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권대근 교수방 §

수필의 문학성과 미학성-수필문학의 지형(1) [본격수필론]

작성자저산|작성시간25.01.26|조회수40 목록 댓글 0

본격수필론

수필의 문학성과 미학성(1)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본질을 잃을 위기감에 빠질 때, 나는 꽃의 세계로 간다.”

 

- 극한의 외로움과 대면하는 자의 깨어 있는 의식처럼 꽃도 지고지순한 과정을 통해 어느 순간 피어난다. 그 존재가치를 아는 자에게 꽃은 단순히 인간의 삶을 장식하는 데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성찰을 위한 대상이다. 자신의 이성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동물성에 절망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구절이다. -

 

 

I. 열며

 

타 장르에 비해 수필미학의 논리 개발이 더딘 현실에서 문학성과 미학성의 관계를 살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은 수필미학의 체계를 정립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여겨진다. 이 글은 수필이란 문학이면서 동시에 예술이어야 한다는 전제로 출발한다. 문학적 접근 즉 수필이 일상의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차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문학적 장치를 예술적 장치로 승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리란 관점에서다. 수필의 예술적 접근만이 수필의 '잡문성'을 해소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폄하되어온 수필의 위상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전제해 둔다. '누구나' 쓰는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씌여지는 글이라는 인식이 세상의 저변에 깔리지 않는 한 수필의 운명은 서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수필 쓰기의 출발점은 문학적인 취미에서가 아니라 심미적 취향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감성과 지성의 균형 있는 조화를 통해 사물과 사회현상의 실재와 작가 스스로의 인생관을 동시에 노출한 작품이 나와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아는 심미적 의무와 무엇이 '아름다움'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아는 미적 취향을 가진 수필가가 붓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수필이 문학 단계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한 단계 업그래이드된 상위 개념으로 나아간 '예술'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수필은 내용을 독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주제와 제재 중심의 문학이면서 동시에 예술이라는 식으로 진술되어야 옳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미'는 어디서 오며, 수필문학과 수필미학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가. 수필문학의 지형

 

우리 문학 전체의 지형 안에서󰡐수필'이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중적이다. 수필창작에 종사하는 인적 구성의 폭이 매우 넓어진 데 비해서 수필에 대한 비평이 빈핍하고, 창작이 보여주고 있는 활성화 수준에 비해서 수필이 주변성과 외곽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 다른 하나이다. 이와 같이 현 단계 우리 수필문학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모순된 위상은 수필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장르적 성격을 알려주는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정립해가야 할 수필정신에 대해 매우 암시적인 지표를 제공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모순된 위상을 면밀하게 해석하여, 수필이 우리문학 전체 영역에서 풍요로운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수필이 매우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고 수필을 게재하고 있는 매체도 적지 않은 데 비해 수필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아직도 열악하다. 수필작가나 작품에 대해서는 일종의 신변잡기의 혐의를 씌우면서 본격적인 공론의 장으로 편입시키지 않는다. 나아가 수필작가들에 대해서는 그 흔한 문학상조차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수필이라는 것이 쓰기 전에 어떤 계획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느낌「기분」정서 등을 표현하는 산문 양식의 한 장르라고 이해되고 있고, 나아가 무형식의 형식을 가진 비교적 짧고 개인적이며 서정적인 특성을 가진 산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 문학이 갖는 고유한 미학적 성격은 다소 취약하다. 따라서 수필 안에는 수필 나름의 고유한 세계 이해방식과 표현방식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같은 주변 장르로서의 인식관행은 점차 완화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