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49. 예수님 침묵?
마가복음 15:1~5)-권오진 목사
마가복음 15장 내용이 교회력과 맞는 말씀이기에 순서대로 강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 하나를 통해서도 <참 감사하다>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14장을 살펴보면서 성금요일 시간표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 성 금요일 시간표 】 ① 겟세마네의 기도, 잡히심 (밤 12시~새벽 2시경) ② 안나스의 심문 (새벽 2~3시경) ③ 가야바의 심문, 헤롯 심문, 공회의 정죄 (새벽 3~6시경) ④ 빌라도의 판결 (오전 6시~7시경)
오늘 본문은 성 금요일 새벽 6시 전후에 있던 일입니다. 1절을 보세요.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1절) 새벽 3시경부터 소집된 산헤드린 공회가 이제 새벽 6시가 되었을 때 최종 결론을 내립니다. 결정내용은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사형에 처한다.> 였습니다. 문제는 사형이라고 정죄는 할 수 있지만, 사형선고를 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은 <로마 총독>에게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총독은 신앙고백에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였습니다. 빌라도는 주후 26년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 유대 지역의 제5대 총독으로 임명되어 주후 36년까지 다스렸습니다. 빌라도의 본군은 가이샤라에 주둔해 있었는데, 당시 주둔군은 약 120명의 기병대와 2,500명-3,000명의 보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평소에 총독은 가이사랴에 머물다가, 유월절이나 특별한 절기에는 예루살렘의 치안을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안토니아 요새에 와 있었습니다.
그 요새에 분견대를 둔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는 인허를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총독 빌라도에게로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고소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산헤드린의 구체적인 고발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누가복음에는 공회의 고발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누가복음 23: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이 말씀에 의하면 고소하는 내용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예수님께서 백성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예수님께서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자칭 왕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빌라도에게 고소한 내용을 보면 자신들이 내렸던 “신성 모독죄”가 없습니다. 그들이 고소한 죄명은 <반란음모죄> 즉 정치범으로 예수님을 고소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다른 세 가지 내용으로 고소했을까요? 당시 로마는 –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그 지역에 맞는 정책을 썼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자치권을 허용했습니다. =
이스라엘만 해도 그렇습니다. ㉠ 왕을 인정했습니다. / ㉡ 산헤드린 공회도 인정했습니다. ㉢ 그들의 종교도 인정했습니다. ※ 일본이 우리나라를 36년 동안 강제점령할 때와는 달랐습니다. 일본은 철저히 우리나라 종교, 언어, 관습을 일본화시키려고 했습니다.
로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종교적인 문제인, 신성모독죄>로 고소해서는 빌라도에게 사형 인허를 허락받을 수 없으니 <정치적인 문제>로 둔갑을 시켜서 예수가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금하였으며, 자신을 왕 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 다닌다” 라고 고소한 것입니다. 빌라도로서는 유대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인 산헤드린에서 아침부터 찾아와 예수를 고소하니 <심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어떻게 심문하는지 3-5절부터 보세요.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3-5절) 대제사장이 누가복음에서 여러 가지로 고발했다는 것입니다. 3가지 외에도 여러 죄목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대답하지 않고, 침묵합니다. 예수님이 침묵하시자 5절 하반절에 보면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라고 반응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변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정치인, 경제인이나, 일반 사람들의 경우 잘못을 저질러 <법원에서 조사를 받게 되면> 어떻게든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많은 돈을 주면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죄를 가진 사람들의 본성입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자신이 실수하거나, 잘못했으면 “내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어떻게든 변명을 하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생명의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침묵하셨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질문에는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2절 보세요. 2절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14장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당할 때와 같은 상황이지요.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그대가 그리스도냐” 물었을 때,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 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부연해서 <십자가 사역 후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실 것과,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 앞에서도 그렇게 대처했습니다.
본문 2절을 새 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요?” 그러자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왕이란 개념은 빌라도와 예수님이 말하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지금 빌라도의 질문은 정치적인 왕을 말했지만, 예수는 영적인 면에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심을 말한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 자신이 이스라엘의 영적인 왕이라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오늘은 이 본문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부분을 이미 생각했으니 제쳐놓고, 예수님이 침묵하시는 부분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왜 예수님은 여러 가지 고소에 <침묵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침묵하신 이유는? 모든 평가를 하나님께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가 질문해 볼 테니 답을 해 보세요.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여러분 자신입니까?> 인생을 인도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여러분 자신입니까?> 삶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까? 여러분 생각입니까?> 성경을 보세요. 신앙이 깊어질수록 사람의 평가, 세상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을 예를 들어볼까요? 그가 쓴 마지막 서신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바울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철저하게 <예수님께 둡니다.> 예수님만 인정하면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순교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판결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의 판결에도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의로우신 재판장은 하나님이심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조금만 억울해도 누군가에게 달려가 호소하고 싶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이 침묵하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나는 <땅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최종평가는 하나님이 하신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것이다>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되시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