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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에세이

여자의 마음 갈대라 했던가

작성자계정/김화영|작성시간21.01.16|조회수138 목록 댓글 4

몇 년 전 늦가을 순천만 갈대밭을 다녀왔다. 안내판에는 30여 년의 세월을 거쳐 갈대밭을 만들었다 한다. 십오만 평보다 더 큰 면적이라 하고 세계 5대 연안 습지이며 백 사십여 종의 철새 도래지라 한다. 갈대는 짙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고 갈꽃은 보랏빛 옷을 벗은 갈색으로 홀씨가 바람에 날릴 준비가 끝났나 보다. 대나무와 유사한 풀이어서 갈대라 했다던가!

 

바람에 흔들려 줄기와 잎들이 부딪치며 서걱대는 외롭고 고독한 멜로디에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박일남 가수의 노래 ‘갈대의 순정’을 다시 가본다. 갈대같이 가냘픈 여인의 흔들리는 사랑이라 했지만, 사나이 순정도 흔들리기는 매한가지라는 고백은 웃자란 갈대의 숲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늘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였을까?

 

해가 저물 무렵 용산 전망대에서 보는 저녁노을은 황홀 그 자체였다.

짙은 주황색 노을을 배경으로 알알이 수놓는 철새들의 향연과 적황색 뭉게구름 무리의 틈으로

살짝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해님의 숨바꼭질 속에서 찬란히 발하는 빛줄기들이 크나큰 부채처럼 펼쳐지는 장관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가슴속에 길이 남을 것이다.

 

‘아 아 으악새(억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고복수 씨의 노래 ‘짝사랑’의 첫음절이다. 단풍이 져갈 무렵이면 스산한 분위기는 짝사랑이 있건 없건 휘감기는 외로움과 가슴을 파고드는 고독 속에 나도 몰래 ‘짝사랑’의 가요가 목울대를 울리면 마음은 벌써 저편 노을 속에서 헤매고 뛰는 심장의 고동도 그곳으로 다름질한다.

 

작년 십일월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민둥산 억새 구경을 다녀왔다.

해발 일천백십구 미터 정상에 오르니 주위의 억새밭은 은빛으로 물결치고 있었고 하늘과 맞닿은 신록의 산들은 가까이 올수록 오묘한 조각품같이 함초롬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억새들은 금색 옷으로 갈아입어 출렁이는 황금 여울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니 서녘 하늘 붉은 노을이 손짓하며 나를 부른다.

 

억새와 달뿌리풀과 갈대는 같은 종이면서도 분류 이름 따라 각각의 특징이 있고 자라는 곳도 각기 다르다. 달뿌리풀은 개울가에 번성하고 갈대는 강과 늪처럼 풍부한 물이 있는 곳에 서식 하지만 억새는 산이나 들에 척박한 곳에도 잘 자라고 있다.

언 듯 보면 그게 그것처럼 보여서 억새나 갈대나 같이 영글며 흔들리기는 매한가지겠지만 봄 여름 성장기를 끝내고 가을까지 여무는 씨앗들은 바람을 매개로 하여 수분이 이루어지는 꽃잎이 없는 풍매화로 피는, 아름답지도 않고 꿀샘과 향기가 없는 대신 꽃가루 양이 많고 바람에 잘 날린다. 곤충을 유혹할 필요가 없으니 독특한 향기나 달콤한 꿀의 꽃을 피울 필요가 없겠지. 종족 번식을 위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모진 바람에 떨면서 흩뿌리고 말라 죽는 억척스러움을 보면서 우리네 인생도 갈대나 억새와 같아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생명의 마지막까지 자식들의 안위를 위하여 노심초사함의 닮은꼴이 늪지서부터 강가로 저 높은 산 위까지 연이은 삶의 궤적을 밟으면서 선현들이 사셨던 험한 삶에 고개가 숙어진다.

 

지나온 세월을 되돌려보면 지지리도 못살았던 그 시절 시부모 모시고 일 하랴 살림하랴 애들 키우랴 남편비위 맞추랴 빈곤에묻혀 척박한곳에서 향기롭고 아름다운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살아온 여인들의 인생, 가부장과 남존여비의 틀 속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몹씨몰아치는 바람을 견디며 살아오신 할머니 어머니의 생은 풍족함 속에서 살아온 여린 갈대가 아니고, 척박한 목마름을 참으면서 살아내신 억새같은 인생이 아니셨나 생각에 잠긴다.

바람불어 흔들리는 억새밭, 할머니 영혼의 너울이 서걱이고 어머니 흐느낌처럼 날리는 홀씨는 옛날에 그려셨듯 자식 사랑의 현재진행을 보면서 먹먹한 가슴속에 숙연함이 몰려왔다.

 

부모곁을떠나 내몰려온 삶의 현장속에서 무수한 비 바람속에 쓸어지고 자빠지면서도 저 풀들처럼 고난과 인내의 틈새속에서도 희망을 움켜쥐고 달려온 인생이 황혼속 억새처럼 깡말라 백발된 머리와 세월에 할퀸 상흔 투성이가 억새와 한몸되어 붉은 노을속을 서성이며 열심히 살았고 후회없이 살았노라 미련도 외로움도 저 억새밭 소나무에 묻고서 노을따라 하산을 재촉하는 걸음속엔 할머니 어머니도 함께하는 애잔한 마음에 그 발길도 가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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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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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착각의 시학 | 작성시간 21.01.17 따듯한 마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계정/김화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1.18 고맙습니다.
    앞이 보이지않게 눈 꽃이
    부는 바람결에 흠뻑 휩쓸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기쁜시간 되시구요!
  • 작성자김무영 | 작성시간 21.01.18 여행은 참 좋은 것입니다.
    예전엔 가난한 자는 아픔으로, 부자는 여행으로 생을 배운다 했을 정도였으니깐요.
    어려움도 겪고, 새로운 환경도 만나고
    낯선 사람들과 가까이해지는 기회를 얻고
    그래서 추억이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추억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까요.
    여행을 하면서 수시로 스치는 경관들에서
    지나온 내 삶을 그려보기도 하구요.
    순해지고 더 다정해지고
    은혜를 생각하는 시간도 되구요.
  • 답댓글 작성자계정/김화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1.18 억새와 석양과 한 몸 되었던 시간 속에서
    노을은 잠잠히 빛을 잃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무영 선생님
    좋은하루 여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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