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원(八院) - 서행시초(西行詩抄)3 (1939) - 백석
1. 본문 읽기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 낱말 풀이
○ 내지인 : 일본 본토인이란 뜻으로 일본인이 스스로를 일컫던 말.
○ 내임 : 요금이라는 뜻의 일본말.
○ 아이보개 : 아이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
2. 시 혼자 살피기
○제목 : ‘팔원-서행시초’ → 공간적 배경(화자가 이곳에서 겪은 일)
○화자 : 표면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음 → 계집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이가 화자임.
○청자 : 없음
○대상 : 버스에 오린 계집아이 → 당시 우리 민족의 모습으로 확장 가능
○상황 : 화자는 이른 아침 버스에 오른 계집아이의 모습을 봄.
- 계집아이의 모습과 계집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그 아이의 힘든 처지에 연민을 느낌
- 힘들었을 계집아이의 삶을 상상함
○정서 : 연민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주제) : 계집아이(우리 민족)의 서글픈 처지에 대한 연민
○어조 : 담담
○표현 : 사실적, 대조 등
3. 작품 개관
(1) 갈래 : 서정시, 자유시
(2) 성격 : 서정적, 애상적
(3) 제재 : 승합 자동차를 타는 나이 어린 계집 아이
(4) 주제 : 일제 강점하의 민족적 비애와 삶
(5) 특징 : 승합 자동차 안팎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함.
(6) 구성
1) 1~5행 : 이른 아침 승합자동차에 오르는 계집아이
2) 6~12행 : 삼촌을 찾아 먼 곳을 가는 계집아이와 계집아이에 대한 화자의 연민
3) 13~16행 : 고달팠을 계집아이의 삶을 상상하는 화자
(7) 출전 : 조선일보(1939)
4. 이해와 감상
이 시는 4편의 <서행 시초(西行詩抄)> 중 세 번째 작품으로 '나이 어린 계집아이'의 고통스러운 삶을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의 비극적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여승>과 함께 백석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시로 거론되는 이 시는 가족 공동체조차 유지할 수 없도록 한 일제의 식민지 수탈의 참혹상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내지인 주재소장'의 집에서 고생스러운 식모살이를 하면서 손등이 모두 얼어 터지고 밥을 짓고 걸레질을 하고 아이 보는 일까지 하다가 '자성'이라는 곳을 찾아가는 어린 계집아이의 비극적 운명을 통하여 가족 공동체조차 철저히 파괴해 버린 식민지 현실과 민중의 고난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 이 '어린 계집아이'는 <여승>에서의 금전판으로 떠난 '지아비'나 그를 찾아 떠돌다 자식까지 잃고 여승이 된 여인처럼, 일제 식민지 지배라는 파행적 역사 과정 속에서 희생당한 민중들의 한 전형으로 볼 수 있으며, 계집아이의 확실하지 않은 행선지는 바로 식민지 치하의 우리 민족의 방향성을 상실한 삶을 표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새하얗게 얼은', '텅 비인 차 안' 등과 같은 구절은 단순히 관서(關西) 지방의 추위를 뜻한다기보다는 일제 치하의 고통스러운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담담한 어조로만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 작품의 비극성을 한층 두드러지게 해 주고 있다.
물론 이 시는 화자가 현실의 모순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없이 다만 객관적 사실의 제시로만 그치고 말았다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백석의 시가 유년의 체험과 그에 대한 강렬한 향수에만 지나친 집착을 보이는 일종의 퇴행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시는 모든 것을 황폐화시키는 일제의 가혹한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또는 자신의 순진무구한 유년의 공간 속에서 안식과 평화를 누리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