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2:36절 뒷부분을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은 요1:1절에서 요1:18절까지,
그다음 요1:19절 이후부터 요12:36절의 전반부까지 말씀이 계속되다가
요12:36절 후반부부터는 또 새로운 국면이 시작이 됩니다.
여기에서 요한복음은 또 하나의 칸막이가 있습니다.
36절과 37절 사이에 소절 표시가 있습니다. 36절과 37절 사이에
“빛의 아들이 되리라”하신 다음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하시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존재가 세상의 빛으로
계시다가 세상에는 숨으시고 이제 제자들에게만 보이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36절 한절 사이에서 순간 이동을 하신 주님의 정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4-48)
이제 주님은 숨으시고 무엇만 나타나죠? 드디어 그 분의 말씀만 나타납니다.
그 다음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12:49)
그리고 요12:50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이를 벗어나는 것이 미혹이며 거짓이며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됩니다.
영생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 영생을 평면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 영생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영생 안에서 진리로 거룩하게 되고 거룩함으로 영광에 이르고 그 영광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어 온전함을 이루어 사랑에 나아가는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요17장 참조)
사과 씨 한 알 안에 사과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씨앗으로 우리에게 왔습니다.
사과 씨가 땅에 떨어져 썩으면 사과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사과 씨 하나에 사과나무가 하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요소가 다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영생이신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모든 유전인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모든 분깃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인생의
전 밑천이라 여호와는 나의 산업이라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인생의 총 소득이라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영원한 분깃을 지킨다'고 노래합니다(시16:5)
다윗은 바로 이 영생을 노래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제 알게 됩니다.
“여호와만이 인생에 총 자산입니다. 주님만이, 성령님만이 내 밑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자랑입니다 그리고 나의 퇴직금이며 노후보장이며
영원한 장래의 기업입니다” 이게 바로 나의 노래 나의 고백 나의 찬양입니다.
영생이신 그리스도만이 내가 하는 사역의 전체 총 소득입니다.
주의 종들에게는 그 일을 했기 때문에 땅에 것을 잔뜩 주셨다 그건 아닙니다.
그건 그 사람이 재산을 모으는 재주를 부렸을 뿐입니다. 재 태크 일뿐입니다.
사도바울 보세요. 죽도록 고생하고 두들겨 맞고 얻어터지고
굶고 감옥에 갇히고 사역을 한 후에 노년에 지중해 연안에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을 짓고 잘 먹고 잘 살았더라가 아닙니다.
그는 공생애가 끝나고 이제 로마의 법정에 서는 순간만 남긴 처지에도
이태동안 셋집에서 살면서 자기에게 오는 자를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다가(행28:30) 어디로 가버렸는지 성경에서
그가 쓴 서신의 말씀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게 바울의 역사적인 퇴임식입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을 얻었습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주의 종들은 주의 일을 하고 난 다음에 주님만 얻습니다. 그게 평생 소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자산이 되면 우리는 드디어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삶 속에서 자신의 이득이 되면 그 이상 좋을 게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성이 내가 한 일의 상으로 계속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한한 영광과
그 풍성함을 상으로만 받고 또 받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복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주의 일을 하면서 사랑으로 완성된 주의 종이 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세상에 부자가 되고 싶은가요?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면서 사랑의
화신이 되어 가는 것보다 더 큰 인생의 소득이 있다면 그건 미혹의 사람입니다.
그건 하나님을 자신에게 이로운 말씀만 하시는 우상으로 섬기거나 영생을
벗어나서 거짓 선지자들에게 놀아나는 장난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과거 어떤 목사 사모님이 우스운 말로 나는 당신을 당신 덩치만한
돈으로 바꿨으면 좋겠어 하고 말한 적이 있는데 물론 이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절대 아닙니다. 다윗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또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 기도하고,
죽을 고생을 수도 없이 하고, 다른 사람한테 말로 다 못하는 굴욕을 맛보는
다윗의 인생의 총 보상금은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실용주의 사회가 되어 사람들이
대용품을 바라며 주의 일을 하고, 그 대용품으로 삯을 받기도 하니까
이 자본주의 사회의 풍속이 그리스도인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버렸습니다.
주의 일 하니까 이런 대접 받더라 주의 일 하다보니까 부하게 되더라 타령이죠.
이젠 기독교인들 속에 이런 사고가 아예 인박히듯 골수에 박혀버렸습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쓰시는 사람일수록 대용품을 주시지 않습니다.
절대로 대용품을 주시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주님만 구하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그러면 당신은 날 때부터 그랬느냐 물으시겠죠?
아닙니다. 아직도 제게는 자본주의의 누룩이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건 하고 나면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이 아직도 있습니다.
아직도 나는 영광을 받고자 하는 구석이 남아 있음을 알고 고개를 젖습니다
‘여호와만이 나의 산업이시요. 내 잔의 소득이십니다. 나의 분깃입니다’
이렇게 써서 붙여놓아도 잘 안 됩니다. 그만큼 자본주의의 누룩이 무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많은 연단과 간섭과 인도를 받으면서 주님이 이걸 요구하시는구나
주님께서 항상 자신하고 나하고 맞바꾸자고 하시는구나 물물교환하자는 뜻이구나.
똥 걸레 같은 나를 주님과 맞바꾸자는 주님의 사랑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의 십자가의 도로 물물교환하자고 하십니다.
'내가 나를 너에게 줄테니까 너를 내게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못난 나의
자아는 자신이 살아 있어 안 내놓고 한 알 그대로 있기를 원합니다. 한 알 그대로...
그러나 주님은 우리는 기어이 삼층에서 떨어진 메주 덩어리로 만들어서라도
‘이래도 안 바꿀래?’ 하십니다. 성령 충만이 뭡니까? 내가 주님과 완전히
맞바꾸는 것 아닙니까? 세례가 뭡니까? 주님과 바꾸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할 수만 있으면 안 바꾸려고 꽁무니를 뺍니다.
바꾸면 성령충만이요. 바꾸면 그리스도의 충만인데 안 바꾸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내게 필요한 인생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아직도 지난 날의 한풀이를 좀 해야 되겠다는 각오입니다. 그러다가 거짓 선지자에게
걸려들면 영생의 길을 떠난 음녀의 길 배신의 길 배도의 길을 걷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고멜과 같이 만신창이가 되어 울며불며 제 자리로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세례(침례)로 기꺼이 바꿔야만 합니다. 주님도 바꾸셨습니다.
주님도 인자의 영광으로 바꾸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우셨습니다. “내가 그 영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정말로 십자가의 죽음을,
저 모욕과 치욕과 고통의 십자가를 져야 되는 겁니까? 그래야만 창세전의
영광이 내게 오는 겁니까?" 아버지는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그 창세전의 영광으로 자신을 바꾼다는 대답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집니다. 한 알 그대로 냇가의 조약돌처럼 반질거리도록 하지 말고
부디 십자가 앞에서 항상 주님과 자신을 물물교환으로 맞바꾸기를 잘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도로 말미암아 자신을 팔아 성령님을 사들이는 물물교환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5:5)의 뜻이며,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요,
바울이 말한 날마다 죽노라는 말씀의 참 뜻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항상 가득 채우시고 강하게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