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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필리아를 꿈꾸는 시선-산림문학 봄호 신인상 당선 수필[김남홍론]

작성자저산|작성시간25.02.11|조회수42 목록 댓글 0

 

 

[심사평]

                                                                                          김남홍론

                                                                          에코필리아를 꿈꾸는 시선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김남홍의 <잡초와 전쟁> 외 1편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이 작품 외 다른 작품도 정상급이다. 그가 그려내는 서정수필의 출발점은 잡초에 있다. 그러니 제목을 <잡초와의 전쟁>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수필은 글로 그리는 그림이다. 집 너머 보이는 푸른 봄 햇살과 풀들의 싱그러운 모습을 자신의 세계관과 상관화시켜 시골에 살면서 잡초를 대하며 느끼는 바를 서정어린 그림으로 펼쳐 보이는 것이 바로 김남홍 수필의 특징이다. 한마디로 그의 수필은 자연과 같은 삶, 자연에 닮아가는 삶, 자연스러운 삶에 대한 흔적 남기기다. 문학의 존재 가치는 삶의 흔적이고, 작가의 체온이 흔적으로 서려 있을 때 가치를 발한다.

삶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때마다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만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김남홍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골 마을에서 푸른 서정을 만나며 그 흔적을 남기려 수필을 쓴다. 긍정의 세계관으로 희망이란 잡초을 키우고 있는 그의 삶터 속으로 들어가 보면,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했지만, 제목이 그렇지 김씨의 잡초에 대한 생각은 잡초와 전쟁을 하고 있는 사람 같지는 않다. 김남홍의 수필은에는 김씨가 시골 삶터 모퉁이를 돌면서 얻은 사유가 도발적인 봄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그는 꿈의 씨앗이기도 한 시골 ‘잡초’를 아스라이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수한 사람이다. 이 수필 속에서 무시로 발견되는 ‘잡초’는 김남홍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단초가 되는 핵심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잡초’는 원시적 자연의 서정을 품고 있는 순수의 본향을 의미한다. 그에게 있어서 ‘잡초’는 작가가 직접 수필 속에서 표현했듯이, ‘없애려 들면 독한 제초제를 뿌리 근처에 묻히면 되지만 그것도 자연을 해치는 일이니 삼가려 한다.’ 그의 찬란한 에코필리아를 꿈꾸는 시선은 ‘잡초’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작가는 농촌 풍경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자연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익숙한 김남홍에게 ‘성찰’은 사색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그에게 ‘잡초’는 사색의 시공으로 연결된 문학의 터전이요, 꿈의 삶터다. 이 수필의 최고 압권은“밭에 나가면 잡초들이 말을 걸어올 때도 있다. ‘우리가 있으므로 들이 초록이고 산이 푸른 것이다.’라고 한다. 작은 뙈기밭에 몇 가지 작물을 심었다고 우리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한다. 제초제를 뿌리면 다 같이 죽자는 얘기라고 엄포를 놓는다. 잔디를 심기 전에 그곳이 우리의 터전이었음도 얘기한다. 원래 주인은 그들이고 내가 땅을 빌려 쓰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내 팔 근육이 약해질까 봐서 뽑고 베기를 반복하라고 닦달하는지도 모르겠다.”라고 하는 부분이다.자연과 잡초에서 순수를 배우고, 푸른 서정을 호흡하며 살았던 시골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그는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산다. 그리고 자연에 삶의 지혜를 묻는다.

자연이란 문학의 온상만은 끝내 일탈할 수 없었음을 이 수필은 보여준다고 하겠다. 생의 참된 의미나 조화의 과정을 여유있게 관조하고 수필의 문학성을 확보하는 데 구체적인 자연물 그 이상의 제재는 다시 없다. 자연의 질서가 삶의 질서라는 것을 수필을 통해서 깨닫는다고 볼 때, 잡초는 순리의 삶을 가르치는 스승인 셈이다. 김남홍 수필의 가치는 자연 안에서 조화의 소중함을 찾아낼 뿐만 아니라 삶의 모범이 되는 실천덕목을 발견하는 데서 빛난다. 자연의 메시지는 절대자가 불완전한 인간을 향해 전하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김남홍의 시선과 사유가 푸른 서정의 경계를 넘어 자연의 숨소리와 그 맥박, 그 의도를 점철해가는 발견과 깨달음으로 확산되고 있음은 수필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잡초와 전쟁 김남홍

 

시골에 살면 잡초와 전쟁을 치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잠자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잡초는 무럭무럭 자라 나를 비웃는다. 조금 게으름을 피우거나 한눈이라도 팔면 온통 자기네 세상인 듯 무성해진다.

 

봄부터 어느 시기까지는 내가 이기는 전투를 한다. 새벽에 나가 고개를 내밀 틈을 주지 않고 뽑으면 자취를 감추곤 한다. 잡초 중에는 꽃을 예쁘게 피우고 아예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는 게 많으니 고맙기도 하다. 봄 밭에 지천인 냉이를 비롯하여 망초 여린 순도 입맛을 돋우는 나물이 된다. 초여름에 뜯을 수 있는 참비름도 색다른 맛으로 입을 즐겁게 한다.

우쭐한 승리의 쾌감은 하지를 지나고부터 서서히 역전의 낌새가 보이며 잦아들기 시작한다. 더워서 자주 나가지 않는 밭 주인을 잡초들이 깔보기 시작할 때이다. 그래도 밭고랑을 가끔 매어주면 균형을 맞출 수는 있다. 잔디 깎는 기계와 풀 베는 예초기를 동원하여 집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면 얼마간은 조용하다. 복날이 가까워 뜨거운 햇볕과 장마가 이어지면 전세는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한여름의 열기와 빗물을 자양분 삼아 몸집을 불리더니 이제는 뿌리를 단단히 내려 뽑기도 어렵게 큰다. 밭 둔덕을 넘어오는 풀들이 무성하여 발 디딜 틈이 없다. 나물로 먹을 수 있는 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밭이랑에 나는 잡초 중에 질기고 흉한 놈은 쇠비름이다. 몸이 잘려 나가도 금세 뿌리를 내리고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솥뚜껑만큼 자라 고랑을 뒤덮는다. 텃밭을 가꾸는 친구가 한 말이 우습다. ‘쇠비름이 사내 정력에 좋다는 논문이 발표되어 씨가 말랐으면 좋겠다.’라고 그 징글맞은 잡초에 악담을 퍼부었다. 다음이 바랭이인데 소똥 거름에서 옮겨오는지 뽑아도 뽑아도 매년 더 무성해진다. 잔디를 이기며 고개를 내밀고 마디마다 새 뿌리를 내려 퍼져나가기도 한다. 어린 시절 소를 키울 때는 소여물 거리로 귀한 대접을 받던 풀이다. 논두렁이나 개울가에서 바랭이를 베어 지게 한 짐 지고 오곤 했는데 이젠 쓸모없고 질긴 잡초일 뿐이다.

시골에서 잡초의 대명사는 망초와 개망초일 것이다. 오뉴월쯤부터 지천으로 널려 작고 하얀 꽃을 피우는 망초는 흡사 멀리서 보면 눈꽃처럼 산천을 희게 만든다. 노란 암술로 인해 자세히 관찰하면 달걀부침을 한 듯도 하여 계란꽃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잡초 중에 눈치가 빠르고 영민하기가 으뜸이다. 어느 밭에 주인이 게으른지, 그 밭이 묵어나는지 금방 알고 점령군행세를 한다. 밭둑뿐 아니라 집 주변과 길섶이나 묏등에도 없는 데가 없다. 떠나온 고향에도, 허물어가는 옛집에도 자리를 지키며 주인행세를 한다. 작지만 피는 꽃마다 엄청난 씨를 퍼뜨려 내년을 대비한다. 너무 흔하고 많으니 아예 관심을 끌지 못하는 풀이지만 항상 옆에서 주인을 지켜보고 있는듯하다.

여름에 기승을 부리는 놈 중에 칡이 있다. 어김없이 전신주나 주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 승리의 깃발을 흔든다. 널찍한 이파리와 질긴 넝쿨은 숨도 못 쉬게 하며 자칫 제거할 시기를 놓치면 나무를 죽게도 한다. 칡은 콩과식물로 뿌리혹박테리아로 질소를 만들어 양분으로 삼을 수 있어서 토질과 관계없이 산비탈 등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빠르게 자란다. 배고픈 시절에는 칡뿌리를 캐어, 그냥 씹어먹거나 가루를 내어 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했던 구황식물이다. 어릴 때 비닐이 귀한 시절에는 지게 끈을 대신했고 이엉을 얹어 지붕을 고칠 때도 튼튼한 밧줄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쓸모가 없어졌다.

장마철부터 초가을까지 칡꽃은 보라색 총상 꽃차례 형태로 연이어 피어난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윤 초시 댁 손녀가 꼭 등꽃 같네. 우리 학교에 큰 등나무가 있었단다. 저 꽃을 보니 등나무 밑에서 놀던 동무 생각이 난다.’라고 했던 그 꽃이다. 은은한 향기도 풍기지만 소녀의 분홍 스웨터에 묻은 거뭇한 풀물의 원흉일 수도 있다. 하나씩 뜯어보면 보랏빛 나비같이 예쁘기도 하다. 그 꽃을 통해 소설의 전개를 갈등葛藤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칡은 왼쪽으로 넝쿨을 감으며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올라가서 두 개체가 얽히면 도저히 풀기 어려운 모습이 된다고 하여 생긴 단어가 갈등이다. 질기고 자르기 힘든 현상에 빗대어 개인이나 집단 간에 의견충돌이나 마찰을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갈등 없는 세상이 어디 있으랴마는 산등성이마다 나무를 괴롭히는 칡은 없애버려야 할 존재로 전락해 버려 갈등을 부추긴다.

칡과 연결되어 이방원의 유명한 하여가가 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뇨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옳고 그르고를 따지지 말고 서로 얽혀 잘 지내자는 뜻을 칡넝쿨에 빗대어 지은 시조이다. 이렇게 칡은 예부터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지내왔지만, 시대가 변하는 만큼 효용가치도 떨어져 유해식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없애려 들면 독한 제초제를 뿌리 근처에 묻히면 되지만 그것도 자연을 해치는 일이니 삼가려 한다.

밭에 나가면 잡초들이 말을 걸어올 때도 있다. ‘우리가 있으므로 들이 초록이고 산이 푸른 것이다.’라고 한다. 작은 뙈기밭에 몇 가지 작물을 심었다고 우리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한다. 제초제를 뿌리면 다 같이 죽자는 얘기라고 엄포를 놓는다. 잔디를 심기 전에 그곳이 우리의 터전이었음도 얘기한다. 원래 주인은 그들이고 내가 땅을 빌려 쓰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내 팔 근육이 약해질까 봐서 뽑고 베기를 반복하라고 닦달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가을 이전까지는 머릿속이 온통 잡초로 가득하다가 더위가 물러간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이 높아지는 어느 때쯤 잡초가 더이상 자라지 않을 시기가 오면 한 해가 다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잡초와 전쟁이라고 했지만, 잡초들은 나와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시간과 세월과 내기하다가 겨울이 오기 전에 내년을 기약하고 땅속에서 휴식을 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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