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면(冬眠)
1
집 주위를 쏘다니던 수많은 도마뱀도, 잡풀 속을 옆으로 기던 능글맞은 뱀들도
요 몇 주 하나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친구는 겨울잠 자러 땅 밑으로 이사 간 것도
몰랐느냐며 놀린다. 악어도 개구리도 거북이도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심장 박동을
일 분에 다섯 번으로 줄여버린 개구리의 총명함을 설명한다. 곰이나 다람쥐나 오소
리보다 파충류나 양서류의 동면이 더 고급스럽단다.
아래층과 위층,
지상과 지하를
조화롭게 오르내리는
지혜로운 변신,
낮에 일하고
밤에 잠자듯
리듬을 타고
여름에는 눈뜬 채 분주히 살고
겨울에는 눈 감고 천천히 산다.
(천천히 잘 사시는 아버지)
2
사계절을 밤낮없이 지상만 누벼
세상의 긴 이치를 배우지 못한
땅 위와 땅 밑의 동격을 의심하는 머리,
어떤 동면은 너무 길어져, 때로
가진 살과 뼈까지 잠시 주기도 하지만
잘들 지내라, 낙엽 날리고 눈발 세차진다.
겸손하고 살가운 땅의 온기가 그립다.
나도 오랜만에 깊은 잠 자고 싶다.
미지의 내년 봄쯤에 잠 깨어나면
불안한 몸의 한기도 다 벗겨지고
향기 진한 내 꽃이 기다리고 있으리.
3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말을 나누던 시대가 있었다.
함께 웃던 시대가 있었다.
돌아보면 그지없이 하찮은 일상을
나는 바쁘다며 앞만 보고 달렸다.
겨울이 되어 모두 혼자가 되었다.
아무리 눈여겨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운 것은 어디서 동면에 들었는가.
잘 자고 있니?
수척하고 아쉬운 휴식,
숨도 쉬지 않고
꿈만 꾸는 너.
네가 참 보고 싶은데
지상이 깨어나질 않는다.
잘 자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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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