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님은 갓슴니다 푸른 산 빗을 깨치고 단풍나무 숩을 향하야 난 적은길을 거러서 참어 떨치고 갓슴니다 黃金의꽃가티 굿고 빗나든 옛盟誓는 차듸찬 띠끌이되야서 한숨의 微風에 나러 갓슴니다 날카로은 첫<키쓰>의追憶은 나의運命의指針을 돌너 노코 뒷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나는 향긔로은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은 님의 얼골에 눈 멀었슴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맛날때에 미리 떠날것을 염녀하고 경계하지 아니 한 것은 아니지만 리별은 뜻밧긔 일이되고 놀난 가슴은 새로은 슬븜에 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源泉을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 인줄 아는 까닭에 것잡을수업는 슬븜의 힘을 옴겨서 새希望 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우리는 맛날때에 떠날 것을 염녀하는 것과 가티 떠날때에 다시 맛날 것을 믿슴니다 아아 님은 갓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얏슴니다 제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沈默을 휩싸고돔니다
한용운선생생가지[韓龍雲先生生家地]충남기념물 제75호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2에 있는 생가(지). 독립운동가 ·승려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지. 주요저서로는《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님의 침묵》등이 있다.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되었다. 1991년부터 한용운(韓龍雲:1879~1944)의 생가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사적화하기 위한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생가인 초가 외에 사당·삼문· 관리사·화장실 등을 건립하고 안내판을 설치하였으며, 주변 정비사업을 추진하였다. 한용운은 1879년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청주(淸州), 본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이다. 14세가 되던 해에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2년이 되던 16세에 돌연 집을 떠나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이후 하산하여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를 떠돌다가 27세 되던 1905년 설악산 백담사(百潭寺)에서 연곡(連谷)의 가르침을 받고 정식으로 득도하였다. 계명은 봉완(奉琓), 법호는 용운(龍雲)이다. 1919년 3·1운동 때 백용성(白龍城) 등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3년형을 선고받고,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 일제 치하의 민족혼을 일깨웠으며, 52세 때 잡지 《불교》를 인수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개혁에 앞장섰다. 1944년 5월 9일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66세를 일기로 입적,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추서되었다. 그의 독립 정신과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홍성문화원에서 만해제(萬海祭)를 개최하고 있다.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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