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 혹리열전 서문(酷吏列傳序) — 《사기(史記)》
공자가 말씀하였다.
“정치와 형벌로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은 형벌을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또한 바르게 된다.”
노자(老子)는 말하였다.
“최고의 덕은 스스로 덕이라 여기지 않으므로 참된 덕이 있고, 낮은 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하므로 참된 덕이 없다.”
또 말하였다.
“법령이 지나치게 많아질수록 도적도 많아진다.”
태사공은 말하였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법령이란 정치에 쓰이는 도구일 뿐이며, 정치가 맑고 흐려지는 근본 원인은 아니다.
옛날 천하의 법망이 일찍이 매우 촘촘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간사함과 거짓됨은 오히려 싹트기 시작하였고, 그 폐단이 극에 이르러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속이고 피하며, 마침내 나라의 기강이 떨쳐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한 때에 관리가 정사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불난 집을 끄고 끓는 물을 퍼내는 것과 같았다.
굳세고 과감하며 엄격하고 냉혹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 책임을 감당하고 일을 성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도덕만을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기 직분을 저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말씀하였다.
“송사를 판결하는 일이라면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지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송사가 아예 없게 만드는 것이다.”
또 《노자》에 이르기를,
“하급의 인물이 도(道)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라고 하였으니,
결코 빈말이 아니다.
한나라가 일어난 뒤에는 모난 것을 깎아 둥글게 만들고, 화려하게 조각한 것을 깎아 소박하게 만들었다.
법망은 너무 느슨하여 큰 배를 삼킬 만한 큰 고기조차 빠져나갈 정도였다.
그러나 관리들의 정치는 날로 발전하였고, 백성들은 간악한 짓에 빠지지 않았으며, 일반 백성들도 편안히 살아갔다.
이로써 살펴보건대,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까닭은 법령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이끄는 근본 정신과 정치의 방향에 있는 것이다.
해설
이 「혹리열전 서문」은 사마천이 혹리(酷吏), 곧 엄격한 법 집행으로 이름난 관리들의 전기를 쓰기 전에 밝힌 서론입니다.
사마천의 논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의 근본은 덕과 예에 있다.
법과 형벌은 보조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세상이 크게 문란해졌을 때는
엄격하고 강력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혹리의 존재도 역사적으로 일정한 역할이 있다.
최선의 정치는
형벌을 많이 쓰는 정치가 아니라,
백성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정치이다.
한나라 초기는
법률은 비교적 느슨했지만,
백성의 생활은 안정되고 사회 질서는 유지되었다.
이는 정치의 성패가 법조문의 숫자가 아니라 정치의 근본 정신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 서문은 단순히 혹리를 찬양하는 글이 아니라,
“법은 필요하지만, 법만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라는 사마천의 정치철학을 밝힌 명문(名文)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