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제사 데이트 / 조미숙
아버지가 막내여서 우리 집은 제사가 없었다. 그나마 1년에 두 번의 명절이 있어서 색다른 먹을 것이 생기니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평생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집의 차례상은 빈약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온 동네에 쑥 삶는 냄새가 진동했다. 먹을 게 거친 쑥떡밖에 없어서 너무 싫었다. 과일은 구경하는 것으로 족했다. 간혹 찾아오는 손님들의 차지였다. 제사 있는 집이 부러웠다.
결혼해서 시아버지 제사를 모셨다. 처음에는 전 부치고 청소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나머지는 시어머니가 알아서 했다. 그러다 일이 생겨 우리 집으로 제사를 옮겼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다. 내 집이 주는 위안이 너무 좋았다. 시어머니는 오시지 않고 작은시누이네만 유일하게 참석한다. 더 이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눈치를 안 봐도 됐다. 시어머니가 차렸던 대로 따라 했다.
오늘 일요일이 제사다. 처음으로 결혼 30년 만에 남편과 함께 준비했다. 1년에 명절 당일 빼고 몇 번 안 쉬는 휴일인데 딱 맞았다. 소원이 이루어졌다. 명절 대목에 남편 가게에 나가 일을 돕다 보면 남편과 시장을 보는 여자들이 부러웠다. 나는 언제나 남편과 명절을 준비해 보나? 이젠 모두 포기하고 살았는데 느닷없이 이런 행운이 찾아왔다.
아침에 시어머니 가게 문을 열어주고 들어온 남편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냥 자라고 둘까 하다가 오전에 강아지와 산책하고 오는 길에 시장을 봐야 한다고 얘기해 뒀던 터라 열 시쯤 깨웠다. 양을산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사 온 커피를 마시는 여유도 부렸다. 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와 점심으로 열무김치를 넣어 비빔국수를 해 먹었다. 남편이 양이 많다고 제발 먹을 만큼만 하라고 구시렁댄다. 그 얘기를 전 부치다 또 들었다.
설거지하고 나서 남편에게 전 부칠 준비를 하라고 이르고 난 동그랑땡 양념을 했다. 고기를 한 근 이상만 갈아준다고 해서 의도치 않게 양이 많아졌다. 간을 보느라 아주 작게 부쳐서 먹어봤더니 괜찮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남편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 한참 핸드폰과 한몸이더니 드디어 다가온다.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내가 숟가락으로 떠서 프라이팬 위에 모양을 잡아주면, 밑이 노르스름해지고 딱딱한 느낌이 들면 뒤집으라고 했다. 바닥에 앉아 하자니 힘드나 보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오전에 생선을 쪄 두어서 나물만 무치면 됐다. 또다시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고 나서 나물을 준비하고 제사에 쓰일 그릇을 씻었다. 그 사이 남편은 뒷정리하고 청소기를 든다. 그러더니 왜 안 되냐고 묻는다. 분명 충전이 되어 있을 텐데 하며 내가 전원 버튼을 누르니 잘 돌아간다. 처음으로 청소기를 돌렸다. 물걸레 청소기도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이 세월을 어찌 살았나 싶다. 물론 어질러진 물건 치우고 그때그때 닦기는 하지만 이렇게 청소기를 든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함께 하니 훨씬 쉽고 좋다. 손목이 아파 보호대를 끼고 하는 걸 봤으면 안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난 결혼하고 부모님 모두 돌아가셨어도 첫 제사조차 가지 못했지만, 얼굴도 모르는 시아버지 제사는 꼬박 모셨다.
작은시누이가 가고 뒷정리를 했다. 저걸 또 언제 치우나 싶었는데 남편이 말끔하게 설거지한다. 음식 정리하고 앉으니 어느덧 열 시가 넘었다. 아까 잠깐 쉴 때 몇 마디 적다가 만 글을 이어 쓴다. 미리 쓰면 좋을 텐데 항상 이렇다. 이 글도 얼른 마저 써서 올려야 하고,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학교 수업이 있어 피피티(PPT)도 한번 들여다봐야 하는데 마음이 바쁘다. 오후 수업 준비까지 해가야 한다.
큰딸이 아빠가 많이 도와줬냐고 물었다. 그게 게 아니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답했다. 별다른 말은 안 했어도 남편도 많이 느꼈으리라. 이렇게 둘만 살아가야 하는데 가능하면 함께 하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았으면 싶다. 오랜만에 남편과 데이트한 기분이었다. 바쁘게 살다 지쳐갈 즈음 문득 찾아오는 여유 같다. 지금까지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