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대상 전법에 대한 단상
진성 이재홍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후 다섯 고행자를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전법하고 제도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전법과 교법 정리는 반열반 하실 때까지 45년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고행자가 있던 녹야원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친 아지위까 교도 우빠까에 대한 전법은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환한 모습을 찬탄하며 거듭 묻는 벌거벗은 우빠까에게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번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나와 같은 승리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나는 모든 사악한 세력에 대항하여 승리하였습니다. 내가 바로 승리자입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이를 들은 우빠까는 “그럴지도 모르지요.”하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우빠까를 두고 인연 없는 중생은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경전의 이 구절은 전법의 어려움을 여과 없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직업의 특성상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전법의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국제전기전자공학회의 석학회원 선정위원회 회의에서 서류심사 대상자 중에 제출한 업적 내용이 다소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논의가 식사 자리에서 나쁜 사람도 구제할 수 있는가라는 토론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무신론자들이 여럿 있었고 불교도는 나 혼자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제도하신 일화를 소개하고 이런 극단적인 경우도 구제했다고 했더니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습니다. 다수의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살인자의 구제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사십 대 초에 처음 만난 일본인 A 교수는 이십여 년간 매년 두어 차례 학술회의에서 만났습니다. A 교수는 자기 집에도 초대했고 내가 국제학술대회 창설안을 발표했을 때는 일본측 대표의 일인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선친이 다니셨던 중학교와 대학교를 찾아갔을 때는 고맙게도 길 안내를 자청하고 직접 운전까지 해주었습니다. 내가 조계종 국제포교사가 되었다고 했더니 그다음 만났을 때 A 교수는 그동안 미루어 왔던 불교 공부를 시작했고 아미타불에서 ‘아미타’가 빛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했습니다. 불교에 대해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본업을 핑계로 후일로 미루었는데 결국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8년 위인 A교수가 먼저 정년 퇴임하고는 지난 십여 년간 만나지 못했는데 앞으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습니다. 고향에서 낚시를 즐긴다는데 하지 않도록 말려서 살업(殺業) 짓는 것을 막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 아침 집 부근 전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오십 대 후반의 여성이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중국어로 명동으로 가려면 어디서 타야 하는지 묻고 있었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헤매는 모습이 참 딱해 보여서 도와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법요식에 늦지 않게 도착하려고 때마침 들어온 열차로 떠나오고 말았습니다. 길을 가르쳐 주면서 가는 길에 조계사에도 가보라고 권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그냥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불자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법요식 내내 문득문득 들었습니다.
재직 중 잦았던 해외 출장에서 규정에 따라 공항에서 호텔로, 회의 후에는 바로 호텔에서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정년퇴임 후에는 이러한 제약이 없어졌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회의를 마친 후 큰마음 먹고 혼자 남미 파타고니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달의 계곡 관광에 열 명이 한 차로 이동했습니다. 출발 한 시간 후 갑자기 맞은편 하늘이 시커메지고 거듭 벼락이 떨어져서 관광을 도중에 중단해야 했습니다. 운전기사 겸 가이드는 예약금 대부분을 여행사가 반환해 줄 것이라고 안심시킨 후 전망 좋은 언덕에 가서 파티를 하자고 제안하여 모두 동의했습니다. 일행은 주로 영국, 독일, 미국에서 온 삼십 대와 일부 이십 대인 배낭여행자들이었습니다. 서로 본업을 묻지도 밝히지도 않고 지나온 여행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특이했는데 나도 대화에 동참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대뜸 한국은 꼭 가봐야 할 나라라며 K-팝과 K-드라마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팝과 드라마 외에도 산사와 명상과 같은 고유문화가 있다고 소개하고 방문 기회에 템플스테이를 통해 직접 체험해보도록 권했습니다. 이 중 두 명은 참선과 템플스테이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는데 아직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것을 보고 참선의 실질적인 이익을 중심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출발하는 호수 빙하 관광에 동참했는데 육십 대 초반의 칠레인 연금생활자 두 부부와 동석하게 되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네 사람 중 남성 한 명만 영어 소통이 가능했습니다. 화제가 종교에 이르러 천주교 교리에서는 천당이든 지옥이든 한번 가면 끝이지만 불교에서는 둘 다 그 수명이 다하면 다시 태어난다고 했더니 흥미 있어 했습니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고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연기에 따라 윤회한다고 했더니 다시 태어난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관심을 보였습니다. 의도적인 생각, 말과 행동이 업이 되어 조건을 만나 발현하는데, 이번 생과 다음 생의 행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 궁극적 행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설명했습니다. 열 한 시간의 관광 중에 두 시간가량 나눈 간헐적 대화에서 매 순간 깨어있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데에 양 종교의 접점이 있음을 서로 확인했습니다. 그분은 불교에 대해 처음에는 지적 호기심을 나중에는 진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헤어질 때는 놀랍게도 “이번 생과 다음 생에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작별인사를 하기에 같은 말로 화답했습니다.
사람은 기억을 통해서 나라고 하는 존재의 연속성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나라고 하는 존재, 즉 색수상행식의 오온은 무상하여 매 순간 끊임없이 변하다 보니 앞의 사례에서처럼 때때로 아쉬움을 남길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불광법회는 전법오서에서 전법이 지상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법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전법의 대상인 사람 또한 색수상행식이 매 순간 끊임없이 변합니다. 이래서 대상의 근기에 맞추어 전법 하기란 마치 실오리로 움직이는 바늘귀를 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서 전법 하는 것은 나는 ‘바담풍’ 하더라도 너는 ‘바람풍’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전법을 미루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전법에 힘써야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