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의 겟세마네! (눅22:39-46 / 마26:36-46, 막14:32-42)
눅22:39-46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40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41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45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마26:36-4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44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6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나 혼자만의 겟세마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함께 묵상해 보는 시간인데요. 겟세마네 동산 기도 장면이 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누가복음 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 복음서를 참조해서, 특별히 언급한 구절들을 비교하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애착인형 속에 들어있는 외로움
특별히 애착하는 가구나 옷이 있습니까? 나 혼자만의 루틴, 순서가 흔들리면 기분이 안 좋은 것이 있으면 말해보세요.
애착인형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그게 없으면 불안해집니다. 우리 수혁이가 그런 면이 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른들도 있어요. 군산의 장인어른은 무릎담요를 일 년 내내 어디를 가든지 들고 다니십니다. 담요가 귀가 낡아서 헤어져도 들고 다니십니다. 지난번 어머니 장례식 때, 유품 정리하면서 아버님 애착 담요를 같이 버렸다가 난리가 났었습니다. 최집사님과 유집사님은 애착 베개가 없으면 잠을 못 주무십니다. 그래서 여행을 가도 꼭 베개를 들고 다닙니다.
뭐, 이걸 뭐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개인적인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문제들이 일어나는 원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게 예민해서만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외로움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모두가 다 근원적인 외로움을 안고 태어납니다. 인간은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근원적인 외로움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주 크게 울어댑니다. 그것도 어머니의 태에서 분리되는 외로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은 살면서 느끼던 외로움들을 인간관계로 풀어냅니다. 그래서 친구도 사귀고, 결혼도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애착인형을 고집하는 아이에게는 또래 친구, 또는 가족들과 소통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른들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속을 털어놓지 못합니다. 상대방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나 다 외로움이 있는데요. 애착인형 등을 고집하는 분들에게는 인간관계를 풀기 어려워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가 없습니다. 부부간에도 속 이야기를 잘하지 못합니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안으로 삭히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루틴 같은 습관이 생기더란 겁니다. 그게 애착 인형이나 애착 베개 같은 엉뚱한 것에 집착합니다. 물론 두 집사님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럴 수 있을 확률은 있다는 겁니다. 그런 본질을 놓치고, 내가 예민해서 그래요. 이럽니다. 그것이 외로움 때문이라는 사실은 전혀 눈치 못 챕니다. 그게 우리 삶의 현주소입니다.
캐스트 어웨이 / 윌슨 배구공
애착 인형 같은 삶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살펴서 만든 영화가 있습니다. ‘캐스트 어웨이’라는 제목의 영화인데요. 2001년 12월 22일 개봉 주말에만 4천만 불을 벌어들이며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 10일 만에 1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던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영했었는데요. 톰 행크스 주연입니다. 남태평양의 피지섬, 모스크바, 미국, 남태평양 등 전 세계를 누비며 16개월간 진행된 스펙터클한 촬영, 9천만 불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
몇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작비 9천만 불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 촬영을 1년간 중지했습니다. 주인공이 무인도에서 적응하려면 살벌한 표정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몸을 만들 시간을 1년으로 정한 것입니다. 뚱뚱한 아저씨 몸매에서, 오랜 무인도 생활로 단단하게 근육 박힌 마른 몸까지 외모의 변신을 완벽히 해냅니다. 1년간 무려 22.7kg의 체중을 감량합니다. 그냥 감량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근육질 몸으로 바꿔 놓습니다.
뿐만아니라,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 시나리오의 순서대로 촬영을 합니다. 대부분은 같은 장소에서, 그곳에서 있을 여러 장면을 한꺼번에 다 찍은 후, 나중에 편집하면서 본래의 위치에 끼워 넣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을 강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스텝들이 영화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다 인지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제작비는 많이 들어가게 되겠지요. 감동 하나 더 주기 위해 제작비가 더 들더라도 이런 촬영을 고집한 것입니다.
주인공 척 놀랜드는 시간에 살고 시간에 죽는다는 좌우명으로 살아갑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지요. 사랑하는 여인과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길 시간도 없이 일에만 몰두하던 척 놀랜드. 갑작스런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됩니다. 거기서 1500여일을 지내게 됩니다. 1500일도 시간관리 철저한 주인공이 날짜를 표시하면서 지냈기에 알 수 있는 숫자입니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게 정리가 됩니다. 주인공이 그토록 아까워했던 시간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날마다 변화 없이 똑같은 시간들이 1500개가 지나갑니다.
답답함을 견디다 못한 주인공은 뗏목을 만들어 타고, 무인도를 탈출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깁니다. 극적인 반전으로 화물선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뗏목을 발견하고 마침내 주인공은 구조됩니다.
그런데 돌아온 세상은 4년 전과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사랑했던 애인은 주인공이 죽은 줄 알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상태입니다. 여러 혼돈 속에서 하나씩 정리가 이뤄지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결말짓고 있습니다.
사랑의 소중함, 휴머니티, 우리가 바쁘다고 소홀히 지나갔던 시간의 재평가 등에 대해서 영화는 깊은 생각을 요구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윌슨 배구공 사건입니다. 주인공은 추락한 비행기에서 바다로 떠밀려온 수화물들을 건져 모읍니다. 그 비행기는 FeDex 화물 전용 비행기였습니다. 화물들 속에는 윌슨이라는 배구공도 있었습니다. 외로웠던 주인공은 그 배구공에 사람 얼굴을 그려 넣고,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겁니다. 시간이 오래되어 공에 바람이 빠지자, 공 안에 솜을 집어넣고 머리모양으로 만들어 넣습니다. 무인도니 아무도 없습니다. 이 배구공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애착인형이 된 겁니다. 나중에 뗏목을 만들어 탈출할 때도 뗏목 앞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배구공을 마스코트처럼 위에 붙잡아 매달고 갑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강한 파도 때문에 뗏목은 표류합니다. 파도와 싸우다가 기진맥진해서 잠이든 사이, 윌슨 배구공이 매달았던 나무 기둥에서 떨어집니다. 배구공은 바다로 떠내려가 버립니다. 잠에서 깨어 현실을 직시한 주인공은 있는 힘을 다해 배구공을 건지려 애를 씁니다만 끝내 배구공은 바다 멀리 가버렸습니다. 순간 주인공은 좌절합니다. 윌슨의 이름을 부르면서 통곡합니다. 상심한 마음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젓던 노를 바다로 던져버리고 그냥 뗏목 바닥에 누워버립니다. 자살을 시도한 것이지요. 애착 인형 속에 깔린 외로움을 영화는 끄집어냅니다. 사람의 외로움이 지나치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눕자, 지나가던 화물선이 뗏목을 발견, 구조됩니다. 외로움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화물선처럼, 전능적인 힘이 내가 의도하든 안 하든, 전능자의 시간표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겟세마네 동산처럼 습관적으로 외로울 때마다 찾아갈 곳이 있는가?
답답하거나 외로울 때 찾아가는 장소가 있다면 어느 곳일까요?
두 번째 질문은 이렇게 답답하고 외로울 때마다 찾아가서 평안을 얻을 장소가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내 마음의 고향 같은 곳, 그런 곳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문제만 생기면 가고 싶어지는 곳! 마음이 아프면 찾는 곳! 그곳이 다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부모님 묘소를 찾습니다. 어떤 이는 탁 트인 동해바다를 찾습니다. 어떤 이는 높은 산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거기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지요. 복기를 통해 답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외로움의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다 외롭고요. 그 외로움 때문에 우리는 본질적인 외로움을 해소할 나만의 골방을 가져야만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를 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주님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하시던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문제만 생기면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놓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세 번이나 부르짖습니다.
그래도 외로운 건 외로운 겁니다. 그래서 세 제자들에게 기도부탁을 합니다. 물론 세 제자들은 피곤해서 잠들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더 외로우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외로움이 몰려올 때, 나만의 기도 장소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겟세마네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 한 번만 오신 게 아닙니다. 본문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단어 하나를 추가합니다.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습관을 좇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실 만큼, 그곳은 예수님의 애착 기도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또 깨닫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외로우셨구나! 습관적으로 외로우신 예수님, 뭔가 짠하지 않습니까?
어쨌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이었습니다. 늘 그곳에 가셔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문제 해결책을 찾으셨습니다. 그러니까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만의 외로움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적 애착인형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겟세마네는 예수님이 그곳에 가시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마지막 문제, 십자가 문제도 이곳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문제 있을 때마다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밤을 새며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는 제자들에게도 익숙한 곳입니다. 얼마나 습관적인지 가룟 유다도 예수님이 그곳에서 기도할 줄 알고서 군병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인계하기 위해 겟세마네로 찾아왔습니다.
요18:1-3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2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3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그랬습니다. 분명 그곳에 주님이 계실 것이라고 했고, 그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가룟유다가 군병들을 데리고 자신을 재판에 넘길 것을 주님이 모르셨을까요? 이미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만찬석상에서 하신 말씀에도 뉘앙스가 있습니다.
요13:26-2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27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요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주님이 직접 주신 떡조각이 가룟유다의 마지막 식사였습니다. 다음 날 예수님은 사형당하시고, 그걸 본 가룟유다는 자살로 삶을 마칩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자신을 팔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으로 찾아올 걸 알고 계셨음에도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가시던 삶의 습관을 멈추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날만 자리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하루쯤 생략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기도 습관을 멈추지도, 변경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모름지기 믿는 우리는 정해진 기도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 시간은 양보해서도 안 됩니다. 생략해서도 안 됩니다. 기도 습관은 손해가 올지라도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방인 다니엘이 총리가 된 게 본토인들에게는 눈엣가시입니다. 동남아 사람이 우리나라의 총리 되었다고 가정하면 어떻습니까? 그래요, 이 마음입니다. 대통령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하겠지요. 그래서 약점 잡기를 합니다. 본토인들은 다니엘의 기도 습관을 공격합니다. 신상을 만들고 왕을 찬양합니다. 한달간 왕만 경배하는 법을 만듭니다. 다른 신에게 경배하면 죽이는 법입니다. 왕의 도장이 찍혔다는 것은, 개정 불가능한 법일 때 어인(御印)을 찍습니다.
이 법을 다니엘도 알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전에 하던 대로!’
이 말씀은 본문의 ‘습관을 좇아’와 같은 맥락입니다.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다가 사자굴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 안에서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전에 하던 대로!’ 기도로 위기 문제를 타결할 수 있는가? 이겁니다. 아멘입니까? 아멘인 줄 믿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전에 하던 대로’를 살펴보면 항상 기도는 우선순위에 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중요성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항상 밀립니다. 심지어 예배 전체가 뒤로 밀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게 아니라는 겁니다. 바빠서 기도하는 겁니다. 시간이 없을수록 기도하는 겁니다. 그래야 주님도 우리에 관심을 기울이시지요.
우리도 제자들처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잠자는 것을 먼저 택했습니다. 바쁜 일 처리부터 했습니다. 이것이 누적되다 보면 진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닥쳤을 때 막힙니다. 너무 습관적으로 타협하다 보니까 정말로 겟세마네가 필요할 때는 찾아가는 길조차 까맣게 잊어먹습니다.
이삭의 모리아
이삭에게는 이런 전설이 흘러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살에 난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명령이라면 어떤 명령도 들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바위 위에 묶어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칼을 들었습니다. 죽이려고 할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이삭은 죽기 직전에 살아났습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5분만 늦었어도 이삭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 후 이삭은 어려운 문제만 있으면 자기가 죽을 뻔한 바위를 찾아서 기도하며 매달렸다고 합니다. 물론 전설입니다.
삭개오의 뽕나무
삭개오에게도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마치는 매국노였습니다. 돈은 많았으나 사람들에게 왕따 당하고 사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였습니다. 너무나 외로웠기에 예수님을 만나 하소연하고 인생 문제를 해결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라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그렇게 간절히 사모하는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뽕나무 밑으로 오셔서 삭개오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 집에 가셔서 하룻밤을 지내셨습니다.
지나가시다가 그 집에 머무르신 기록은 이곳 한 곳뿐입니다.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긴 밤이었습니다. 인생이 바꾸어진 구원의 밤이었습니다. 삭개오를 만난지 일주일 만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삭개오는 인생의 문제만 생기면 뽕나무로 가서 뽕나무를 붙들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 해결의 해답이 떠올라 그곳을 인생의 중심지로 삼았다는 전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외로울 때마다 찾아갈 수 있는 겟세마네가 있어야 합니다. 거기만 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습관적인 곳이 하나씩은 있어야 합니다. 일동순복음교회가 바로 그런 곳이기를 소망합니다. 꽉 막혀서 죽을 것 같다? 그때 교회 오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럴 때마다 습관적으로 겟세마네로 오셨습니다. 우리도 힘들 때마다 습관적으로 교회에 오셔서 밤하늘을 보면서 깊은 생각도 하시고, 고민도 털어놓고, 하나님과 교감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동순복음교회만 떠올리면 ‘아, 그곳!’ 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영적 겟세마네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게스트하우스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숙소 문제가 해결돼야 아무 때나 올 수 있지요. 기도굴도 만들어야 하고요. 이런 것들을 해결할 성전을 주시라고 기도한 지, 2006년 11월 2일 꿈을 꾼 이후입니다. 올해로 20년째입니다. 강산이 두 번 변했는데요. 그래서 은근히 올해 기대도 합니다만, 20년간 기도했는데 안 주시네요. 제 기도가 부족한 건가요, 그걸 만들어도 기도하러 올 분이 없어서 안 주시는 건가요. 어느 쪽일까요?
3. 나 자신을 쥐어짜 주님을 만나는 곳, 겟세마네!
내가 쥐어짜서 기도한 후 응답받은 것이 있다면 말해보세요.
세 번째로 겟세마네를 장소로만 볼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를 습관적으로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소가 좋아서 자주 찾은 것일까요? 경치가 좋아서일까요? 물론 경치는 좋습니다. 겟세마네는 감람나무가 많은 골짜기입니다. 지금도 많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 이름도 감람산입니다. 올리브동산이라는 의미입니다. 감람이나 올리브나 같은 의미입니다. 올리브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곳에는 감람유를 짜는 틀이 많았습니다. 겟세마네 의미도 감람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감람열매를 넣고 쥐어짜서 감람유를 만드는 곳이 겟세마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람나무를 보러 자주 가신 것은 아닙니다. ‘엑스트라 버진’이 몸에 그렇게 좋답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에 아주 좋다는 의학 보고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엑스트라 버진을 마시러 겟세마네에 자주 가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 가셔서 하나님과 독대(獨對)하셨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푸셨습니다. 하나님만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는 ‘겟세마네’의 의미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란 <쥐어짜다.>라는 뜻입니다. 뭘 의미합니까? 쥐어짜는 게 뭡니까? 간절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기름을 쥐어짜듯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누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누가가 의사였기 때문에 의학적인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렇게 이해도를 높여줍니다.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쥐어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대변해 줍니다. 있는 힘을 다하는 기도입니다. 힘쓰고(ἀγωνία:아고니아)는 아곤(=시합, 경쟁)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 시합은 격투기입니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습니다. 요즘 UFC나 이종격투기 보면 피가 낭자해도 경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다운당해도 그냥 놔둡니다. 살벌하지요.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격투기는 더 살벌했습니다. 규칙은 없습니다. 그냥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경기하는 겁니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상황에서 힘쓰는 상태가 ‘아곤’입니다. 주님이 기도하실 때 힘쓰신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쥐어짜는 기도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계획까지도 바꾸시게 만들 수 있습니다.
* 아브라함의 기도는 하나님의 심판 기준을 완화(緩和)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창18:20-33)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 의인 100명을 10명으로 줄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민21:4-9)
* 히스기야의 기도는 15년의 수명연장을 받습니다. (대하32장, 사38장)
* 한나의 기도는 불임을 임신으로 변화시킵니다. (삼상1장)
* 기도는 사고예방의 효과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도해야 함에도 오히려 기도를 소홀히 여깁니다.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도 압니다. 가장 시급히 기도해야 할 타이밍임도 압니다. 그런데 무릎 꿇기까지가 왜 그리 힘든지요? 제자들처럼 졸기 일쑤입니다. 아예 잠들어서 영적인 코를 ‘드르렁~’고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다음이 압권입니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변했다고 누가복음은 기술합니다. 누가는 다시 의학적인 설명을 합니다. 이 현상은 모세혈관이 파열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힘을 주어 부르짖으면 모세혈관이 터집니다. 부르짖으니 땀도 나겠지요? 터진 모세혈관에서 나온 피가 땀에 섞여 배출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사였던 누가만 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런 영적 집중력, 그리고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이런 집중력 있는 기도는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온 우주가 돕는 게 아닙니다. 주님이 도우십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그랬습니다.
눅22: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우리가 쥐어짜는 기도를 하면 천국이 비상이 걸립니다. 예수님은 보좌에서 일어나시고요. 천사들은 비상대기 상태로 들어갑니다. 우리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을 맞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일동순복음교회에서는 쥐어짜는 기도로 인해 천사들이 투덜거릴 만큼 바쁘게 만드는 성전이기를 원합니다.
4. 속사정을 털어놓는 곳. 겟세마네
나는 속사정을 털어 놓을만한 친구가 있나요?
네 번째로 예수님의 겟세마네는 속사정을 털어놓는 곳이었습니다. 사실 이날 저녁 예수님을 비롯한 제자들 모두는 몹시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낮에는 하루 종일 첨예한 말싸움을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법적 구속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이런 대화 나누면 피로도 곱절입니다.
거기다가 예수님 일행은 그날 저녁 유월절 예식까지 치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모세부터 지켜왔습니다. 하가다라는 유월절예식서가 있습니다. 이 예식서대로 진행하면 보통 4시간 정도 걸려야 유월절예식을 마칠 수 있습니다. 예식은 해가 지면 시작됩니다. 예수님도 저물 때 마가다락방에서 유월절예식을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더구나 제자들의 발도 일일이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겟세마네 도착하실 때는 이미 한밤중입니다. 제자들은 얼마나 피곤하던지 곧바로 다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피곤함보다 고민을 털어놓는 게 먼저였습니다. 또한 털어놓을 수 있는 동역자들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에게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속사정을 털어놓습니다.
마26:36-38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깊은 고통은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만 해도 시원해집니다. 절반쯤 치유가 됩니다. 그만큼 털어놓을 친구가 중요합니다. 단, 사람에게 털어놓을 때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절대 발설하지 않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또한 허물을 덮어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런 친구 있습니까? 법률자문 역할 말고요. 경영컨설팅해 줄 친구 말고요. 말없이 내 고민을 듣고 함께 눈물 흘려줄 친구! 그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는 많아야겠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도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털어놓지 않으면 답답해 죽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속사정을 털어놓는 이야기는 반복해서 해도 들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같은 기도 부탁을 세 번 반복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세 번 반복하여 잤습니다. 같은 기도를 한 장소에서 한 시간마다 반복하였습니다. 기도는 반복입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야 합니다. 승리의 자신이 올 때까지 부르짖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야 합니다.
어느 분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그쪽 사정은 어떻습니까? 이곳은 엉망진창입니다. 이곳을 하나님의 은혜로 정화시켜 주옵소서!"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감정 그대로 드러내놓고 그대로 하는 기도가 진실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는 고민하셨습니다. 심히 슬프셨습니다. 죽을 것 같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런 고민을 겟세마네 오셔서 그대로 토로(吐露)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싫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지금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그러나 결론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이 뜻대로 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26: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그때 상황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심한 통곡과 눈물의 간구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울면서 통곡으로 속을 털어놓으신 겁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니까 편안해졌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제는 일어나 당당하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나서는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털어놓으면 회복이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 일동순복음교회가 이런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우리 일동순복음교회가 나의 속사정을 다 털어놓는 곳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속 터지는 일,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 종종 찾아오게 됩니다. 그때 참고만 있으면 병이 되고 암이 됩니다. 우울증에 걸립니다.
그렇다고 감정 생길 때마다 다 밖으로 표출하면 이상한 사람 됩니다. 경박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미국 대통령 저격범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털어놓고 말할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살자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친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털어놓을 사람이 없으면 엉뚱하게 사고를 저지르게 됩니다. 남을 죽이거나, 자기자신을 죽이게 됩니다.
그렇기에 문제가 생기면 품고 있지도 말고도, 발산하지 않고도 풀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것입니다. 기도가 해결책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 오셔서 세번째로 하나님 아버지께 털어놓으셨습니다.
마26: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그렇게 털어놓고 나니 시원합니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태도가 달라집니다. 방금 전까지 슬퍼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고민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십자가가 부담되어 죽을 지경입니다. 그렇게 피눈물 나는 기도를 세 번이나 했으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단 예수님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기도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따라 합시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그래요 바뀐 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기도 전에는 억지로 져야만 하는 십자가였다면, 이제는 자발적으로 지는 십자가입니다. 그렇게 자세를 바꾸니 이제는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슬픔도 없어졌습니다. 번민과 망설임도 안녕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일어나 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예수님은 얼마든지 도망가실 수도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이길 수도 있었습니다. 12 영이나 되는 천사를 동원시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행동으로 옮길 수가 있었습니다. 기도 후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우리 일동순복음교회는 이런 교회이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고향 어머님 품 같은 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아가가 울면 엄마가 꼭 안아줍니다. 희한하게도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아줍니다. ‘배고파서 울었쩌?’ 그럼 아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면 다 된 겁니다. 엄마가 젖을 주고 아가는 마냥 행복합니다. 우리 일동순복음교회가 바로 울면서 안길 수 있는 넉넉한 품 같은 곳이기를 원합니다. 울면서 안길 품이 있는 것은 행복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나 혼자만의 겟세마네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1. 애착인형 속에 들어있는, 내 안의 본능적인 외로움을 발견해야 합니다.
2. 죽을 것 같이 힘들 때, 숨이 막힐 것 같은 두려움이 있을 때! 습관적으로 찾아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도 장소가 필요합니다. 일동순복음교회가 이런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3. 장소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쥐어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영적 마음속의 겟세마네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쥐어짜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4.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친구를 만드세요. 서로에게 친구 교우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 될 수 있도록, 모두가 다 기도로 닦아서, 노력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