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특송 사진과 동영상 올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20일 아침에 서울로 큰 형수님 병문안을 위해 출발하였습니다.
오후 2시 기차로 돌아오기로 하고 기차표를 가지고 서울로 갔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시간이 9시 35분, 지하철을 타고, 병원 셔틀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30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형수님은 30분전에 소천하신 것입니다.
차표도 반환하고 서울에 남아야 하였습니다.
금요일이라서 월요일에 발인을 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형수님이 여의도순복음교회 권사라서 교회로 연락을 하였더니
순복음교회는 주일에 발인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일 오후 9시 13분에 영등포를 출발하여 23일 0시 11분에 익산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금요일 밤에 두 아들은 서울로 올라왔고, 딸 아이는 아파서 비디오 촬영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형수님은 고향에 계신 형님 곁에 모시지 못하고, 파주에 있는 오산리 기도원 공로자관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우울하던 마음이 기도원에 형수님을 모신 후에는 좀 나아졌습니다.
공로자관은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라 했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유리창에 꽃을 붙이지 않고 내부에 아름답게 꾸며 보기에 깨끗하고 좋아 보였습니다.
조화는 들어가는 입구와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고향에 모셨던 형님도 얼마 후에 형수님 곁으로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조카들이 다 서울에 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제 마음도 조금 밝아졌습니다.
지난 2 년여 동안 계속하였던 금요일 특송 동영상을 올리지 못한 것이 죄송합니다.
기도원에서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속에서 조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순복음 교회에는 부목사님이 두 분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1부 예배를 전담하는 부 목사님들
2, 3부는 담임 목사가, 4부는 원로목사가 5부는 청년부 그리고 6,7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안수집사도 공로자관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장로급 안수집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묘한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교구를 담당하는 목사님을 일반목사라 부르고, 구청 단위의 대 교구 목사가 있답니다.
일반 목사(교구목사), (대)교구목사, 부목사, 담임목사, 원로목사 이렇게 부르더군요.
한참만에 이해를 하였습니다.
일천번제가 끝나자 이렇게 밖으로 나갈 일들이 생기는군요.
너무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고 주시는 자유를 누리며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