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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26-1)

[고친 글] 감기를 앓으며 마음을 쓰다 / 송덕희

작성자송덕희|작성시간26.06.09|조회수30 목록 댓글 0

감기를 앓으며 마음을 쓰다 송덕희

 

그냥 넘어가는 계절이 없다환절기가 되면 어김없이 감기가 찾아온다기온 변화가 있다 싶으면 녀석이 덥석 문다증세가 나타난 것은 사흘 전이다목이 간질거리고 잔기침이 났다캑캑거리면 목구멍에 뭔가 걸린 듯했다괜찮겠거니 했는데하루가 지나자 더 심해졌다따끔거리고 가래가 끓었다한 번 기침하면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몸에 기운이 빠지고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집에 있는 약을 먹었더니낫는 게 아니라 더 심해졌다바이러스가 내 몸에 들어와 기세를 부렸다이런 상태인데도 네 시간을 달려 부산까지 갔다조카 결혼식이 있어서다.

 

당일로 오가기는 무리여서 하룻밤을 호텔에서 묵었다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반갑게 시간을 보내기는커녕 옮을까 봐 노심초사했다실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손자손녀를 마음껏 안아 주지 못하고되도록 접촉을 피하려 애썼다딸은 아이들도 며칠간 감기로 힘들었고이제 겨우 나았다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섭섭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어쩌겠는가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 한 내 탓이니 감수하는 수밖에.

 

어젯밤 늦게 집에 오자마자 자리에 누웠다잠의 수렁에 빠진 듯 아침까지 깊이 잤다일요일이라 문을 연 병원도 없으니 일단 푹 쉬고 나름대로 처방해 보기로 했다감기 걸리면 효과를 봤던 몇 가지가 떠올랐다먼저 뜨거운 물을 자주 마셨다물만 먹기 어려우면 달걀을 풀어서 한소끔 끓이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잠기고 아픈 목구멍을 마사지하듯 천천히 넘겼다비타민이 풍부한 보리싹 차도 우렸다피어오른 김을 코와 입으로 들이마셨다얼굴에 물방울이 맺히면서 막힌 데가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졌다통증도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다그다음에는 스카프로 목을 두른다식은땀이 흐른다달궈진 몸에 이불을 덮고 누웠다.

 

창밖을 보니며칠간 따갑던 햇살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바람도 살랑거린다이 좋은 날씨에 감기 바이러스랑 씨름하고 있다니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상비약으로 사 둔 감기약 한 알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두어 시간을 자다 일어나니 한결 가벼워졌다귤 서너 개를 까먹고 액상 비타민 한 병을 마셨다점심으로 누룽지를 끓여서 뜨거운 숭늉과 함께 먹었다또 몸에서 땀이 주르륵 흐른다나쁜 기운이 빠져 나가는 것처럼 개운해졌다여전히 목은 아팠지만어제보다 훨씬 낫다가끔 기침하면 가래가 나오긴 해도 횟수는 줄었다저녁에는 매운 라면을 끓여 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식욕이 돌아온 걸 보면 살 만해진 거다.

 

몸이 괜찮아지니머릿속이 복잡해졌다한 줄도 쓰지 않은 과제를 지금이라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두 마음이 오간다마지막 글은 한 학기를 마치는 소회를 적는 것이다매번 비슷한 내용만 떠올라 고민이었다그런데 감기까지 걸려 골골대면서 써야 하나 싶었다다른 한편으로는 빼먹지 않고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가 컸다. ‘안 쓴 만큼 손해겠지축 처져 있으면 더 기운을 못 차릴 거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어떻게든지 쓰게 될 거라는 기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어나서 무작정 덤비고 보니 여기까지 왔다무엇을 쓸지 고민하지 않고 지금 내 처지와 마음을 그대로 적어 내려 갔다신기하게도 기침이 덜 나오고가래도 잦아든다허리가 꼿꼿하게 서고 머릿속이 맑아진다축 처진 몸이 글 쓰는 상태로 돌아온다이러면 쭉쭉 힘을 내야지 텔레비전을 틀거나 소파에 앉으면 흐트러지기 쉽다한눈팔지 말고 끝까지 마무리하고 컴퓨터를 덮어야 한다지금쯤이면 한바탕 잠에 빠져 있을 시각인데이렇게 쓰고 있으니 놀랍다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나는 또 고생하고 있다평소에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다몸이 싸하다 싶으면 하루이틀 잠복기를 거쳐 발톱을 드러낸다일주일 이상 사투를 벌인다뒤끝도 길어 깨끗이 회복되는 데는 달포가 걸린다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계절이 지나간다.

 

이번 감기도 쉽게 물러가지는 않을 것이다그래도 오늘은 한 가지를 알았다몸은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어도 마음은 글을 쓰며 다시 기운을 낼 수 있다는 것을덕분에 한 학기를 보람 있게 마무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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