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 이야기(26-1)

[고친 글] 내가 가는 길 / 양선애

작성자양선애|작성시간26.06.14|조회수30 목록 댓글 0

내가 가는 길 / 양선애

 

학부모 공개 수업이 끝났다. 다음 주에 있을 현장 체험 학습을 다녀오고 나면 1학기 생활이 얼추 마무리된다. 남은 2학기는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교사에게 있는 일명 마의 5이 큰 사건 없이 흘러갔으니, 올해 이 아이들과도 잘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내심 기대해 본다.

 

처음으로 1학년을 맡았던 3년 전이 떠오른다. 교직 20년 만이었다. 자기 중심적이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1학년을 하느니 차라리 생활 지도가 어려울지라도 말이 통하는 6학년을 2년 한다는 말이 있다. 쉰이 넘었으니 그런 아이들도 귀엽게 느껴지리라는 옆 반 선배의 말에 용기 내어 1학년을 처음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재민(가명)이의 초등학교 첫 담임이 되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학생이라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그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낯선 환경에 긴장하는 것은 1학년 학생도 마찬가지이다. 재민이도 그랬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오래 유치원 생활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딱딱한 책상과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자체도 힘들다. 게다가 40분 공부하고, 10분 쉬는 시정도 적응하지 못해, 걸핏하면 화장실 간다고 손을 들어 수업 흐름을 끊곤 한다.

 

재민이는 수업 시간에 바른 자세로 얌전히 앉아 있는 학생이었다. 발표도 곧잘 했다. 수학적 사고력이 뛰어나서 다른 친구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내는 능력도 좋았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2주가 넘지 않았다. 친구 얼굴에 자신의 코딱지를 묻히는 것은 애교 수준이었다. 교탁 위 자석이 담긴 상자를 팔로 휘둘러 쓰러뜨리거나 청소가 끝난 화장실에 세제를 뿌리기도 했다. 혼을 내자, 제일 먼 건물의 화장실에 한 시간 동안 숨어 있어 그 아이를 찾느라 온 학교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하루에 평균 한 번씩 사고를 쳤는데, 그 이유가 그냥’, 혹은 궁금해서여서 더 기함했다. 속은 타들어 갔으나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공감 능력을 키울 기회가 없어서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타이르고 때론 혼내기도 했지만,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아찔한 사고가 날 뻔한 일도 있었다. 수학 수업이었다. 아이들 푸는 걸 살펴 보느라 자리를 뜬 사이, 교실 앞으로 와 교사용 책에 색연필로 낙서를 했다. 급기야 책상 위 커터 칼을 쥐고 북북 그었다. 실물 화상기 위에서 수학책에 빨간 색연필로 문제를 풀면서 정답을 맞추는 선생님을 흉내 냈다는 것이다. 칼과 자로 학습지를 자르는 교사를 보고 그대로 해 보고 싶었단다. 칼날을 잠그지 않은 내 잘못도 컸다. 하지만 아무리 궁금하다고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훈계하는 내 얼굴을 보며 못생겼다고 키득거리며 웃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홍역을 치르고도 엄마는 여전히 약 먹이는 걸 거부했다. 유치원생 때부터 갖은 말썽으로 에이디에이치디(ADHD, 과잉행동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말에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아이의 충동적 행동으로 고통받는 교사와 반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과는 지금까지는 참으로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언제 어떻게 이 평화가 깨질지 몰라서 항상 긴장하고 있다. 종업식까지 마친 겨울 방학에도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는 형국이니, 그야말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퇴근하면 학급 일은 잊어버려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도 쉽지 않다. 열정은 사라지고 버틸 힘도 빠진다. 세상에 그 어떤 일이 거저 얻어지겠는가.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아이들을 사랑하고,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