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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법(46)-맥주 세병 안주 하나 - 풍경을 절경으로[문장론]

작성자저산|작성시간26.06.11|조회수22 목록 댓글 0

                                                            글쓰기 기법(46)-맥주 세병 안주 하나

- 풍경을 절경으로 -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술대 객좌교수

 

 

지금까지 수필은 문학의 서자(庶子)’라는 평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수필이 본질적으로 지닌 가치 때문이라기보다, 수필을 단순한 이야기나 체험의 기록으로 오해해 온 인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수필을 쉽게 읽히는 이야기 글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수필은 문학적 엄밀성이나 예술적 깊이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 왔다. 그러나 이제 수필은 그 내용과 작법, 그리고 미학적 지향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오늘의 독자들은 단순한 흥미나 감상에 머무는 글이 아니라,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신적 양식과 존재 인식의 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필은 독자에게 다양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삶이 하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수필은 분명 문학이며, 문학은 언어를 매개로 한 예술이다. 따라서 아무리 내용이 훌륭하더라도 예술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문학이라 할 수 없고, 문학성이 결여된 글은 설령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참된 의미의 수필이라 부르기 어렵다. 그러므로 수필의 형식을 갖추었다는 외형적 조건만으로 수필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예술성, 곧 문학성이 충분히 구현된 수필다운 수필만을 엄밀한 의미에서 수필로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의 설정은 수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이기도 하다.

수필의 문학성이란 단순한 감상의 나열이나 체험의 기록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이는 작가의 내면에 잠재된 감정과 정서가 세련된 언어적 조직을 통해 재구성되는 데서 비롯된다. 예컨대 호수 위에 떠 있는 달빛의 아름다움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쳐서는 문학적 완성에 이르기 어렵다. 그 달빛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사유의 대상으로 삼고, 그로부터 새로운 의미와 정신을 길어 올릴 때 비로소 작품은 문학적 깊이를 획득한다. 이것이 곧 창조적 사유이며, 수필이 단순한 묘사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즉 수필가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세계와 내면을 연결하는 사유의 매개자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언어는 단순한 전달 수단을 넘어, 사유와 감정의 구조를 구현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마찬가지로 늦가을 저녁, 가늘게 내리는 비에 젖어 낙엽이 떨어지는 풍경을 그리는 데 머문다면 그것은 감상적 서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 풍경 속에서 생의 허무, 존재의 유한성, 혹은 시간의 비가역성과 같은 근원적 의미를 길어 올릴 때, 비로소 그 체험은 문학적 차원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체험의 변용이며, 이 변용의 성취가 곧 수필의 예술성을 결정한다. 따라서 수필은 자연의 절경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절경을 통해 사유의 깊이를 확장하는 데 그 본령이 있다. 즉 글쓴이는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사유와 감정을 매개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창조적 주체가 된다. 이러한 재구성을 통해 독자는 풍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삶을 성찰하며, 글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 보편적 의미를 획득한다.

본래 수필은 자기 탐색과 자기 성찰의 성격이 강한 산문 문학으로 정의된다. 필자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사건과 감정을 바탕으로 글을 구성하며, 비교적 평이하고 친화력 있는 문체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수필은 독자가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운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역설적으로 수필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평이하고 설명적인 서술은 문학적 긴장과 미학적 밀도를 약화시키며, 그 결과 수필은 종종 잡문으로 폄하되어 왔다. 따라서 이제는 수필을 단순한 이해의 용이성에 머무르게 할 것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필가는 평범한 일상과 체험을 심화된 성찰과 미적 형상으로 승화시키는 글쓰기 전략을 적극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예술로서의 수필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수필은 이야기적 서술성과 서정적 정서를 넘어, 미학적 차원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는 단순한 장식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에서 발생하는 심미적 긴장이다. 예술은 대체로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에 발생한다. 그 경계란 다름 아닌 일상성이다. 누구나 보고, 알고, 경험하는 일상적 풍경은 그 자체로는 예술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일상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즉 익숙한 것을 낯설게 인식하는 순간에 비로소 미적 경험이 발생한다. 따라서 수필가는 일상의 평범한 장면 속에서도 새롭게 보고 느끼는 예민한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수필은 평범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차이(difference)’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흔히 단순함(simple)이나 용이함(easy)에서 오는 친숙함이 수필의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진정한 미학은 오히려 복잡성(complexity)과 난해성(difficulty) 속에서 형성된다. 이는 독자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의 사유를 자극하고 확장하기 위한 장치이다. 결국 익숙한 일상이 낯선 인식으로 전환될 때, 평범한 풍경은 절경으로 변모하며, 수필은 비로소 예술의 차원에 도달한다. 따라서 수필가는 일상의 평범한 장면 속에서 새로운 시각과 감각을 포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능력이 글 속에 스며들 때, 독자는 익숙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찰스 램이 나는 평범한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한 바 있으나, 이 진술은 평범함 자체를 미학적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평범한 대상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술은 단순히 평범함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새로운 차원과 의미를 창출하는 데 그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승훈의 주장처럼, 자신이 쓴 글을 수필이라 부르기 위해서는 그 안에 예술성이 구현되어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자신의 글이 어떤 측면에서 문학적 가치와 예술적 완성도를 확보하고 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 글을 수필이라 명명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는 창작에 대한 겸허한 태도일 뿐 아니라, 수필의 수준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자기 검증 과정이다. 수필가라는 명칭이 곧바로 작품의 문학성을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수필은 단순한 자기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예술적 성취를 지향하는 창작 행위이다. 자신의 삶을 기록한다고 해서 모두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은 개념에 대한 이해, 문학에 대한 인식, 그리고 예술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성립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창작만이 수필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오늘날은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수필 역시 변화해야 한다. 수필가는 단순한 체험의 전달자에 머물지 않고, 사유와 언어를 끊임없이 연마하는 창작자로서의 고뇌를 감당해야 한다. 예술성은 대상과의 치열한 대면,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कठ한 투쟁 속에서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다듬어지고, 사유는 심화되며, 작품은 비로소 미학적 완성에 도달한다.

따라서 수필문학의 심미적 기능을 제고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체험이나 상상을 바탕으로 글을 쓰더라도, 그것이 문학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신적 긴장과 내적 투쟁이 수반되어야 한다. 결국 수필 창작자는 일반적인 수필론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심화된 본격 수필 이론을 탐구함으로써 자신의 미학적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그것을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처럼 수필의 개념이 예술의 경계 안에서 엄밀하게 규정될 때, 수필의 가치와 위상은 자연스럽게 상승하게 된다. 충분한 예술성을 갖춘 수필을 두고 더 이상 잡문이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수필은 문학의 한 중심 장르로서, 인간의 삶과 사유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중요한 예술 형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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