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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법(47)-맥주 세병 안주 하나-경험을 체험으로[문장론]

작성자저산|작성시간26.06.13|조회수34 목록 댓글 0

                                                              글쓰기 기법(47)-맥주 세병 안주 하나

- 경험을 체험으로 -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대 객좌교수

 

수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장면 나열이나 정경의 이동이 아니라, 독자가 그 장면을 통해 사유와 감정을 경험하게 하는 능력이다. 만약 글쓴이가 공감 능력 없이 단순히 장면에서 장면으로, 정경에서 정경으로 옮겨간다면, 독자는 곧 싫증을 느끼고 지쳐버릴 것이다. 이는 곧 수필의 글감이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가치 있는 체험을 담아야 함을 의미한다. 흥미와 감동은 수필의 육체에 해당하고, ‘()’는 그 혼에 해당한다. 따라서 수필은 가치 있는 체험을 다루지 않으면 그 의미와 생명력을 갖기 어렵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흔한 사건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독자에게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없으며, 본격적인 예술적 수필은 평범함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독창적 체험에서 나오는 감동을 추구해야 한다.

수필에서 감동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독자에게 생경함과 신선함을 전달하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단순한 경험은 이미 독자가 알고 있는 범주 안에 속하기 때문에 새로운 인상을 제공하지 못한다. 반면 체험은 글쓴이만의 독특한 시선과 해석을 통해 재구성될 때 비로소 감동을 창출하고, 이 감동은 미학적 경험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예술적 수필은 사실(fact)’을 그대로 옮기는 기록이 아니라, 현실(reality)을 재구성하고 변형하는 글이어야 한다. 단순한 사건 재생이 아니라, 조형성, 함축성, 탄력성을 지닌 문장 속에서 통일적 의미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필가는 체험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깊이와 정서를 점진적으로 쌓아 올려야 한다. 결국 감동은 글쓴이의 통찰과 언어적 선택이 결합될 때 독자의 내면에 오래도록 남는 경험으로 전환된다.

이와 관련해 수필을 차에 비유할 수 있다. 녹차의 다도에서 생잎을 그대로 우려내어서는 차의 향미와 깊이를 음미할 수 없듯, 수필도 단순히 사건이나 풍경을 기록하는 데 그쳐서는 그 아름다움과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차잎을 덖고 볶으며, 물의 온도를 조절하고 시간을 조절하면서 관조와 여유를 담아 차를 우리는 것처럼, 수필도 체험을 다듬고, 사유를 거치며, 언어적 장치를 통해 숙성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문장 속에서 체험의 의미가 우러나오고, 독자는 그 안에서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즉 수필가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체험과 언어를 숙성시키는 장인과 같다. 이 과정을 통해 글은 생생한 체험을 넘어, 독자에게 사유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예술 작품으로 완성된다.

비평가 루카치는 수필을 좀처럼 붙잡기 힘든 인간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은 마음의 미세한 풍경을 그리는 양식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수필이 단순한 사실 기록이나 표면적 감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깊숙한 영역을 포착하고 이를 문학적 언어로 전환하는 시적 산문임을 시사한다. 시창작에서 말을 놓는 것이 첫 걸음이고, 소설에서 인물을 배치하는 것이 첫 구상이라면, 수필에서는 마음을 놓는 것이 창작의 핵심이다. 수필은 사상과 감정을 체험적으로 기록함으로써, 독자에게 자아와 세계의 만남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수필가는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순간의 감정과 사유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야 한다. 그렇게 기록된 체험은 단순한 개인적 경험을 넘어 보편적 공감을 가능하게 하며, 독자의 내면에도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수필의 구조는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으로, 이는 지성적이고 철학적이며 학술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이미지다. 다른 하나는 ()’으로, 이는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심정적, 정서적 감정이다. 수필은 이 두 축을 조화롭게 결합함으로써 문학적 완성도를 확보하고, 동시에 예술적 차원의 미를 구현한다. 따라서 수필은 단순히 지성적 사고를 표현하거나, 감정을 표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신적 감동과 시적 분위기를 주도하는 수필, 즉 예술적 수필을 지향해야 한다. 이 두 축이 서로 긴밀하게 맞물릴 때, 글은 단순한 기록이나 감상을 넘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결국 수필가는 사고와 감정, 이성과 정서를 모두 아우르는 균형감각을 통해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

감성은 인간의 유한성을 내포하지만, 동시에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원초적 유대의 고리 역할을 한다. 이성적 인식에서 감성은 사고를 위한 감각적 자료를 제공하고, 실천적 도덕적 생활에서는 이성의 지배와 조화를 돕는다. 미적 인식에서는 인간의 순수한 모습을 드러내며 생의 상징적 징표가 된다. 따라서 감성적 세계 인식은 수필 문학에서 여전히 핵심적 요소이며, 이를 토대로 한 작품은 독자에게 강한 심미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감성 편향에 빠질 경우, 작품은 단순히 감상적이거나 자극적인 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를 보완하고 균형을 잡는 역할이 바로 지성이다. 지성과 감성의 조화 속에서 글은 단순한 정서 표현을 넘어, 사고와 체험이 결합된 깊이 있는 문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좋은 수필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참신한 소재 선택, 독창적 해석, 그리고 독창적 표현이 필요하다. 신문사 신춘문예 당선 작품들을 보면, 이러한 요소가 잘 드러나 있다. 수필은 체험의 문학이다. 작가의 다양한 체험은 다채로운 수필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된다. 수필은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문학이다. 따라서 수필가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만을 그대로 기록해서는 안 되며, 심안(深眼)으로 사물을 보고,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구경꾼이 되라는 조언은 바로 이러한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체험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의미와 정서를 추출해 글 속에 녹여낼 때, 수필은 독자에게 생생한 울림과 사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수필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관찰에서 비롯된 사유와 체험의 변형이다. 경험을 넘어선 체험, 평범함을 넘어선 독창적 인식이야말로 수필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다. 문장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에 심미적 판단과 체험의 의미를 담는 수필만이 독자에게 감동과 미적 경험을 전달할 수 있다. 체험을 다듬고, 감성과 지성을 조화시켜 문학적 구조 속에 녹여낼 때, 수필은 비로소 시적 산문으로서의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갖게 된다. 수필가는 단순히 본 것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성찰하고 의미화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성찰과 재구성 과정을 거친 글만이 독자의 내면에 울림을 남기며, 문학적 감동을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본격적 수필 창작은 단순한 사건 기록이나 감상적 서술을 넘어, 인간 체험의 심층적 재구성, 감성과 지성의 통합, 그리고 문학적·미학적 성취를 목표로 해야 한다. 독자에게 새로운 인상과 감동을 선사하는 체험, 평범한 일상을 넘어선 독창적 사유, 그리고 언어적 완성도를 갖춘 문장만이 예술적 수필의 핵심이다. 수필가는 이 과정을 통해 체험을 문학으로, 문학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그 결과 독자에게 생생한 심미적 경험과 깊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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