 흩어져 있다. 4층에는 관리실과 방송실, 시청각실과 예체능 방과 후 교실만 있어서 점심 시간이나 되어야 학생을 만난다. 

 

복도도 일반 학교보다 훨씬 넓다. 전관과 후관이 연결되는 통로는 교실 한 칸이 더 들어갈 정도이다.  앞에는 잔디 운동장, 그 너머에는 포스코(POSCO)로 들어가는 6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또 시에서 개발한 택지와 녹지 공간도 만들어져 있는데, 이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 건물이 들어서 있는 데다 학교가 있는 데가 지대가 높은 편이라 전망이 좋다. 왼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철강 회사인 포스코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멀리 오른쪽에는 광양과 여수를 이어 주는 이순신 대교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안개에 싸인 현수교 꼭대기만 보여 더 운치 있게 다가온다.

 

출근하여 커피포트에 물을 담으면서 창밖을 바라보면 과분한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는 사무실 규모는 비슷했으나 1층인 데다 바로 옆에 학생들 놀이 공간이 있어서 중간놀이나 점심시간이면 창문을 닫아야 회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재잘되는 그 소리가 학교라는 걸 깨닫게 해 주기도 했으나, 과열된 체육 시간에 아이들이 내는 소리나, 방과 후에 욕하며 싸우는 소리는 소음이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올해는 신선 놀음이다. 

 

구성원도 맘에 들었다. 작년에는 18학급, 올해 23학급으로 다섯 학급이나 늘어서 새로 전입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게다가 아이비(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 연구학교여서 승진하는 데 필요한 점수를 따려는 선생님이 몰렸다. 아이비(IB) 교육은 스위스 비영리 교육 재단에서 운영하는 국제 인증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말한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으로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신장시킬 수 있지만 기존에 하던 우리 나라의 교육과정과는 다른 점이 많아서 목표에 도달하려면 교사들이 끊임없이 탐구하고 연구해야 한다. 또 관심 학교에서 후보 학교, 월드 스쿨로 인증받으려면 어렵고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하고 싶다는 열정과 의지가 있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한 단계 전진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와 비용이 따른다. 대구와 제주 교육청에서 먼저 시작하였고, 이제는 전국으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우리 학교도 작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는데 광양 청내 초등학교에서는 우리가 유일하다. 새로 분양된 아파트 지구에 신설된 학교여서 학교 특색으로 잡아가기에는 적당한 사업으로 보이지만 갈길이 구만리인 걸 생각하면 어깨가 무겁다.

 

여러 학교를 옮겼지만 제자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람결에 교단에 섰다는 소식조차 들은 적 없었다. 선생이 변변찮아서 그런가? 신규 교사로 발령받아 온 제자와 동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지인에게서 들으면 부럽기 짝이 없었다.

 

올해 드디어 그 소원을 이뤘다. 작년의 일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름만 듣고도 바로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물오른 나무처럼 보드랍고 빵빵한 뺨을 가진 그는 아주 귀여운 미소년이었다. 조금 덜렁대긴 했지만 유창한 목소리로 발표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두루 친해서 인기도 많았다. 특별히 그 아이를 기억하는 건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이름한 이름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그 아이의 부모님이 나와 같은 학교에 근무했다. 아버지는 교사, 엄마는 조리사였다.

 

나는 8반까지 있는 3학년 담임이었는데, 우리 반 아이 재웅이는 눈이 먼 할머니와 살았다. 아버지는 타지에서 돈 버느라고 한 달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했다. 앞이 안 보이는 할머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오는 그 아이를 상상해 보았다. 숙제를 봐 주는 건 물론이고 준비물을 챙기거나 체험학습 날 도시락을 싸는 것도 버거울 것이다. 마침 급식실이 우리 교실 바로 아래에 있었다. 조리사 님께 부탁하여 남은 반찬 중 먹을 만한 것을 매일 통에 담아 아이에게 들려 보냈다. 지금은 어림없는 일이지만 90년대 중반, 학교 급식이 막 시작될 무렵에는 가능했다. 아이가 불편하지 않게 배려한다고 했지만, 행여 상처로 남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혔지만 그도 나도 사는 데 바빠서 따로 연락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정확히 30년 만에 제자와 함께 근무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기억 속의 미소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담배에 찌든 핏기 없는 얼굴의 노총각이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얼굴이 남아 있었다. 오래 기다린 일이라 반가우면서도 두려웠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1년을 책임진 담임으로서 최선을 다해 교육한다고 했지만 돌아보면 부끄러운 기억도 많다. 그때는 아동 학대법이 적용되기 전이라고 변명해 보지만 시험 보고 나면 체벌도 서슴지 않았다. 제자는 좋은 면만 기억하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학교도 맘에 들고, 선생님도 훌륭하며 제자도 만나서 마지막 근무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사다마였을까. 이번 학기는 유독 자주 아팠다. 4월부터 시작된 이석증은 아직도 증상이 남아 있다. 올해처럼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기는 처음이다. 유난히 골골거리고 기운을 차리기 힘들었다. 늙어가는 징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장이 나면 고쳐 쓰고, 부족하면 채워 써야지 어쩌겠는가. 잠시 쉬어 가는 길이라고 위로해 본다. 

 

이제 학기를 마치려면 한 달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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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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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희연 | 작성시간 26.06.08 교사로 성장한 제자를 만나 소중한 소원도 이루시고,
    좋은 환경을 갖춘 학교에 계시면서도 늘 앞만 보고 달려오시느라 몸에 무리가 오신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섭니다.
    교직의 마지막 아름답고 평안하시기를 응원합니다.
  • 작성자조미숙 | 작성시간 26.06.09 아프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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