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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피플, 21세기 유목민들을 위한 발라드 -조병준 (업어옴)

작성자푸렁콩|작성시간05.09.04|조회수48 목록 댓글 1
 


휴대폰이 새로 생겼다. | 세상  2005/09/03 10:53 

http://blog.naver.com/joon6078/20016584158

 

조병준

 

후배 성원이가 휴대폰을 주었다.

망가진 핸드폰 이야기를 듣더니 마침 안 쓰는 휴대폰이 있다며

약정 기간이 곧 끝나니 사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고 했다.

목요일 저녁 대학로까지 휴대폰을 들고 와서 건네주었다.

카메라가 달린 슬라이드폰!

이런 첨단 휴대폰을 내가 갖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어제 전화국에 가서 임대폰을 반납하고

개통을 시켰어야 했는데, 하루종일 밍기적거리다 결국 못했다.

휴대폰을 보고 있노라니 옛날에 썼던 글 하나가 기억났다.

2001년이었다. 어느 새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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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피플, 21세기의 유목민들을 위한 발라드>



내게도 휴대전화가 생겼다


졸린 눈을 부비며 허겁지겁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달려갔지만, 이미 크리스는 입국 게이트를 통과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전광판을 보니 싱가폴 항공의 비행기는 예정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일단 족히 5분은 걸린 감동의 재회 포옹을 끝낸 뒤, 늦은 것을 사과했다.


“늦어서 끔찍하게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괜찮아. 그런데 너한테 전화 걸었는데 안 되던데. 왜 그렇지?”

“공중전화로 했어?”

“아니, 내 모바일 폰으로.”

“싱가폴은 GSM이지? 그럼 한국에선 로밍 안 될 거야. 여긴 CDMA거든.”


안개 깔린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크리스가 내게 말했다.

“준, 니가 모바일 폰을 가지게 돼서 얼마나 좋은지 알아? 옛날처럼 자동응답기만 있었다면, 그래서 너하고 바로바로 연락이 안 됐다면, 아마 서울에 못왔을지도 몰라.”


크리스. 싱가폴의 MTV 아시아 본부에서 일하는 그의 삶은 전형적인 모바일 피플의 삶이다. 그의 삶은 오늘은 쿠알라룸푸르, 내일은 방콕, 모레는 호치민 시티, 그 다음날은 자카르타 식으로 이어진다. 싱가폴에서 그를 만날 때도 그의 모바일 폰은 10분이 멀다 하고 울려댔다. 미안해 하는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그때만 해도 내 속은 그리 괜찮지 않았다. 1년에 한 번, 또는 2년에 한 번 겨우 하루나 이틀을 만나는 친구인데, 그 짧은 재회의 시간에도 울려대는 그 모바일 폰이 정말 싫었다.


전세계 최고의 속도로 휴대전화가 보급되었다는 한국에서도 나는 철저히 아웃사이더였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생애에 휴대전화는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자동응답기에 묶여 사는 것만으로도 지겨운데 휴대전화는 절대 절대 노땡큐라고 외쳤다. 독설가로 유명한 어느 후배는 내게 광폭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내가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자기는 남들 다 갖고 있는 휴대전화로 마음 내키면 언제든지 연락하면서, 남들이 연락하려면 룰루랄라 자동응답기만 쫑알대고 연락이 안되니, 그 어찌 이기적인 인간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느냐. 그것이 후배의 비난의 알맹이였다. 그러면 나는 점잖게 대꾸했다. 세상에 휴대전화 없는 멸종위기의 동물이 하나 있으면 세상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던 잘난 인간이 어쩌다가 꼬리를 내리고 깨갱, 휴대전화를 갖게 되었느냐고? 어머니 때문이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사람의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내게도 휴대전화가 생겼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셨다. 중환자실로 옮기며 병원 측에선 가족 중 한사람이 24시간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 머무를 것을 명령했다. 동생이 휴대전화를 들고 왔다. 이제부턴 제발 필요할 때 연락이 될 수 있게 해 달라면서.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친구들이 병원으로 찾아왔을 때 차 한 잔 마시러 보호자 대기실을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솔직히 생애 처음으로 휴대전화의 존재가치를 인정했다. 그렇게 휴대전화가 생긴 덕분에 크리스가 LA로 출장 가는 길에 잠시 서울에 들러 내 얼굴을 보고 갈 수 있게도 되었다. 나도 모바일 피플의 일원이 된 것이다.



21세기 유목민들의 삶


세상은 변한다. 아주 빨리 변한다. 변하는 속도가 꽤나 완만해 내가 참 편하게 여겼던 유럽에서조차, 휴대전화에 관한 한 변화의 속도는 몹시 빨랐다. 1997년에만 해도 유럽의 내 친구들 중 휴대전화를 가진 이는 서너 명에 불과했다. 작년 여름 3년만에 다시 유럽에 갔을 때, 거의 모든 친구들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내 빠듯한 여비에서 엄청난 돈이 친구들과의 연락 비용으로 날라가 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얼굴들을 연락이 안 돼 못보는 불상사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다.


이제 내 주변의 사람들 중 휴대전화를 갖지 않은 사람은 정말 극소수다. 휴대전화가 없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했는지조차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허리춤에, 또는 목덜미에 매달린 휴대전화를 보며 나는 저 아득한 선사시대 화산들이 터져오르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 화산들이 뿜어낸 가스들에서 산소를 포함한 대기가 형성되었다. 휴대전화의 폭발적 확산은 바로 그 화산 폭발과 닮았다.


오늘의 모바일 피플들에게 휴대전화는 제2의 산소다.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모바일 피플의 생애를 산 나조차 배터리가 떨어져 연락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땐 거의 숨이 막히는 듯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24시 편의점에 달려가 천 원을 내고 20분을 기다려 충전된 휴대전화기를 내 손에 쥐었을 때 마치 어항밖에 나왔다 물 속으로 돌아간 금붕어 같았다.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인간 삶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의식주의 지위를 넘보는 4번째 필수요소, 커뮤니케이션. 세탁기조차 거부하는 캘커타 마더 테레사의 집에도 전화기는 놓여 있다. 유선통신의 시대에서 이동통신의 시대로의 전환은 이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유선통신이 정주민의 통신 양식이었다면, 이동통신은 유목민의 통신 양식이다. 세계는 다시 유목민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싱가폴의 크리스가 주말은 서울에서 쉬고, 월요일은 LA에서, 금요일은 뉴욕에서, 그  다음 주에는 런던에서 싱가폴 MTV 아시아 본부와의 연결망을 끊지 않은 채 일할 수 있는 것도 그의 휴대전화가 아니었다면 미션 임파서블이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에르난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둥지를 틀고 캘커타의 고아들을 위한 NGO를 운영한다. 물론 그의 휴대전화는 그가 기금마련을 위해 이탈리아에 가건, TV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캘커타에 가건 언제나 ON 상태다. 마드리드의 왕립 식물원에서 만났던 호주 여행자 스캇은 다시 만나자며 자기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 주었다. 스페인에서 호주로, 다시 호주에서 스페인으로 연결되어야 하니 전화비가 꽤 나올 거라고 미리 경고하면서.


일을 위해서건, 휴식을 위해서건 이제 사람들은 태어난 그 자리에 머물며 평생을 살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유목민의 삶을 선택하고 있다. 그 21세기형 유목민들의 손에는 언제나 휴대전화가 들려 있다. 모바일 폰. 모바일 폰은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의 세계라는 초원을 질주하는 그들의 말(馬)이며, 정보와 사랑의 실시간 교환이라는 사냥감을 획득하는 그들의 창이요 화살이다.



유목민이 말을 멈추는 곳


무조건 좋은 일일까. 휴대전화로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고, 지루한 지하철에서 게임과 문자 메시지 날리기를 즐기고, 앞으로 전개된다는 3세대 이동통신의 분홍빛 미래를 미리 상상하며 전율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일까.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완벽에 가까운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으로 비즈니스를 해결하고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무조건 좋기만 한 일일까. 좋은 일이긴 하다. 다만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하고 싶지 않다.


이동통신이 모바일 피플에게 공간과 시간을 압축할 수 있는 자유를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이동통신은 모바일 피플들에게서 ‘홀로 있을 수 있는 자유’와 ‘느리게 게으름 피울 수 있는 자유’를 받아갔다. 휴대전화가 없었을 때, 원고가 며칠 늦어도 나는 자동응답기를 켜놓고 편집자들의 독촉 전화를 피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 초보인 나는 스위치를 꺼놓을 용기가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개길 수 없다.


모바일 피플답게 크리스의 서울 체류는 아주 짧았다. 겨우 1박 2일. 크리스가 저녁 비행기를 타고 LA로 날아가야 했던 일요일 오후, 나는 크리스를 데리고 수도원으로 갔다. 야트막한 야산들로 빙 둘러싸인 그린벨트 안에 자리잡은 그 수도원에선 희한하게도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우리는 신부님들과 끊기지 않는 대화를 나눴고, 크리스는 수도원의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 한 시간이 넘게 혼자 기도를 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수도원을 떠나 버스를 타자 바로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크리스의 아내였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다시 꾸리며 크리스는 제일 먼저 자기 휴대전화의 충전부터 챙겼다. 미국에선 로밍이 된다며 충전이 완료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던 크리스의 표정은 묘했다. 잠시 후 크리스의 입에서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준, 짧았지만 서울에서의 1박 2일은 정말 행복했어. 한국에서 내 모바일 폰이 로밍 안 된 게 얼마나 좋은 일이었는지 이제 알겠어. 수도원에서 내가 한 시간 동안이나 기도를 한 줄은 정말 몰랐어...”


유목민들도 가끔은 한곳에 천막을 쳐야 한다. 말 위에서만 삶을 영위할 수는 없으니까. 모바일 피플들도 가끔은 모바일 폰을 꺼야 할지 모른다. 적어도 친구를 만날 땐 모바일 폰을 끄고 대신 모닥불을 피우고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모닥불을 바라보며 모바일 폰으로 내뱉던 랩 송 대신 느린 발라드를 부르거나, 아주 편안한 침묵의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그런 순간들도 있다면, 이 유목민의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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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불영 | 작성시간 05.09.12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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