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요한복음강해17-믿음 인격적

작성자(一麥.)|작성시간26.06.17|조회수48 목록 댓글 3

요한복음 강해 (17) - 믿음은 인격적 관계입니다
요한복음 2:23-25 / 김형익 목사

말씀내용
두 주 전에 우리가 함께 살펴본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에서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1. 또 한 그룹의 사람들: 예수님을 믿었지만 예수님이 믿지 않은 사람들
23절에 보면 이 유월절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계셨는데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사람들이 이들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그 이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은 ‘그러나’입니다. ‘믿었으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믿었으나 주님께서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않으셨습니다. 헬라어에서 ‘의탁하다’라는 단어는 23절에 ‘믿었다’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믿었지만 주님은 그들을 믿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친히 사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람에 대해서 누군가로부터 배우셔야 했거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학을 공부하셔야 할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창조주로서 사람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A. 표적을 보고 믿었지만, 표적이 가리키는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 사람들은 표적을 보고 믿었지만, 그 표적이 가리키는 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대한 분명한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함으로써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로 나아가는데 실패한 사람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B. 일시적인 신앙이었다(요 6:14~15).
그러므로 이들의 신앙은 일시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특별히 이런 경우를 또 소개하고 있는데,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은 표적을 경험하고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리라 한 그 선지자임을 인정하고 에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요 6:14~15).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믿음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주님을 믿었던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

2. 참된 믿음이 아닌 것들
이 사람들의 경우에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무엇이 참된 믿음이 아닌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A. 한 때에만 믿는 믿음(히 6:4~6; 요일 2:18~19): 믿음은 한 때 보여준 믿음의 열정과 봉사가 아님.
한 때에만 믿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때 믿음의 열정과 봉사를 보여주지만, 지금은 주님과 아무 관계도 갖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입니다. 한 때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봉사하고 굉장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전에는 우리와 함께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에게서 나가서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할 때 바로 이런 믿음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요일 2:18~19). 히브리서 기자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히 6:4~6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과거에 잠깐 하나님의 선하심과 말씀과 은혜를 경험하지만, 결국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그것이 한때에 그치는 사람들의 믿음을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본질상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B. 감정이나 감각으로만 믿는 믿음: 체험이나 현상으로 인하여 종교적으로 흥분하고 감동하는 믿음(행 8:13,18~24).
감정이나 감각으로만 믿는 믿음도 역시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체험이나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해 종교적으로 흥분하고 감동할 수 있습니다마는, 믿음이 여기에만 머무른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형태는 복음의 진리와 성경에 대한 관심이 없는 대신에 간증이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들은 늘 들떠있을 것입니다. 뭔가 성령님께서 대단한 것을 말씀하고 계시고 그들은 그것을 보고 들으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마는, 이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면 그들은 진정으로 체험이나 감각적인 현상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향한 목마름으로 성경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저 지나가는 말로 제가 언급하자면 금이빨로 바꾸어주는 집회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간음하는 여인과 같은 불신앙이며 그저 흥분하고 감동할 뿐, 참된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C. 머리로만 믿는 믿음: 신학과 교리에 지성적 접근을 하지만 마음에 아무 감동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믿음.
머리로만 믿음도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이럴 수 있습니다. 신학과 교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공부하고 또 압니다. 성경공부에도 열심히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지성적으로 접근할 뿐입니다. 설교를 듣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그저 성경본문에 대해서 몇 가지를 더 깨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찾아오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설교는 일반적인 강의가 아닙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말하기를, “설교는 사람의 소명 중에 가장 고귀하고 위대하며 영광스러운 소명인데, 그 이유는 설교가 죄인인 인간을 각성시키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전향하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머리로만 설교를 듣고, 머리로만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하는 태도로는 결코 진리의 말씀에 의한,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역사를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처럼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역사를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판단을 받아서 깊은 회개가 일어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D. 의지로만 믿는 믿음: 믿음의 모든 근거가 내가 하는 결심과 열심 그리고 행동에 근거하는 믿음.
의지로만 믿는 믿음 또한 참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모든 근거가 내가 하는 결심, 열심, 행동에 근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과거의 한 순간에 자기가 영접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믿고 있다’는 자기 행위를 주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보여주는 사람들의 경우와 같지 않습니까? 그들도 주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다짜고짜 찾아가서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제게 돈을 빌려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저 일방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결심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믿음을 마치 은행에 맡긴 돈을 찾는 것이고 언제나 퍼올릴 수 있는 물탱크의 물을 퍼올리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경우를 보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오해입니다. 이런 것이 참된 믿음이 될 수 없는 것은 믿음의 인격적 관계의 요소가 결여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은행잔고나 물탱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신성모독적이기까지 합니다.

3. 참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인격적인 관계이다.
참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믿음을 인격적인 관계로 설명합니다.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믿음은 쌍방의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단지 내가 믿는다는 사실만으로 참된 믿음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놀라운 진리는 참된 믿음은 주님이 우리를 믿으시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조금 더 이것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A.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다(요 6:37; 고전 1:24).
참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시는 자들만 주님께로 나아온다고 했습니다(요 6:37).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만이 참된 믿음에 이르며 구원을 얻습니다(고전 1:24). 성경은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 먼저 주님이 우리를 아셨다고 설명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요 15:16). 우리의 믿음이라는 행위 이전에 하나님의 행위가 먼저 있다는 것입니다.

B. 주님께서 우리를 믿어주시는 것이다(요 1:42; 행 9:15).
오늘 본문이 보여주듯이,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님이 그들을 믿어주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은 그들을 믿으셨습니다. 주님은 안드레와 요한에게 ‘와보라’고 초청하셨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요 1:39).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게바’라고 하신 것은 그를 믿으셨고 그의 장래를 바라보셨다는 증거입니다(요 1:42). 빌립에게도 주님은 나를 좇으라고 부르셨습니다(요 1:43). 나다나엘에게는 보다 큰 일을 볼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는 것도 역시 주님께서 그를 믿으셨다는 증거입니다(요 1:51). 나아가서 바울 사도를 부르실 때에도 그가 주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를 믿어주셨습니다(행 9:15). 이런 사람들은 모두가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인격적인 관계는 서로의 믿음의 행위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우리를 믿어주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C. 문을 여시는 분은 주님이시다(마 25:1~13).
늘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는 가장 결정적인 오해는 우리가 문을 주님께 문을 열어드린다고 하는 생각일 것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은 ‘당신이 지금 결정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여기에 요한계시록 3:20에 대한 우리의 오해도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구절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그 안에 임재하실 수 없게 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시지만, 우리가 죄로 더럽혀진 삶을 청산하지 않는다면 결코 그 복된 교제를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복음전도에 사용하라고 주신 구절은 사실 아닙니다. 이 구절이 복음전도에서 사용되면서 우리에게 생기는 믿음에 대한 오해는 마치 우리가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은 들어오실 것이며, 들어오셔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십시오. 문을 열어주시는 분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를 생각해보십시오(마 25:1~13). 열 명의 신부의 들러리들인 처녀들이 있습니다. 그중 다섯 처녀는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신랑의 도착이 늦어졌고 기름이 부족한 것을 안 이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러 나가지만 문은 이미 닫혀버리고 맙니다. 그들은 와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고 소리치지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대답만을 들을 뿐입니다.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참된 신앙은 주님께서 내가 너를 안다고 하시고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4. 주님께서 자신을 내게 의탁하셨는가?
그러므로 참된 신앙의 본질은 내가 믿는다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이 나를 믿으신다에 그 강조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안다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나는 주님을 안다고 하지만, 주님이 모른다고 하시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심판의 날까지 기다려야만 우리의 믿음이 참된 구원하는 믿음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게 될때, 주님께서 우리를 믿으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일을 하십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다”(롬 8:16). 그러나 우리는 구체적으로 주님께서 참으로 자신을 내게 의탁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몇 가지 성경적 시금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A. 자기 자신에 대해서 놀라고 있는가?(딤전 1:12~16; 갈 2:20)
주님께서 여러분을 믿으신다면,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여러분에게 의탁하셨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많이 놀라고 놀라지 않을 수 없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 사도가 고백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12~16에서 바울 사도는 과거에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자기가 이런 긍휼과 은혜를 입어서 복음 전하는 직분을 받았다는 것에 여전히 놀라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자기 인생의 노년에 이르러 이 서신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놀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넘치는 은혜가 아니고서는 자신이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놀랍니다. 죄인의 괴수인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땅에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향해서 너무도 오래 참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는 놀라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갈라디아서에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갈 2:20).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이 그에게는 여전히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자신을 향해서 여러분도 이런 놀라움이 있습니까? 여러분도 이렇게 공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신을 의탁하셨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B. 영적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가?(롬 8:5~6; 고전 2:8~10,16)
두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증거는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의탁하신 자들에게는 영적 이해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말씀입니다(롬 8:6). 참된 믿음은 우리의 눈을 밝게 합니다.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합니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을 위해서 살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보고 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 이해력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이해력이나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성령님이 그 영적 이해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자신을 의탁하고 믿는 자에게는 성령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줄 알고 이해하고 깨닫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것은 단지 지적인 이해가 아닙니다. 영적 이해는 그의 마음에 깊은 성령의 감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이해가 무엇인지를 아신다면 여러분은 주님께서 자신을 의탁하신 자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입니다.

C. 주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 평강, 고요와 만족을 아는가?(마 11:28~30)
주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의탁하셨는지를 확인하는 세번째 시금석은 주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과 평강, 그리고 고요와 만족을 내가 알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어떤 체험이나 현상을 보고서 종교적으로 흥분하고 감동하고 들떠있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들, 주님 안에서 자신을 본 자들은 그 안에서 참된 안식을 경험합니다. 거기에는 참된 평강이 수반됩니다. 그리고 들뜨고 흥분하기 보다는 깊은 고요와 만족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을 초대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마 11:28~30)?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쉼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 앞에서 고요히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바로 주님이 자신을 의탁하신 자들입니다.

D. 주님을 더 알고 싶은 열망, 주님을 향한 갈망,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려는 열망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스스로 물으셔야 할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주님을 더 알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까? 단순히 성경지식을 더 알고 싶고 신학지식을 얻고 싶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자신을 더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분의 자비와 선하심과 은혜를 더 알고 싶으십니까? 그분에게 더 깊은 감동을 얻기를 구하십니까? 그분 자신에 대해서 깊은 열망이 있는가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주님을 향한 배고픔이 있으십니까? 주님을 더 알지 못하면 결코 만족할 수 없고, 주님을 더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고 누리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있으신가 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에게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려는 열망이 있습니까? 주님이 자신을 의탁하신 자들에게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질문들을 정직하게 여러분 자신에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정직한 대답과 함께 말입니다. 참된 믿음은 주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그저 일시적으로 주님을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주님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는, 여러분만이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여러분에게 의탁하시는 참된 믿음 가운데 거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6.06.17 💖사랑하는 마음은 건강을 가져오고 행복을 안겨 줍니다.
    사랑이 꽃피고 행복이 넘치는 웃음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이현채 | 작성시간 26.06.17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 작성자별이야 운영자 | 작성시간 26.06.17 설교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