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된 세계 이해의 새로운 인식론적 관점
-신유물론의 귀환
인류세(네)파울 크뤼쳔:2000) 시대, 사변적 실재론(프)큉텡 메이야수:2006) 이후
문명의 전환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20세기 후반 이후 철학의 지형은 흔히 ‘언어적 전회’와 ‘상관주의’라는 이름으로 요약된다. 즉 세계에 대한 사유는 언제나 인간의 언어, 의식, 혹은 문화적 틀을 매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철학적 공리를 차지하였다. 존재는 곧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며, 사유되지 않는 ‘세계 자체’는 사변의 영역 바깥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동시에 사유의 지평을 협소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신유물론은 이러한 상관주의적 전통에 대한 반발 속에서 등장한다. 신유물론자들은 인어-언어-의식의 틀에 갇힌 세계 이해를 넘어, 물질 자체의 생동성과 자율성을 사유하려 한다. 물질은 단순히 수동적 배경이나 기호의 지시 대상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을 이끄는 능동적 행위자agent로 이해된다. 즉 세계는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성, 변형, 관계맺기의 힘을 가진 동적 장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신유물론의 귀환은 단순히 ‘실재를 다시 사유한다’는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상관주의적 사고가 배제한 비인간적 차원, 물질적 과정, 우발적 사건의 힘을 복원함으로써 철학적, 과학적, 정치적 사유의 지평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본고는 먼저 상관주의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신유물론이 제시하는 새로운 존재론적 인식론적 가능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Ⅱ. 상관주의 비판
상관주의는 “존재는 오직 사유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이 입장은 칸트 철학 이후 현대철학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세계를 인간-언어-의식의 차원에 철저히 종속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몇 가지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 첫째, 상관주의는 인간적 범주 바깥에서 작동하는 비인간적 과정들을 설명하기 어렵다. 기후 변화, 생명공학, 인공지능 등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상들은 인간적 의미부여와 무관하게 작동하며, 오히려 인간을 역으로 규정하고 변형시킨다. 상관주의적 틀은 이러한 비인간적 샐재의 자율성을 사유하는 데 구조적 제약을 가진다. 둘째, 상관주의는 세계를 ‘언제나-이미-해석된 것’으로만 파악하기 때문에, 사유 이전의 생성과 우발성, 그리고 물질 자체의 힘을 가려 버린다. 그 결과 존재는 고정된 의미망 속에 갇히고, 철학은 세계의 동적인 잠재력을 붙잡지 못한다. 신유물론은 바로 이러한 한계 지점을 돌파하려 한다. 신유물론적 사유는 세계를 단순히 인간의 의미 작용의 산물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창발적인 물질적 사건들의 장으로 파악한다. 물질은 수동의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행위자이며, 인간은 그 속에서 특권적 중심이 아니라 수많은 행위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때 사유는 인간과 비인간, 주체와 객체, 언어와 물질 사이의 얽힘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된다. 따라서 신유물론의 긍정성은 단순히 상관주의의 결여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상상력의 지평을 새로 열어젖히는 데 있다. 그것은 사유를 인간중심적 틀에서 해방시키고, 물질적 생성과 사건의 잠재성을 긍정함으로써, 새로운 인식론적 정치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신유물론의 귀환은 곧 세계와의 새로운 접속 방식, 곧 ‘인간 이후의 사유’에 대한 긍정적 기획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