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이셨던 예수님 / (막 6:1-6)
(1944.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막6:1-6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2.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3.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5.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1) 예수님은 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을까요?
2) 목수가 아닌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3) 주님이 지금의 내 직업을 갖게 하신 뜻이 무엇일까요?
4) 내 직업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부족하게 느낀다면 어떤 점이 부족할까요?
5) 내 직업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천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고향에서는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허세도 보이곤 합니다. 중고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때가 명절 밑이라고 합니다. 그 친구 성공했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자동차입니다. 새 차는 못 사겠고, 그래서 중고차를 장만합니다. 사람들이 보는 시선 하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소 무리해서라도 구매합니다. 고향은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은 곳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사역하시던 중, 고향을 방문하셨습니다. 집을 떠난 후, 아마도 처음 방문하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까지 대동하고 방문합니다.
막6: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고향에서도 예수님 소식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강단을 내줍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막6: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가르침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하기야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니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겠습니까? 권능도 느낍니다. 그런데 걸림돌이 생깁니다. 목수의 아들이란 겁니다.
막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은 목수 아들로서 목수가 되었습니다. 공생애 전, 예수님의 30년 동안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후에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하셨지만, 예수님은 직업은 양치는 목자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을 의사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고치셨지만, 예수님의 직업을 의사라고 말해주는 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지만, 예수님의 직업을 농부라고 말하는 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고기를 못 잡는 어부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만, 예수님의 직업을 어부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에게 들어보지 못하는 새로운 교훈을 가지고 가르치셔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셨지만, 예수님을 교수라고 부르는 이도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의사 중에 의사, 목자 중에 목자, 어부 중에 어부요, 농부 중에 농부, 교사 중에 교사이십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주님을 목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부한 질문입니다만, 왜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왜 목수의 아들이 되셨을까요? 예수님에 대하여 이해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나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못 박았을까요? 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동업자 정신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집단 중 하나가 정치인입니다. 특히 국회의원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정치적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곤 합니다. 이익 앞에서는 욕먹는 것 정도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인 마이 포켓’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동업자에게는 인정을 보입니다. 자기 당 의원이 아니어도. 웬만해서는 국회의원 제명에 찬성표 던지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제사장 출신이셨다면, 대립각을 세웠던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도 어느 정도의 선 안에서 동업자 정신을 보여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역하시기도 쉬우셨을 겁니다. 제사장과 목수는 공부하는 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목수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30년간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본문 3절에서 목수라고 할 때의 원어는 '텍톤'입니다. 텍톤이라는 말은 목수 중에서도 대단한 기술자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대목(大木)쯤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30년간 목수 일을 하셨으니 대단한 전문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30세까지 아버지의 직업인 목수 일을 하다가, 30세에 집을 떠나 제자들을 모집하시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30년간 목수 일을 하시던 고향을 방문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지혜에 놀라고 그가 행하시는 권능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렇게 놀라면서도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3절,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한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목수라는 직업에서 오는 선입견이 있었음을 말씀합니다. 아마도 당시 목수라는 직업은 존경받는 직업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목수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 이 안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역에 있어서 성과나 효율이 우선이 아니십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그 영혼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전혀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일만 달란트 비유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도 비용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효율을 생각하셨다면,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나시는 게 맞습니다. 그러면 부흥은 이루셨겠지만, 바닥 인생을 살피지 못하셨을 겁니다.
그래요. 예수님은 목수입니다. 목수로 오신 이유가 있으십니다. 목수란 어떤 사람입니까? 목수 직업의 특수성을 살펴서 그 안에서 몇 가지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의미 없어 보이는 재료를 가지고 쓸모 있게 만드는 사람
목수는 통나무 속에서 가구나 작품의 모양을 읽어냅니다. 조각가들은 돌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기를 찾아냅니다. 우리가 무심히 보는 바위 속에서 위대한 것들을 발견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은 미켈란젤로가 큰 돌덩이를 가지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는 이 속에서 모세를 찾고 있었습니다. 돌 속에 잠자고 있는 모세가 곧 깨어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조각가가 돌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처럼 목수는 나무를 재료로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목수는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다듬어지지 않는 나무들을 쓸모 있는 재료로 만드는 기술을 30년간 익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되셔서 여기저기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찾아 정말 쓸모 있는 사람을 만드시는 '사람 목수'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손에 잡히기만 하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의미 없는 재료는 나 자신을 의미합니다. 의미 없던 내가 주님 손에 붙잡히는 순간, 의미를 갖게 합니다. 의미가 주어지는 순간, 이름이 새로이 생깁니다. 이름이 생기는 순간, 방향도 달라집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좋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은 목수 일을 하시면서 주어진 재료들을 쓸모 있게 만드는 데 능숙하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통하여 쓸모없는 사람들을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데 더 능숙하셨습니다.
* 창녀 막달라 마리아를 성녀 마리아로 만드셨습니다.
* 어부 베드로를 주님의 위대한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 핍박자 사울을 이방의 전도자, 바울로 만드셨습니다.
* 귀신 들려 망가진 사람들을 총명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셔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사람으로!
* 아무 자격도 없는 제가 주님 손에 붙잡혀서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예수님은 영적 목수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을 통하여 수많은 쓰레기 같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쓸모 있는 일군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부터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예수님이 처음부터 목수 일을 잘하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배우는 중에 망치로 당신 손등을 찍기도 했을 겁니다. 칼로 손을 베기도 하셨을 겁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 그런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바닥 체험을 통과한 다음에 비로소 건축이 주는 기쁨에 매료되었을 겁니다. 집을 만드는 희열(喜悅)이 분명히 있습니다.
2026.6.16. EBS 건축탐구 집에서 방영된 내용입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주권이란 분이 집 짓는 기쁨에 필이 꽂혔습니다. 그래서 20년 전에 인제 쪽에 땅을 샀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다가 8년 전부터 집 짓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는 건축전문가가 아닙니다. 금융업이라니까요.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만 인제까지 와서 집을 짓습니다. 피곤하냐고요? 하나도 안 피곤했답니다. 건축사가 그럽니다. 사람을 사서 하셨으면 더 빨리 하실 수 있잖았을까요? 그랬더니 왈, 이렇게 즐거운 일을 왜 남을 써서 합니까?
그렇게 세번째 집을 8년째 짓고 있습니다. 세번째 집은 아예 사표를 집어던지고 짓습니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수익까지 창출할 목적으로 짓습니다. 집을 짓는 일은 기쁨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기쁨들을 터득하셨을 겁니다. 다만, 집 짓는 기쁨이 영혼을 만들어 가는 기쁨으로 바뀌었을 뿐, 과정은 같습니다. 버려진 건축재료를 가지고 전혀 다른 쓰임새를 찾는 일은 희열입니다. 그런 과정 중에 바닥에 막 던져진 나뭇조각에도 생명력이 있음을, 그리고 어느 한구석에서는 꼭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을 겁니다. 그래서 목수셨던 예수님만 발견할 수 있는 희열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누구입니까? 나 자신입니다. 쓸모없는 내가 예수님이 목수 되심으로 발견됩니다. 믿음 안으로 들어오고요. 내 의지, 계획과 전혀 상관없이 나라는 존재가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그것도 그냥 쓰이는 게 아니라 머릿돌이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전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예수님이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나셨다면, 사역에 걸림돌은 없으셨을 겁니다. 성공하셨을 것이고요. 그런데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목수가 되시고 고생하시면서 살 수밖에 없던 이유?! 바로 나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나를 찾아내서 쓰시는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으셨습니다. 제사장 가문으로 태어나셨으면 유대인 구원은 이루셨겠지만, 이방인의 구원은 없었을 테니까요.
조용기 목사님은 졸업장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결핵에 걸려서 학교 가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있어야만 했습니다. 신학교 때는 학비가 없어서 공부는 했지만, 졸업장을 받으실 수 없으셨습니다. 이런 것들로 신학자들로부터 이단이다, 삼단이다!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식 학위를 받았으면 안 받아도 될 공격이었습니다.
만일 조목사님이 제대로 된 학위를 받으셨다면, 그렇게 큰 교회를 일으키실 수 있었을까요? 그런 큰 능력 나타났을까요? 아닐 겁니다. 약한 것들, 천한 것들, 미련한 것들, 없는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 지혜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이 말씀을 나에게 적용합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걸 비관할 필요 없습니다. 부모를 원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지금 내 직업! 나는 왜 이런 직장밖에 일할 곳이 없을까? 비관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내게 주신 직업은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직장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직장에서 얼마나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내 모습에서 다른 직장동료들이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나보다 못한 사람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목수의 눈이고, 목수의 마음입니다.
2. 사람 살 집을 짓는 사람
두 번째로 목수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전혀 기록이 없지만 아마도 예수님은 30년간 엄청 많은 집을 지으셨을 겁니다.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것도 누군가의 집을 지어주는 일은 정말 따뜻한 일입니다. ‘헤비타트’(Habitat, Habitat for Humanity)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미국대통령으로 재임 시절에 가장 정치를 못 했다는 평을 받은 이가 카터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퇴임 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상중에 가장 권위 있는 상이 노벨상이고 노벨상 중에 가장 부러운 상이 평화상입니다. 그가 평화상을 받은 이유를 몇 가지 들었습니다.
* 세계 분쟁이 있는 곳마다 찾아가 평화롭게 하는 데 노력하였습니다.
* 해비타트를 만들어 전 세계 망치를 들고 다니며 집이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 매 주일이면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 한 달에 한 번씩은 아내와 더불어 교회 청소를 하였습니다.
* 늘 전도지를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이 카터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이유입니다. 카터는 늘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사람이라고 평을 하고 있습니다. 카터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나를 보내신 존재 이유를 찾아서 그것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결과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담임 목사는 한기원 목사님이었습니다. 한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하는 것을 읽었습니다. 예배 후 한 목사님이 카터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각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이 말에 대통령도 주변에 경호원도 초 긴장하였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카터가 무엇이냐고 묻자, 한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곧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게 될 터인데 전도하여 주십시오.” 카터대통령은 얼굴이 환해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전도할 생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박 대통령에게 전도하였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기자들이 비난하였습니다. 국사를 논하는 중대한 시간에 종교문제로 시간을 낭비하였다는 비난이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한국방문 기자회견을 할 때 기자들이 이 문제를 들고나와서 비난하였습니다. 이때 카터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미국 대통령으로 박대통령과 회담하는 공식 시간에는 국사만 논하였습니다. 정치, 외교, 군사, 경제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시간에 예수그리스도를 전하였을 뿐입니다. 내 자유로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가 대통령에게는 없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공식적인 기자회견 시간입니다. 공식적인 시간이 끝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시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따로 시간을 내어 전하여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어쨌든 집을 지어주는 일은 아주 보람 있는 일입니다. 집을 지어준 카터를 대통령 카터보다 더 높이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 헤롯 왕은 유대인이 아닌 이두메인입니다. 에서의 후손입니다. 그런 사람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사실이 유대인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요. 그래서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헤롯왕은 건축전문가입니다. 유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성전건축임을 알고 성전을 만들어 줍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성전이 예수님 당시의 헤롯성전입니다. 이 성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자들조차 감탄할 정도입니다.
마2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제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눅21: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성전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서,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헤롯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집을 지어주는 일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헤롯이 지은 아름다운 성전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이때 유대인들은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지었거늘 네가 3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2:21-22)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나눈 이야기들은 모두 목수들의 용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시적인 성전이 아니라 불가시적인 마음의 성전을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은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집을 짓고 계시는 예수님
육신의 집을 30년간 지으시던 목수 예수님은 지금 천국을 건설하고 계십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나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2천 년 전에는 보이는 집을 지으셨던 목수 예수님은 지금은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 집을 만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목수이신 주님이 지금 만들고 계신 집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집을 지어야만 합니다. 헤비타트 가입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집이 뭡니까? 가족들이 편안하게 사는 장소 아닙니까? 그런 역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답답한 사람들이 내게 와서 평안히 쉴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제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영적 집을 짓는 일입니다.
3. 나무(=사람)를 다루는 기술이 있는 사람
목수는 나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나무를 다룰 수 없는 이는 목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나무를 다루는 목수의 아들로서 나무를 다루는 일에 능숙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막6:3)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예수님은 목수 이전에 영적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히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주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일반인들은 속옷을 입지 않습니다. 제사장들이 속옷을 입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반포속옷이라는 단어가 종종 나옵니다. ‘케토네트’라고 합니다. 대제사장이 겉옷 안쪽에 입는 거룩한 의복 중 어깨에서 발목 위에까지 내려오는 통으로 짠 일종의 원피스입니다(출28:3). 그런데 주님이 이 옷을 입으셨습니다.
요19:23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예수님이 입으셨던 이 속옷이 바로 ‘케토네트’입니다. 이 옷을 입은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뭡니까? 아, 겉은 목수였는데, 속은 제사장이었네? 이걸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30세부터 사역을 시작하신 것도 제사장직이기 때문입니다. 구약부터 제사장은 30세에 일을 시작하였습니다(민4:3).
민4:3 곧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다른 직업은 나이 상관없습니다. 제사장직만 30~50세까지 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당시 율법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여하간에 30세까지 목수로서 일하신 것은 정확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술이 좋은 목수였겠습니까?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습니다.
① 주님은 돌아가실 때 늘 만지셨던 나무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 십자가입니다.
② 목수이신 예수님은 늘 망치를 사용하셨습니다. / 그런데 그 망치로 자신의 몸에 못을 박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③ 목수이신 예수님은 톱을 사용하셨습니다. / 그 톱으로 나무를 잘라 십자가를 만들어 그 위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습니다.
④ 목수이신 예수님은 늘 못을 사용하셨습니다. / 일생 못 박으며 사셨던 주님은 녹슨 세 개의 못에 박혀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에 맞아 운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화살에 맞아 돌아가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굶어 돌아가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나무에서 시작된 그의 생애는 나무에서 끝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나무였습니다.
처음과 끝이 나무였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렇게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축복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렐루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다른 행적을 전도하는 게 아니라 십자가를 전합니다.
고전1:23-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렇게 목수가 만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며, 우리의 죄와 저주와 병과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해결된 것들이 많습니다.
1)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죽으심으로 죽었던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육이 죽고 영이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나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2) 저주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저주가 사라지니 행복이 그 자리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될 겁니다. 반드시 잘 돼야 합니다.
3) 병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벧전2:24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
그래서 우리는 건강하게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의지해서 병마야 물러가라! 외치기만 하면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며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외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위의 모든 요소들 다 포함입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누구나 다!
사망 -> 생명으로!
저주 -> 행복으로!
질병 -> 건강한 자아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하였기에 마귀와 더불어 영원히 죽어야 할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죽어 주었기에 우리는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나무에서 시작하여 나무로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생애는 목수로 시작하여 지금도 천국의 목수로서 일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죽으러 오셔서 생명과 축복을 주시고 끝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목수로 사시다가 목수로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 목수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생명을 전해줘야 합니다.
십자가처럼! 복음을 위해 나를 희생해서라도! 생명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무를 다루듯이 사람을 다룰 수 있어야만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 다루는 능력을 주님이 주실 겁니다. 사람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람 싫어하지도 마세요. 사람을 싫어해서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이 목수이셨다는 의미는 우리에게 이 같은 영적 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수 예수로서 3가지 특징을 지니셨다는 의미입니다. 목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1) 의미 없어 보이는 재료를 가지고 쓸모 있게 만드는 사람.
(2) 사람 살 집을 짓는 사람.
(3) 나무(=사람)를 다루는 기술이 있는 사람.
희한하게도 주님은 나무를 다루는 일로 시작하셔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시고 행복하게, 건강하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