早春偶題(조춘우제) - 李天輔(이천보)
이른 봄 문득
空庭扶杖一婆娑(공정부장일파사)
빈 뜰에 막대 짚고 몸 한번 흔들 제
拂面東風任幘斜(불면동풍임책사)
스치는 봄바람에 두건이야 기울든 말든.
春意自能成細雨(춘의자능성세우)
봄뜻은 스스로 보슬비 되어 내리는데
山光旣不厭貧家(산광기불염빈가)
가난한 집 싫다 않고 산 빛 이미 찾아왔네.
閒從棋局觀機事(한종기국관기사)
한가하면 바둑 두며 세상 일 살피고
老向詩篇玩物華(노향시편완물화)
늘그막에 시편 대하고 풍경이나 완상하네.
更喜今年時候早(갱희금년시후조)
또한 즐겁구나, 올해는 시절 일러
園中已折杜鵑花(원중이절두견화)
동산에는 이미 두견화를 꺾을레라.
이천보 (李天輔)
1698년(숙종 24) ~1761년(영조 37)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의숙(宜叔), 호는 진암(晉庵). 이일상(李一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성조(李成朝)이고, 아버지는 옥천군수 이주신(李舟臣)이며,
어머니는 김만기(金萬基)의 딸이다. 문학에 힘써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생원시에 합격, 내시교관으로 있다가, 1739년(영조 15)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0년 정자가 되고 교리·헌납·장령 등 언관직을 역임한 뒤 1749년 이조참판에 올랐다.
그 뒤 이조판서·병조판서 등을 거쳐 1752년 우의정에 승진하고, 같은해 좌의정에
올랐다가 영돈녕부사로 전임되었다.
1761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장헌세자(莊獻世子)의 평양 원유사건(遠遊事件)에 인책,
음독 자결하였다.
담론을 잘하여 허식을 차리지 않고 남과 희소(喜笑: 즐겁게 농담함)하기를 즐겼으며,
시에 뛰어난 재질을 보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서로는 『진암집(晉庵集)』 8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