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3 장 5 절 나를 위한 십자가( 1 )
나를 위한 십자가
하나님의 말씀 : 이사야 53 장 5 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서 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삶의 여정 가운데 깃들어 있는 고난을 당할 때마다 기피하기 위해 분주하게 활동한다고 본다. 성도들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고난주일은 부활주일 못지않게 중요한 절기이다. 부활은 고난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기에 부활의 영광도 누리신 역사이다.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라면 우리는 고난주일을 어떤 절기보다도 귀하고 소중하게 지내야 하겠다. 왜냐하면 고난 후에 영광이기 때문이다.
* 벧전 4: 13, 16 -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본 론
1]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철저하게 이 세상 사람들이 지은 죄 때문에 십자가를 대신 지신 역사다.
죄를 지은 우리가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죄를 지은 채로 죽게 되면 용서함을 받지 못하고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불못에 들어가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죄의 삯이 사망이다.
* 롬 5: 12 -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하늘의 지혜를 주셨으니 바로 제사제도다.
히브리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제물(소, 양, 염소)에게 자신의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 짐승을 잡아 피를 제단에 뿌려 성결함을 받는 역사다.
그러나 그 방법도 완전하지 못했다.
말라기 1장과 같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소, 양, 염소를 최상의 것으로 드리지 못하고 병든 것, 눈먼 것으로 드려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는 것조차 외면하시고 싶은 심정으로 제단의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완전한 제사법을 폐지하시고 완전한 역사를 주셨다.
* 롬 8: 3-9 -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예수님이 율법시대에 어린 양의 실체로 오신 역사요, 어린 양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에게 우리의 죄를 다 담당시키셨다.
* 사 53: 6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요 1: 29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사람들은 자신의 죗값으로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어린 양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셔서 그 육신 되신 예수님에게 인류가 짖는 모든 죄를 씌우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셨으므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게 된 축복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철저하게 나의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피를 흘리신 고난의 역사인 것이다.
* 사 55: 5 -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우리의 허물은 빽빽한 구름 같다고 말씀하고 있다.
* 사 44: 21-23 -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상하심은 우리의 죄악의 인함이다. 가시면류관을 쓰실 때, 못이 박히실 때 상함을 입으셨다. 예수님의 징계를 받음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교제가 두절 되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여러 가지 징계를 사람들로부터 받았지만, 그 징계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유지시켜주시고 교통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시기 위하여 고난의 역사를 징계로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은 우리에게 나음을 입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 역사가 헛되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의 모든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입게 하시고 모든 질고로부터 치료함을 주시기 위함이다.
지금도 그 채찍질의 역사가 유효하여서 우리가 받은 마음의 상처도 치료해주시고, 영적인 병이나 육적인 병도 치료해주셔서 어떠한 질병도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셨으므로 우리에게는 깨끗한 치료의 역사를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받으신 모든 고난은 철저하게 나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로 인한 것이지 예수님으로 인한 고난이 아니었음을 알고 믿어야 하겠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받으신 고난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받으신 고난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흔적을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하며, 나의 몸에 새기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다.
* 갈 5: 24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갈 6: 14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2] 흰옷 입은 무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 계 7: 9-14 -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흰옷 입은 무리는 계 7: 1-4같이 하나님의 인 맞은 종들이 주의 재림 전 삼년반 동안 다시 예언을 외칠 때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하고 구원받아 나오는 역사다.
다시 예언은 주의 재림을 알리는 역사임과 동시에 전 세계에 마지막으로 주시는 회개의 역사다. 본문은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피를 말씀한다.
* 히 9: 11-15 -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흰옷 입은 무리들을 구원하실 때 다시 십자가를 지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흰옷 입은 무리들에게도 2천 년 전에 지신 십자가의 고난의 법이 적용되게 하셔서 그들에게도 흰옷을 입게 하시는 축복이다.
십자가의 피 흘리시는 고난은 한 번에 마쳐진다.
그 한 번의 고난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마지막 환난에서 나오는 흰옷 입은 무리들도 십자가 고난의 진리가 적용이 되어 그들도 환난으로부터 구원받아 나오는 역사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죄 가운데서 영혼 구원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서 주신 축복이고, 앞으로 장차 있게 될 7년 대환난 가운데 받게 될 영육구원의 축복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서만 얻어지는 축복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세대를 초월하여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는 최상의 고난이며 최고로 값진 고난으로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고난의 역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온다고 히브리기자는 증언하고 있다. 장래의 일이 무엇인가? 주님이 오시는 재림의 때에 일어 날 장래의 일은 흰옷 입은 무리들을 당신의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서 오신다.
* 계 19: 7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혼인 기약'이란 '때를 정하여 약속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이르렀고'라는 동사에 의미를 부여하여야 한다. '이르렀고(엘덴, ἦλθεν)'는 '오다(to come)'를 의미하는 '에르코마이(ἔρχομαι)'의 예언적 부정과거 능동태로써 '드디어 이르렀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모형적으로 복음을 받아드리는 단계를 암시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신부는 과거에 약혼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약혼의 단계가 없으면 절대로 결혼식에 참예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중매자(仲媒者)
* 고후 11: 2,3 -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은 신부의 친구 중에 신부의 순결을 보증하는 역할이 있다.
사도 바울은 이 역할을 배경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정결한 신부로 성장시켜 남편 되는 신랑 예수 그리스도에게 중매하는 역할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맡은 종의 입장에서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은 성도들을 정결한 신부로 단장하여 주님과 결혼시키는 중매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2) 결혼 대상자의 선정
* 창 24: 4 -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이스라엘이나 우리나라의 옛 결혼 풍습은 신랑의 신붓감을 본인이 결정하여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의 아버지가 신부의 아버지와의 결정으로 이루어져 왔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이삭의 신붓감을 택하는 과정에 늙은 종을 택하여 아브라함의 고향, 내 족속에게 가서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택하도록 지시하였다.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형적 의미 ⇨ 아브라함 ⇨ 독자 이 삭 ⇨ 늙은 종 ⇨ 리브가
원형적 의미 ⇨ 하 나 님 ⇨ 예수 그리스도 ⇨ 주의 종 ⇨ 성 도 로 정리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모형이라면,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늙은 종은 오늘날 교회의 목사를 의미하며 리브가는 성도의 모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삭의 결혼이 그의 뜻대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아브라함에 의하여 결정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결혼도 우리의 뜻대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취됨을 알아야 한다.
* 잠 8: 22,23 -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 롬 8: 29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엡 1: 4,5 -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3) 신약적 의미
* 요 3: 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 이와 같으므로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약혼 관계를 상기시켜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올 동안 믿음으로 단장하여 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4) 빙폐(聘弊)의 단계
* 계 19: 7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① 용어의 의미
* 출 22: 16 - 사람이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납폐금(納幣金 = 빙폐)을 주고 아내로 삼을 것이요
빙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마하르(דחַמָ)는 '값을 치루고 얻다'는 뜻이 있다. 이 단어는 '(아내를 얻는데 쓰이는)구입가격'을 의미하는 모하르( )에서 유래 되었다. 약혼을 하게 되면 신랑과 신부는 예물을 주고, 받으며 빙폐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렇다면 혼인 잔치의 신랑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초림의 십자가에서 희생을 치르신 어린 양으로 표현했을까? 구약의 제사에서 어린 양은 희생 제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빙폐를 보내듯이 신약 교회의 성도들을 신부로 맡기 위해서는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빙폐를 지불하셨음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② 구약의 빙폐
혼인 전에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보내는 결혼지참금의 내역은 구약의 기록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 빙폐를 의미하는 마하르
* 출 22: 16,17 - 16 사람이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납폐금(納幣金)을 주고 아내로 삼을 것이요 17 만일 처녀의 아버지가 딸을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납폐금으로 돈을 낼지니라.
율법은 처녀를 유혹하였을 경우에는 반드시 그 처녀와 결혼함으로 그것을 보상하고 그 부친에게 결혼 지참금을 주어 변상하도록 하였다.
⒝ 결혼비, 신부값을 의미하는 모하르
* 창 34: 12 -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한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흠모하여 야곱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안한 말이다.
* 삼상 18: 25 -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것도 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
사울이 다윗을 사위로 맞이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사울이 아무 것도 원하지 아니한다는 말 속에 결혼 예물이 통용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윗이 미갈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블레셋과 싸워 이겼듯이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아내로 삼기 위해 생명까지 바쳐 사탄과 그 무리들과 싸우시며 십자가의 희생으로 승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