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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26-1)

[고친 글] 바다 위에 선을 긋는다 / 정희연

작성자정희연|작성시간26.06.10|조회수23 목록 댓글 0

[고친 글] 바다 위에 선을 긋는다 / 정희연

 

바다 가운데로 거대한 선이 그어지고 있다. 토목 공사의 꽃이라 불리는 사장교와 현수교를 세우는 현장이다. 섬과 섬을 잇는 길이라 수면 위로는 동바리를 세울 수 없어 교각과 교각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넓히는 방법을 택했다. 받침대 없이도 가능한 현수교와 강합성교(강교와 사장교를 합한 것)로 공사를 진행한다. 줄곧 전라도에서만 근무해 오다가 아들과 딸이 모두 성장해 사회로 나간 뒤, 대형 현장이라면 전국 어디든 가겠다는 생각으로 시야를 넓혔다. 그 선택의 끝에 작년 7월, 울산에서 지금의 현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화태도와 월호도를 잇는 「화태-백야 1교」와 월호도와 개도를 연결하는 「화태-백야 2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물 위에 다리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첫 어려움은 우물통을 거치(물건을 어떠한 자리에 안전하게 놓아두거나 배치함)하는 일이다. 해상 공사는 육지와 달리 물밑에서 이루어지므로 건설 장비가 물속으로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눈으로 볼 수 없어, 계획된 깊이까지 파고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는 일이 만만치 않다. 사전에 지반 조사를 철저히 했어도 교각의 버팀목이 되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할 때면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육지에서 제작한 우물통(속이 뚫려 있는 우물 모양으로, 바다 밑바닥에 안착시킨 뒤 그 내부에 콘크리트를 채워 교각의 단단한 기초를 만드는 구조물)을 바지에 싣고 와 수직도를 확인하는데, 거센 파도와 조류 탓에 제 자리를 잡지 못하거나 바닥이 평탄하지 않아 기울어지는 일이 많다.

 

사장교나 현수교는 대개 100m가 넘는 높은 곳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은 더욱 강해지며, 타워크레인이 심하게 흔들려 콘크리트 타설이나 자재 인양이 중단되기도 한다. 이 와중에 근로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현장의 가장 큰 숙제다. 현수교의 주케이블 설치 공사는 수백 가닥의 고강도 강선을 한 가닥씩 당겨 완성한다. 돌풍이 조금만 불어도 강선이 서로 꼬이거나 춤을 추기 때문에 기상 조건에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수교는 웅장한 주탑과 땅속 깊이 박힌 거대한 닻인 앵커리지, 하늘에 길게 늘어진 주케이블, 그리고 상판과 주케이블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행어 로프가 하나의 완성체가 되어 움직인다. 이들이 서로 밀고 당기며 스스로 완벽한 힘의 평형을 이루는 형식인 것이다. 주케이블에서 수직으로 내려뜨린 행어 로프가 다리 상판을 단단히 붙잡고, 이 거대한 무게는 다시 주탑과 앵커리지의 지지를 받아 허공에서 아슬아슬하면서도 견고한 균형을 유지한다. 다리의 모든 무게와 바람의 힘까지 버텨 내야 하는 곳은 앵커리지다. 지반이 암판으로 단단하면 터널을 뚫고 그 내부에 고정 장치를 심어 지중의 힘으로 견디고, 지반이 연약하면 웬만한 빌딩 수십 채에 달하는 거대한 콘크리트의 자체 무게로 다리를 지지한다.

 

콘크리트가 굳어갈 때 내부에서 발생하는 수화열은 무섭도록 뜨겁다. 앵커리지처럼 덩치가 큰 구조물은 내부 온도가 70~80°C까지 치솟는다. 그와 반대로 표면은 거친 바닷바람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차갑다. 이 온도 차이가 불러오는 균열은 다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원인이 된다. 이를 막으려면 한 번에 쏟아붓는 대신 계산된 구역에 따라 차근차근 나누어 만든다.

 

「화태-백야 1교」는 수중 공사를 끝내고 교각을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며, 2교는 주탑 공사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현장에는 탑정 세들과 스플레이 세들이 반입되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탑정 세들은 주탑 꼭대기에서 앵커리지에 고정된 케이블과 교량 상판을 들어 올리는 주케이블의 높은 허공에서 팽팽하게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스플레이 세들은 케이블이 앵커리지 내부로 들어오는 길목에 설치된다. 수십 센티미터에 달하는 주케이블은 거대한 통다발 형태라 그 굵기 그대로 땅속에 고정할 수 없다. 그래서 스플레이 세들을 거쳐 케이블을 구성하는 얇은 스트랜드(강선)들을 부채꼴처럼 넓게 펼쳐서 고정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현장으로 가려고 화태도로 향하는 길, 그 길목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웅장한 화태 대교다. 차를 달려 다리 위를 지날 때면, 창밖으로 한려 해상 국립 공원의 수려한 다도해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130m 높이로 우뚝 솟아오른 우아한 ‘A’자형 주탑과 부채꼴로 뻗어 나간 케이블이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고, 그 아래로 잔잔하게 일렁이는 푸른 물결과 초록빛 섬들은 마치 거대한 한 폭의 풍경화를 닮았다. 매일 마주하는데 이 길을 지날 때면 늘 가슴이 벅차오른다.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차를 돌리면 독정항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 통선으로 갈아타고 현장으로 향한다. 배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코발트색 짙푸른 물길을 가를 때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또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을 세우는 토목 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이 차오르는 순간이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끝까지 안전하게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이 더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방이 트인 다도해의 섬들은 계절과 시간, 날씨에 따라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한 햇살을 쏟아 내다가도 먹구름이 몰려와 거센 바람을 몰고 오면 바다는 금세 성난 야수처럼 뒤틀리며 하얀 포말을 내뿜는다. 현장의 열정이 지나치게 뜨거워질 때면 자연은 이렇듯 브레이크를 잡는다. 비가 쏟아지고 강풍이 거세져 풍랑 주의보가 발효되면, 현장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인 통선이 멈춰 서며 모든 작업이 중단된다. 하늘이 일을 가로막는 셈이다.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나온 과정을 되돌아보라는 하늘의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의 위엄 앞에 겸손을 배우며, 우리는 이 시간을 빌려 품질과 안전을 다시 점검하고 후속 작업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는다.

 

바다가 길을 열어 주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지나온 발걸음 하나하나가 귀하고 값지다. 간절한 마음으로 보낸 인내의 나날도, 거친 바다 위에서 공정률 51%를 일궈낸 모든 시간도, 수많은 이들이 한마음으로 묵묵히 동행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반환점을 돈 지금, 앞으로 남은 여정 역시 서두르거나 들뜨지 않고 담담하게 걸어가고자 한다. 눈앞의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밀려오는 감정을 차분히 다스리며, 다리의 견고한 구조와 현장의 안녕을 생각하고 싶다. 이 여정이 끝나는 그날까지,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모두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현장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바다가 허락해 준 하루하루가 모여 채워진 2026년의 상반기,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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