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다니엘이며 기록 연대는 B.C. 535년경이다.
본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 그리고 메데-바사의 다리오 왕과 고레스 왕 치하에서 다니엘이 60여년간 정부 고위 관료로 지내면서 활동한 행적을 망라하고 있다.
당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열국들의 핍박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으며, 고레스가 B.C. 539년 바벨론을 정복하고 메대-바사 제국을 건설하였을 때에야 포로에서 석방되었다.
본서는 에스겔서에서와 동일한 역사적 배경을 정확히 반영하지만, 동시대의 에스겔서보다 더 긴 기간을 다루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니엘이 마지막으로 기록한 환상은 고레스 3년, 즉 B.C. 536년경 티그리스강 기슭에서 본 것이다. 이와 같이 다니엘이 활동한 시기는 신바벨론으로부터 바사로 근동 지역의 주도권이 이양되는 변혁기 였다.
바벨론은 도합 세 차례에 걸쳐 유다 왕국을 침략하였다. B.C. 605년 제1차로 침입한 느부갓네살은 유다왕 여호야김을 자신의 신하로 삼았으며 본서의 주인공이며 저자인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포함한 유다의 상류층 인사들을 볼모로 잡아갔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에스겔과 마찬가지로 다니엘 또한 포로지에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던 것이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다니엘이 망국의 후예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제국에서 뿐만 아니라 그 뒤를 이은 바사 제국에서까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높은 권력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말미암은 결과였다.
바벨론의 잇따른 침입과 마침내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비운을 겪으면서 유다 백성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장 났다고 하는 좌절감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다 멸망 이후에도 인류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위대한 계획을 여전히 전개해 나가시며 또한 당신께서 온 세상과 모든 역사의 통치자요 주관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다니엘의 생애와 그의 예언을 통해 밝히 보여 주셨던 것이다.
즉 본서의 전반부는(1-7장) 이방 세상의 흥망 성쇠를 예언하며, 후반부에서는 (8-12장) 이스라엘이 인간의 나라로부터 고통을 당하나 종국적으로는 신적 권능으로 승리하게 되며 그 회복을 통해 구원이 성취됨을 밝힌다.
이러한 예언들이 꿈이나 환상을 통해 자주 등장하며 종말에 관련된 메시지까지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흔히 본서는 구약의 계시록이라고 불린다.
한편 이 책에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이방 제국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수호한 담대한 용기가 극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큰 신상, 짐승,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은 세상 제국들을 일으켰다가는 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권세를 잘 보여주며,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될 메시야 왕국은 영원 무궁할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특히 9장에 나오는 70이레에 관한 예언은 다니엘 당시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출현까지에 이르는 역사적 구도를 펼쳐보이고 있다.
본서에 포함된 이러한 메시지는 인류의 모든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한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뚜렷한 기독교적 역사 의식을 일깨워준다 하겠다.
본문 1:1-7절에는 바벨론으로 유배된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가 바벨론의 인재 교육을 받고 굴욕적 개명을 당하는 내용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의 신앙과 민족성 상실 위기(2, 4, 5, 7절)를 표출하고 있다.
본문 2장은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 다니엘이 그 꿈을 해석하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역사에 대한 당신의 섭리를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 보여주셨고, 그 꿈을 다니엘에게 해몽할 수 있도록 계시하심으로서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나타내신다.
다니엘은 본장을 통해서 계시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먼저 언급하고(28절),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보여주시고, 다니엘에게 해석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역사의 주체요 원동력이시며,
우상으로 표상된 세계 제국들(신 바벨론 제국, 메대와 페르시아 제국, 그리이스 제국, 로마 제국, 로마 제국 이후로 부터 현대 까지의 모든 국가들)은 ‘뜨인 돌’ 즉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 앞에서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본문 3장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 승리를 기념하고 왕의 명성을 드높이며 금으로 비유된 자신의 왕국의 영원성을 기원하기 위해 거대한 신상을 세움으로서 통치자의 교만과 세상 제국의 우상 숭배적 성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이유로 참소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의 절개로 말미암아 던져진 풀무불 속에서도 당신을 전폭적으로 의자하고 신뢰하는 자들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다. (사43:2 ‘네가 불가운데로 행할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본문 5장에는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의 교만과 성전 기명 모독, 그리고 우상 숭배등 바벨론 제국의 멸망과 벨사살의 죽음의 원인을 알리고 있다.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교만의 결과는 신속하게 보응되었다.
특히 9장에는 참된 믿음의 기도가 응답받는 장면(20-30절)과 그 응답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전개된 구속사의 파노라마(24-27절)를 보여준다.
이것은 칠십 이레에 관한 예언으로서 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직접 계시된 것으로서 1)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 2) 그리스도의 성육신 3)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 파괴 4) 적그리스도의 출현 5)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대환란때의 종말론적 사건등이 아주 생생하게 예언되어 있다.
490년이라는 상징적 기한안에 존재할 세계 역사 전개의 기본틀을 제시하는 이 예언은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경고장을 던져주고 있다.
10장에는 이스라엘의 장래에 관한 예언(10:1-12:13)중 다니엘이 환상을 받게된 배경(1-4절)과 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신앙 공동체의 환난과 고통에 대한 다니엘의 참신앙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거룩한 신적 현현앞에서 혼절한 다니엘을 일으켜 세우신(10:10-21) 그리스도께서 다니엘을 위로. 격려하시고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이는 구속사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요일 2:1,2),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는 악령들과 싸우시는 (13절 ; 계17:14), 그리스도의 영전(靈戰)을 암시한다. 또한 여기에는 페르시아의 멸망과 헬라 제국의 출현이 구체적으로 예언되어 있으므로 세계사에 대한 하나님의 세부적이고도 원대하신 통치 섭리의 일면이 엿보이고 있다.
또한 택하신 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보호와 위로(마9:13)뿐만 아니라 사단에 대한 성도의 성전(聖戰)에의 촉구도 암시한다(고후 10:4 ; 딤전 6:12 ; 유1:3)
본문 12:1-3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대환난에 대한 예언과 신앙의 승리자에게 예비된 영생과 축복 그리고 성도의 참된 소망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음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12:4-13은 환상에 대한 결론 으로서 책에 대한 인봉 명령(4절)과 환난의 시기에 관한 대화(5-7절) , 그리고 다니엘에게 줄 위로와 축복의 약속(8-1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4절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라도 이 말씀을 소중히 간수하라는 의미로서 하나님 말씀에 무감각한 성도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으며, 5-12절은 환난때의 승리를 위한 신앙의 인내를 강조하고 있다. 마지감 때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경륜과 주권에 의해 이루어지는 초월적인 일이므로 그 도래시기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마24:36)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 시대이다. 바벨론은 유브라데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만나는 비옥한 지역으로 풍부한 자원과 문화로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터어키, 그리스, 이집트에 이르는 대제국이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함락시키고, 왕궁과 성전의 온갖 보물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바벨론 왕은 식민지를 다스리기 위해 민족성을 없애는 문화 말살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자손 중 왕족과 귀족들 중에 엘리트들을 바벨론 궁으로 데려와서,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바벨론화 하는 작업, 세 가지를 실시하였다.
첫째,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와 문학을 가르쳤다.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고, 문학은 생각의 양식이기 때문에 이것에 배이게 되면 사고방식 뿐 아니라 생활양식도 바뀌게 된다. 즉 바벨론화 되는 것이다. 사람이 바뀌면 결국 문화도 바뀌게 된다.
둘째, 왕이 지정한 음식과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다.
인생에서 가장 바꾸기 힘든 것이 음식이다. 한국 사람은 어딜 가든지 된장, 고추장, 김치, 불고기가 최고다. 미국에 온지가 34년 되었다. 아직도 한국 음식을 먹는다. 음식을 바꾼다는 것은, 곧 철저한 바벨론화 작업이다.
셋째,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개명하였다.
창씨개명, 이름을 바꾸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다.
이들은 3년의 훈련을 통하여 완전히 바벨론 화되어서 바벨론의 통치에 기여하는 왕의 측근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다양한 여러 민족을 통치하는데 상당한 효과를 주었다. 바벨론화는 거스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었다.
사실 바벨론적인 요소는 현대에 더 심하게 나타난다. 요사이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별 차이가 없다. 이미 바벨론적인 요소가 교회에 가득 차 있다. 어쩌면,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세상 일과 신앙생활에 별로 차이가 없다. 세상의 변화는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저돌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느 정도 타협하고, 어느 정도 믿음 생활해야 할까? 이러한 상황에서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
본문 8절에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분명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 '뜻을 정하여'는 '마음으로 결정하였다' ‘마음으로 확정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중요하다.
잠언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 모두 마음을 지켜야 한다. 한문에 ‘작심삼일’이 있다
동영상 - <작심삼일>
결심한 일을 3일도 못 넘긴다. (영어로, A resolution good for only three days. A resolution kept for only three days.) 한심한 일이 된다. 큰 일을 할 수 없다.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
그런데 다니엘은 마음을 결정하고 확정했다. 아주 끝내주었다.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다니엘은 B.C 600년, 지금부터 2600여년전에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나라의 귀족 청년이었다. 우리 청년들과 다를 바가 없다. 여러분은 귀족이다. 유학생이요, 다 귀한 자녀들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당시에 포로로 잡혀가면 전혀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종(노예)살이를 하는 신세였다. 그런데 다행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선택을 받아 삼년동안 왕궁에서 갈대아 (바벨론) 학문을 배우며, 왕의 진미를 먹고, 왕의 포도주를 마시며 풍성하고 평안한 생활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하였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왕의 진미에 나오는 고기들은
① 피를 뿌려서 잡은 고기이거나 (신12:23-24),
② 부정한 동물의 고기이거나 (레11:10-12),
③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 (고전10:27-29) 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기들은 성경에 금지된 것이므로 먹을 때 자신을 더럽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다니엘은 포로의 신분으로서 좋은 음식이었지만 단지 신앙의 문제로 그것을 거부했고, 자칫하면 그 좋은 자리에서 쫓겨나 죽음을 당할 수도 있지만 신앙의 순결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 다니엘이 처한 주위 환경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스라엘 온 나라가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 세력이 급격히 약하여져 북 이스라엘은 이미 망하였고, 남 유대도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하여 왕과 신하와 상당수의 백성들이 포로가 되는 비운의 시대이었다. 이제 다니엘도 그의 세 친구와 함께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그러나 다니엘은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새로운 출세의 길이기도 하였다. 바벨론의 왕은 포로로 잡혀 온 젊은 중에 몇 명을 골라 바벨론의 문화와 궁중예법, 지도자 훈련을 시켰다. 그들을 왕궁에 두어 이스라엘 나라를 바벨론에 예속화시키는 정책을 쓴 것이다. 거기에 다니엘과 세 친구도 뽑혔다. 비록 나라는 망하였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은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출세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곳은 문화가 발달된 곳이다. 엄청난 부유함도 누리는 나라이다. 그러한 곳에서 궁중에 살며 새로운 귀족 계층이 된다는 것은 절호의 찬스! 기회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개인에게 주어진 출세의 기회를 좋아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이방 신을 섬기는 타국이었기 때문이다. 날마다 우상에게 절하고 향락에 문화가 만연되어 있는 곳이다.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우상숭배와 함께 세속의 향락으로 끝없이 떨어질 수 있는 엄청난 위기에 다니엘은 직면하여 있는 것이다.
현대화되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세상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살고 있다. 동시에 이 세상은 우상숭배와 물질주의와 향락의 물결이 도도하게 흘러 젊은이들을 오염시키고 있다. 우리 교회의 청년들이 발을 한 발자국만 잘못 디디면 엄청난 죄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는 위기의 시대가 바로 오늘날이다.
그런데 다니엘에게는 한 가지 삶의 원칙이 있었다. 8절에 <뜻을 정하여>, 이것이 바로 다니엘의 삶의 원칙이요 기준이었다. 삶의 원칙과 기준이 없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살아간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찬송을 부르며 경건한 모습을 하지마는, 세상에 나가면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이기적이고 뇌물을 좋아하며 쾌락을 즐기기를 하나님보다 더 즐기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원칙과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그 기준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정한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정하여진 기준이라야 한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살기로 뜻을 정하여 살았다. 뜻에는 사람의 뜻도 있고, 하나님의 뜻도 있다. 육신에 속한 뜻도 있고, 영에 속한 뜻도 있다. 사람이 무엇이 되기 이전에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뜻이 분명해야 함. 뜻을 분명히 정하지 않은 사람은 장애물을 만나는 즉시 쉽게 넘어지고 만다. 학생이 공부를 하더라도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그 목적을 향하여 나갈 수 있다. (찬양합시다!)
#3. 동영상 - 찬양,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다니엘은 세 가지를 결심했다.
첫째. 다니엘은 <깨끗하게 살기로> 뜻을 정하였다.
당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메로닥’이라는 신을 숭배했다.
#4. 동영상 - 바벨론 신 : 메로닥 (마르둑)
느부갓네살 왕은 음식을 그냥 먹지 않았다. 먹기 전에 먼저 자기의 신에게 드렸다. 술도 메로닥에게 먼저 부어드리고 나서 마셨다. 음식 일부를 구별해서 그에게 봉헌했다. 그것은 전부를 우상 앞에 바쳤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을 먹고 마시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야?'고 어떤 사람은 말했을 것이다. 오늘 신약시대는 사실 돼지고기를 먹든, 산낙지를 먹든, 뱀장어 구이를 먹든 상관이 없다. 하지만 구약 시대는 달랐다.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서 당신이 누구이며, 어떤 신을 섬기는지(?)가 결정되었다. 다니엘은 포로된 자로서 왕의 진미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궁중전골, 갈비, 싱싱한 회는 물론, 상어지느러미, 고래 고기, 제비집 등 별별 희한한 음식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을 교육시키는 환관장에게 고기로 된 음식은 아무 것도 먹지 아니하고 채소만 먹겠다고 하였다. 다니엘이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혹시라도 고기 중에 우상에게 드려졌던 음식이나 율법에 금한 고기가 있을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포도주도 마찬가지이다. 왕이 마시는 포도주는 얼마나 기가 막힐까? 그러나 혹시라도 우상에게 드려졌던 것일 수도 있고 경건 생활에 해롭다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5. 동영상 - 환관장과 다니엘, 세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중요한 것은 다니엘이 고기나 포도주를 먹지 않았으니까 나도 고기나 포도주를 먹고 마시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니엘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기란 그렇게 쉽지 아니하였다.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인간의 본능적 유혹도 물리치기 어려웠을 것이고,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러한 유혹과 육체의 안일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한 생활을 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그것은 다니엘의 원칙이었고, 여러분의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여가와 스포츠가 우리의 관심과 시간을 물질을 손짓하고 있다. 그 자체는 아무런 해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자체로는 좋은 것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관심과 시간과 물질을 다 쏟게 만들면 그것은 우리의 새로운 신이 될 수 있다. 등산도, 낚시도, 골프할 것 없이 우리의 관심을 우리 하나님 섬기고 예배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하면 그것은 우상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도 다니엘과 같이 결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 세상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
또 이 시대의 다른 문제는 신앙생활 전반이 해이해지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한다고 그리스도인들도 하는 것이 문제이다. "옛날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했지만 오늘 우리가 꼭 그렇게 해야 되느냐?"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아직도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속성은 변치 않았다.
?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를 범하는 것을 방관하시고 그것을 그저 바라보며 즐기시는 분이 아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하시는 분이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할 이유가 아직도 존재한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은 아직도 건재하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들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야말로 그 어떤 시대보다 부정한 것에서 떠날 필요가 큰 시대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의 자녀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해야 한다.
다니엘은 우상의 제물로 자신의 신앙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포도주와 진미를 거절했다. 참으로 다니엘은 신앙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다니엘의 현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신세이므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으며 적당히 타협하여 오히려 출세의 기회를 생각할 수도 있었다. 또한 이를 기회로 바벨론에서 성공을 거머쥘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혹들을 단호히 거절하고 신앙을 지켰다. 왕이 내린 진미라 해도 그것으로 인하여 신앙을 더럽힐 수 없었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왕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한 결심인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을 지키기에 생명을 거시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을 지키시오. 타협이 우리 영혼을 더럽힌다. 타협이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거부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다. 실전에 약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회 안에서는 말씀 듣고 찬송하며 기도할 때에는 자신이 있다. 신앙의 힘있는 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교회 밖으로 나가 현실에 부딪쳤을 때 우리는 너무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다니엘처럼 먼저 신앙을 지키겠다고 하는 뜻이 분명해야 한다. 마음을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에 고정시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신앙을 지키다가 고난을 받았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있다. 믿음의 선배들은 신앙에 목숨을 걸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초개처럼 내던졌다.
#6. 동영상 - 폴리캅
초대 교회 교부였던 폴리캅은 예수를 모른다는 한 마디만 하면 부귀영화가 약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부귀영화를 버리고 끝까지 예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였다. "주님은 나의 평생에 나를 한 번도 모른다 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찌 주님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느냐? 내 입에서 더러운 말이 나오기 전에 어서 나를 불태워 죽이라"고 하였다. 포도주와 진미로 자신의 신앙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할 때에 하나님이 다니엘을 지켜 주셨다.
다니엘이 왕궁에서 먹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게 된 것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적 순결의 문제였다. 그 당시 이방 신을 섬기는 바벨론 왕국에서는 그들의 습관을 따라서 피를 흘리면서 피채 먹는 음식이나 우상의 제단에서 제사를 지낸 음식물들을 먹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 앞에서 우상을 섬기는 일과 구약의 율법이 금하는 피채 먹은 음식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세상의 명예와 출세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더 소중한 것으로 여겼다. 또한 그들은 그 음식이 자신의 신앙적 삶을 더럽힌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거절하였다. 그들이 비록 이방 땅이지만, 뜻을 정하고 신앙생활을 했듯이, 우리도 이 세대 가운데서 뜻을 정하고 하나님 중심, 교회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14-15절,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다니엘이 열흘 동안이나 채식만 먹었어도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얼굴이 윤택했다고 했다.
16절에 보면, 앞으로도 다니엘만은 우상 제물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보장까지 받았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푸사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여 완고한 환관장이 다니엘의 청원을 받아 10일 동안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는 채식만 먹게 하였다. 만약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외모가 초췌해지면 환관장은 왕명을 어겼으므로 환관장의 머리가 위태하게 되는데(10)도 환관장이 허락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이 증거이다. 10일 후에 서로 비교해 보니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졌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맞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그렇게 되어진 것이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이 이뤄주시고 건강도 하나님께서 강건케 하신다.
20절에 보면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은혜와 총명을 열 배나 주었다고 했다(20).
여러분, 신앙을 바로 지키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하시기 바람. 그러면 하나님도 여러분을 지켜 주신다.
계시록 3:10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신앙을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지켜 주신다. 신앙을 지키며 살기로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
둘째.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기로> 뜻을 정하였다.
환관장은 다니엘의 제안에 대하여 매우 걱정하였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의 혈색이 좋지 못하면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대노하였을 것이다. "이놈의 자식들, 매우 건방지구나! 포로인 주제에 반항을 해! 그것도 황제의 성은을 거절하겠다고? 여봐라! 이 놈들을 당장 옥에 가두어라!"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9절에 보니 하나님이 다니엘 때문에 환관장으로 하여금 은혜와 긍휼로 다니엘을 대하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따르는 주의 백성을 아주 구체적으로 도와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환관장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므로 오히려 걱정하는 말투로 말하게 된다. "너희들의 모습이 초췌하면 왕이 내 머리를 그냥 두지 않을 터인데 어떻게 하나?" 그 때 다니엘은 그에게 하나의 제안을 한다. 열흘만 시험하여 얼굴을 테스트해 보고 마음대로 결정하라는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는 금방 <채식이 몸에 더 좋으니까 일리가 있는 제안이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성경에 의한 바른 해석이 아니다. 다니엘이 채식의 우월성을 깨닫고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이 전혀 아닌 줄 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실 줄 분명히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후에 사자 굴에 던짐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 줄을 분명히 믿었다.
젊은이들 중에는 자기의 지식과 능력과 힘을 과신하여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으라!’고 하나님을 조롱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자는 반드시 패망하고 만다.
다니엘은 이방나라의 왕 보다는 만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다. 다니엘은 왕의 대접보다는 채소를 먹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자기의 모든 좋은 조건이 다 사라져도 믿음만은 사라지지 않기를 원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기로 뜻을 정했다. 좋은 조건이 온다면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사자 굴에 들어가 죽더라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믿음을 포기하기 보다는 자기의 생명을 포기했다. 뜻을 정하고 살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고 말씀하셨다.
#7. 동영상 - 금 신상
느부갓네살 왕이 한 꿈을 꾸었는데 자기가 꿈을 꾸고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것을 박수, 술객, 점쟁이, 술사들을 불러다 놓고 ‘알아 맞추라’ ‘해몽까지 하라‘ ’못 맞추면 죽이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 꿈을 알아 맞추었고, 해몽까지 해 주었다. (단2:31-35)
단 3:13-22에 보니 바벨론 두라 평지에 거대한 순금 신상을 새웠다. (높이 60규빗 (27m), 넓이 6규빗 (2m70cm)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그 신상에게 절하도록 명령을 하였다. 만일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 속에 던지겠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요구인 것 같다. 절한다고 목이 부러지는 것도 아니고, 무릎이 상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절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신앙은 그것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바로 마음을 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그렇게 의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금 신상에게 절하고 나면 하나님께 드릴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목숨을 주는 것이다. 믿음 안에서 살기를 원하고, 믿음 안에서 죽기를 원하면, 신앙은 완성되는 것이다. 살기만을 원하면 비굴해질지 모르지만, 죽기를 각오한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물질 만능주의 시대, 우상이 휑휑하는 시대에,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8. 동영상 - 풀무불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절하지 않았다. 평소에 시기하고 있던 갈대아 (바벨론)인들이 이들을 참소 했다. 왕은 그들을 불러 놓고, 다시 좋은 말로 기회를 주었다. 아마 왕도 그들의 뛰어남을 남다르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말로 타일렀다. 하지만, 아무리 왕과의 관계가 돈독해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넘어설 수는 없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단호했다. 그들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왕은 화가 났다.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했다. 그래도 너희 신이 구하는가? 보라고 했다. 그들은 단 3:17-18에서 말하기를, “만일 그럴 것이면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라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관계를 위협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속에서 그들은 믿음을 지켰다. 그것이 그들에게 살길이 된 것이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고 한 말씀과 같이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신상에게 절해야 한다고 해도,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그들은 믿음의 길을 갔다. 분명 하나님이 위험에서 건져낼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들은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참으로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우리 하나님만이 참신이시며, 우상은 섬길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신앙 정신이었다. 오늘 우리는 이점을 배워야 하겠다.
? 다니엘은 신앙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다 (12절-13절).
무슨 일에나 확신을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사업을 해도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 끝까지 기도하게 된다. 신앙생활도 확신있는 믿음을 갖고 충성으로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먼저 확신했다. 신앙은 확신이 중요하다. 불확실한 신앙을 가질 때에 마귀는 더 역사한다. 보다 확신 있는 신앙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적어도 두 가지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다. 또 하나는,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다.
3. 어떠한 경우에도 기도하면서 살기로 뜻을 정하였다.
#9. 동영상 - 다니엘의 기도 & 사자굴에 던짐
6장에 보면,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경건하게 기도하는 습관을 이용하여 적들이 다니엘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다니엘은 물론 적들의 계략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여전히 기도를 쉬지 아니하였다. 결국 그 일로 인하여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짐을 받게 된다.
실로 다니엘의 기도는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기도 뿐 아니라 결사적인 기도였다. 지금 기도하기만 하면 잠시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벌금 얼마를 물어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자 굴에 던져져서 사자 밥이 되어야 하는 순간이다. 초긴장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다니엘은 기도를 계속하였고, 자신이 사자 굴에 던짐을 받을 것이 분명한데도 기도를 계속하였다. 다니엘의 기도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목숨을 걸고 하는 기도였다. 이런 기도는 큰 힘이 있다. 그런 기도는 간절함이 있을 것이고, 뜨거움이 있을 것이고, 진실하고 순수했을 것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항상 감사하면서 드리는 기도였다. 다니엘은 지금 원수의 모략으로 인하여 위기에 봉착할 때였다. 생사의 기로에 서있을 때였다. 극한 상황이었다. 지금 다니엘을 시기하는 악한 무리들이 함정을 파 놓고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고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감사하면서 기도하였다고 했다. 우리도 늘 감사하면서 기도하는 생활을 살아야 하겠다.
다니엘에게 있어서 기도는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 중요한 일이었고,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무슨 기도를 드렸을까요? 아마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일 것이다. 결국 그러한 끊임없는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된 것이다. 젊은이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의 믿음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그러한 젊은이들이 있는 가정과 교회와 나라는 반드시 일어서게 될 것이고 부흥하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의 청년들이 사무엘이나 다니엘처럼 기도하는 청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는 청년들은 벌서 그 얼굴의 빛깔이 다르다.
♣ 영국 회중교회 파커 목사님은 누구보다 기도를 강조하였는데, 기도가 역사와 공동체, 삶과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말하기를 "기도를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얼굴이 증명해 줍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에는 영혼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풍기는 인상이 기도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서는 주의 정원에 피어있는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외과 전문의사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이 외과 전문의 경력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술 경험을 이야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 의사는 잠깐 생각을 하고 나서 곧 대답을 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나는 오랫동안 외과의로서 수술을 담당해 왔다. 그 가운데 그 한 번의 수술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것이었고, 나는 그것으로 나의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그날 10% 밖에 살아날 가방이 없는 자그마한 소녀를 수술하게 되었다. 내가 수술실에 들어가보니 자그마한 소녀 아이가 마치 조금만 눌러도 깨져 버릴 것 같이 연약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간호원이 이 소녀의 마취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에 내가 그 소녀가까이 갔을 때에 그 소녀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의사 선생님, 이야기할 게 있는데 이야기해도 좋아요'하고 물었다. '그래, 이야기해 봐라'하고 내가 말하자, 그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 나는 매일 밤 잠자기 전에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도해도 괜찮습니까?' '물론이지' 하고 내가 대답을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당시 나는 내 아들과의 사이에 좀 언짢은 일이 있어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몹시 불쾌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소녀에게 기도하면서 나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부탁했다. 그 소녀는 이렇게 기도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이시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오늘밤 당신의 작은 양을 돌보아 주소서.--- 그리고 의사 선생에게도 복 내려 주세요. 그분도 지금 고민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깨어졌습니다‘라고 의사는 말했다. 나는 수술대에서 얼굴을 돌려 내 얼굴을 간호원이 보지 못하게 했지요. 내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나는 전에 한 번도 기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기도했다. '오 하나님, 당신께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내 손을 사용하시고자 원하신다면 바로 이 순간 이 소녀를 살리는데 내 손을 사용하여 주소서.' 결과로 그 수술은 성공해서 그 소녀는 생명을 구했고, 나는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영접하여서 새 삶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뜻을 정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복된 길로 인도하신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뜻을 정하며 살았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는 특별한 은총을 더하여 주셨다.
17절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20절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바벨론 나라의 박수와 술객들은 세계 최고의 지식과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바벨론 왕이 인정하는 만물박사들이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들 보다 열배나 더 훌륭하다고 왕이 인정하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러니까, 다니엘은 4명의 왕이 바뀌어도 총리의 자리는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바벨론을 다스릴 수 있는 총리의 자리를 굳게 하셨던 것이다.
#10. 동영상 - 바벨론 4왕들의 이름과 초상.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 벨사살 왕, 다리오 왕, 고레스 왕, 이렇게 네 임금을 섬기고 나라가 바뀌어도 그는 여전히 재상의 자리를 하나님께 지켜 주셨으니 오늘 날 우리에게 이 같은 신앙 정신이 필요한 때이다. 다니엘은 왕실에서 높은 직책을 가지고 고레스 왕에 이르기까지 (BC 605-538년) 68년 동안 그 소임을 잘 감당하게 되었다. 그는 장기간 동안 관리를 역임하는 대 업적을 남겼다.
본문 21절,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고레스 왕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메대, 바사를 세운 왕 (B.C 559∼529)으로 유대인들을 해방시켰다. 다니엘은 B.C 606년 소년으로 잡혀와서 70여년간 높은 총리의 관직에 있다가 90세 이상을 향수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이다. 영성이 있어 왕의 꿈을 해석하여 주었고, 미래에 될 사건을 예언하기도 했다. 무당과 점쟁이를 이기는 영적인 권세와 능력도 있었다. 다니엘이 탁월하고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때문이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런 복을 받아, 세상에 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은 기특한 다니엘과 또 세 친구에게 지식과 명철을 더하게 하시고, 다니엘에게는 모든 이상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단 4:18에 보면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서 그렇게 된 것이다. 다니엘이 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런 축복을 주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더욱 기도에 힘써서 신령한 지혜와 은사들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하나님은 당대의 모든 지식과 학문과 기술을 습득하게 하셨으며, 거기에 지혜와 명철을 더해 주셨다. 지식과 명철의 근원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방의 어떤 지혜자와 재주꾼보다 현저하게 앞서 가는 인물로 성장해 갈 수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 말씀을 듣는 중에,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시고, 삶의 지혜를 주시고, 영감을 주셔야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11. 동영상 - 다니엘의 변화
뜻을 정하고 나니, 어떻게 변하게 됩니까?
첫째,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였다.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겠다는 태도를 결정하였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바벨론의 제사와 관계된 것이었다. 율법에 어긋나는 음식이었고 이방신전에 사용되었던 것이었다. 즉 종교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벨론의 종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 정체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왜 우리가 사는 것이 어려운가요? 세상에 대한 분명한 결정이 있어야 태도가 결정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말씀 드리면, 내일 쉬니까 오늘 밤새도록 텔레비젼이나 보고 놀자! 라고 생각하면 다음 주일날에 은혜 받을 방법이 없다. "나는 은혜를 받지 않으면 죽어!" 라는 뜻이 정해지면 "일찍 자고 내가 주님께 나아가야지" 라는 결단과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뜻을 정하고 태도가 결정되니까, <용기있는 생활이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결단을 환관장에게 구체적으로 밝히게 된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뜻을 세우니 태도가 결정되고 용기가 생긴 것이다. 용기를 가지고 구하게 되자 뜻밖의 결과가 주어진다. 환관장이 다니엘의 입장을 이해하게 하였다.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용기를 가지고 구하게 되자,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용기가 있는 자만이 문제를 해결한다. 용기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용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할 수 있다.
셋째, <창조적인 생활>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의 생활을 엎그레이드 되었고,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다니엘은 몽조 이상을 깨닫게 되었고 세친구는 기도와 지혜가 10배나 뛰어났고, 다니엘의 지혜도 그랬다. 하나님은 월등하게 만드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역사이다.
환관장은 고민이 생겼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한 다니엘이 초췌해진다면 자신이 문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민하는 환관장에게 다니엘이 전격적인 제의를 한다.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먹게 하고 열흘 후에 왕의 진미를 먹은 자들과 비교하여 보라'는 것이었다. 뜻을 정하니 태도가 결정되고/ 태도가 결정되니/ 용기가 생기고/ 용기가 있으니 창조적인 제안을 하게 되었다. 믿음과 용기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한다. 믿음과 용기는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하게 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열흘뒤에 채식을 한 다니엘과 세친구의 얼굴이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게 되었다.
넷째, <지혜로운 생활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지식을 주었고 명철하게 하셨다. 다니엘에게는 더하여 이상과 몽조를 깨닫게 하였다. '지식'은 자신의 뜻과 생각을 깊이 있게 구체화시키는 것이다. '명철'은 이모든 것을 활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다니엘은 이상과 몽조를 깨달았다고 하는데 탁월한 예지력, 식견, 지혜, 통찰력을 구비했다는 것이다. 3년의 훈련이 끝나고 훈련받은 소년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나아가서 테스트를 받게 된다. 왕이 그들을 시험하여 보았더니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탁월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지식과 학문과 명철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 헬렌 켈러에게 기자가 물었다.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력은 있으되 비전이 없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고대의 연설가 데모스테네스는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그가 맨 처음 연설할 때 청중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쫓겨났다. 모세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였다. 시저는 간질병이 있었고 바울도 간질병이 있었다. 나폴레옹은 평범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사관학교 시절에도 65중 46 등을 하는 천재적 기질과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이었다. 베토벤과 에디슨은 청각장애자, 듣지 못했고, 시인 호머와 밀튼은 시각장애자. 촬스 디킨스는 다리를 절었다. 바다의 영웅 넬슨과 나폴레옹, 세익스피어 이런 사람들은 한 쪽 다리가 온전하지 않은 절름발이.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은 곱사등을 가진 사람들. 미국의 영웅, 4선 대통령을 지냈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휠체어를 타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는가? 자신의 문제를 창조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는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각자에게는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확정된 뜻이 있었다.
우리도 다니엘의 신앙을 본받아 어떠한 환경에서도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하겠다.
다니엘처럼 신앙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렵고 세속화되었다고 하여도 다니엘처럼 신앙의 뜻을 분명히 정하고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확신있게 나갈 수만 있다면,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가는 길을 반드시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헌신을 다짐하는 청년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지금부터라도 뜻을 정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뜻을 정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의 신앙으로 무장하여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