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사건의 존재론, 권대근 작필의 원리론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Ⅳ. 결론
― 수필, 의미 생성의 장으로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를 통해 보면, 수필은 단순히 삶을 기록하는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사건이 언어를 통과하며 새로운 의미로 변환되는 생성의 공간이다. 들뢰즈의 사건의 존재론은 수필창작 원리에 적통의, 직통의 통찰을 보여주며, 특히 초험적 사건화는 수필창작 원리를 정확히 관통하고 수필시학을 이론적으로 구축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우리 수필이론은 들뢰즈의 초험적 사건의 존재론 하에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사건은 현실 속에서 한 번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어 속에서는 다시 태어나며, 다른 맥락과 관계를 맺으며 의미의 층위를 확장한다. 의미는 차이와 반복이라는 들뢰즈철학의 핵심 개념을 관통한다. 따라서 수필은 개인의 체험을 재현하는 글이 아니라, 사건과 언어가 만나는 표면에서 일어나는 생성의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언어를 통해 사건을 고정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의미의 진동과 여운을 열어두는 존재가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수필이 결코 완결된 결론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은 수필은 사건을 분석하거나 교훈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언어 속에서 사건의 여운이 지속될 수 있도록 열린 결말의 리듬을 유지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수필은 탈영토화, 탈코드화를 통한 리좀적 사유를 견인한다고 하겠다.
들뢰즈가 말한 의미는 닫힌 판단이 아니라, ‘지속되는 생성’이다. 초험적 사건화이다. 새로운 배치, 영토와 코드의 재배치라는 아장스망을 통해 우리는 수필의 창작원리를 구축할 수 있다. 즉 수필의 문장은 독자에게 사유의 문을 열어두어야 하며, 사건이 남긴 흔적이 언어의 표면에서 새로운 감각과 사유를 계속 낳는 운동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수필이 철학적 사유와 만나는 자리이자, 문학적 생명력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결국 수필창작의 원리는 세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사건의 표면을 세밀히 관찰하라.(지시) 둘째, 사건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써라.(표명) 셋째, 의미를 말하지 말고, 떠오르게 하라.(의미) 이 세 가지 원리는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를 수필창작의 실제적 방법으로 전환한 것이다. 수필은 그 원리 위에서, 개별적 체험을 넘어서 삶의 사건이 초험적 사건으로 변용되어 언어를 통해 사유의 장으로 변하는 문학적 형식이 된다. 따라서 수필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도, 하나의 사건을 나열하는 일이 아니라, 언어 속에서 다시 세계를 생성하는 일, 즉 “언어로 존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창조 행위” 그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수필을 ‘구성적 비유의 존재론적 의미화’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