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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은

작성자Seungho Kang|작성시간12.03.17|조회수92 목록 댓글 5

   제목 : 십자가의 길은(요3:14-21)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쓴 존 번연(John Bunyan)은, 인생과 영혼에 대한 의문이 자기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구원 받기 전 까지는, 이 진리를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분명히 깨닫기 전까지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리라. 아니, 이 문제를 해결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구 어디라도 갈 것이며 무엇이라도 할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결심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존 번연에게 자신을 나타내셔서 깨닫게 해 주셨고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존 번연은 주님을 찾은 그 놀라운 감격을 기록하여 위대한 저서 ‘천로역정’을 남겼습니다.

 

그 책에 나타난 기독교도의 모습은 존 번연 자신의 모습이자 지금도 진리를 찾고 있는 순례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며, 위대한 주의 진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크리스천 곧 기독도라는 주인공이 순례의 여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신실’과 ‘소망’이라는 이름의 두 사람과 만나 함께 길을 가다가, 의미가 없는 헛된 박람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장사꾼들은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물건들을 사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애써 귀를 막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한 장사꾼이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사길 원하십니까?”

이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진리를 사기 원 합니다”

그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진리를 얻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는 것이 아닌 진리를 얻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물질이 아닌인생에 대한 대답을 얻기 원했습니다. 바로 그들은 영광스러운 진리를 얻어서 자신들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십자가의 길에 이뤄지는 두 가지 은혜의 삶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큰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1)십자가의 길은 믿음의 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놋뱀이 모세의 손에 들리워 진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리워 질것이니 이 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것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들어올리어 진 놋뱀의 이야기는 구약 민수기 21장에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압평지까지의 여행중에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반역했고 급기야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민21:5”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어 많은 사람을 죽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그들의 죄를 고백했을 때 모세는 그들을 위해 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민21:8-9 말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 본 즉 살더라”는 대로 되었습니다.

 

설마 뱀독으로 죽어가던 사람들이 놋뱀 자체에 능력이 있음을 믿고 살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린 처방이고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방법임을 믿었기에 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불뱀 때문에 죽게 되었는데 왜 하필이면 불 뱀인가? 어찌 저게 하나님의 방법이겠나? 의심하여 믿지 않은 사람들은 살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되 어떤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어야 우리가 파멸을 면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네..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죄의 제물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늘 깨어 기도하시는 중에 죄가운데 있는 인류가 구원받아야 할 가치가 있어 우러나오는 아가페 사랑으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외아들된 예수 자신을 끔직히 사랑하시되 인류를 사랑하시기에 고통스러워 하시는 것을 아셨습니다. 급기야 예수님은 기도중에 한쪽에 외아들 예수요 다른 한쪽에 인류가 올려진 하나님의 수평저울 추가 인류쪽으로 기운것을 보신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마21:28-31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포도원을 가진 두아들의 아버지가 한 아들에게 가서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예, 아버지 가겠습니다 하고 가지 아니하고 또 한아들에게 가서 그와같이 말하니 싫소이다 하였다가 뉘우치고 아버지의 뜻을 따른 아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요청에 예 하고 예 한 대로 순종하는 아들이었으면 더 좋을것을 이라는 생각 끝에 아! 그 아버지에게 제 3의 아들이 있다면 그가 바로 예수님인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새만금이 이뤄진 동기는 어느 소녀의 믿음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었다. 한 섬에 작은 몇 가구와 어여쁜 교회당이 있었는데 이 소녀는 늘 아버지가 태워준 배를 이용 학교를 오가야 했다. 한번은 목사님의 설교에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이 산 더러 들리려 하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는 말씀을 듣고 기도, 겨울 봄 여름 지나 계속 기도

하루는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목사님과 아빠와 교인들에게 말함...

 

히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말씀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갑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간다 하면서 주님이 십자나무에 달려 죽으심과 그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본문에도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입니다.

 

2)십자가의 길은 영생입니다.

본문 16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인류와 저와 여러분과 우리를 사랑하신 사실적인 결과로 예수님을 죄의 제물로 내어 주셨고 그 예수님을 벧전1: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십자나무에 달려 죽으실것을 말씀하시고 친히 죽으신 예수님을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못 보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인정하고 믿으며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은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고 성경의 약속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가 하면 복음의 절대 공식 믿음의 결과로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그럼 무엇이 영생입니까?

오늘 예배 본문 말씀의 시작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인생문제를 상담하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으로 매우 뛰어난 지위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에게 듣고자 하는 답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사람의 도덕적 책임불멸 육체부활 영의 존재 내세 생활에서 보상과 심판이 있다고 했으니 니고데모의 관심사가 어찌 이세상의 삶의 문제에만 머룰렀겠습니까? 그렇다고 내세의 천당만 그가 관심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고 눅17장 말씀에서는 하나님 나라는 여기있다 저기 있다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우리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눅18장 말씀에 나오는 한 젊은 부자 관원이 예수님께 내어놓는 인생의 고민은 자기가 어찌하여야 영생을 얻을 것인가 였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관원으로서의 명예에다 부자이고 젊기까지 한 사람이지만 진정 그러한것들이 이 사람을 만족하게 해 주었다면 그가 영생을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마셔도 마신것 같지 않고 놀아도 노는것 같지 않은 인생을 지금 살맛나게 살게 해주는 그 무엇, 그리고 내세로 미래로 영속되는 그것이 바로 영생 아니겠습니까?

 

장로회 신학대학 박동현교수님이 독일 유학 후에 나주 우산교회를 시무하다 장신대로 복귀하시는 대 송별회 자리에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생명이란 죽음후의 천당의 삶만이 아니고 어떠한 처지에서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삶이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이를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기를

 

성서에서 생명을 어떻게 말하는가는 생명신학의 전제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신약 헬라어에서 생명을 ‘비오스’라 말할때에 이는 주로 물질적인 존재양식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서 조에 하나님이 원래 허락하신 온전한 삶 구원받은 삶의 상태, 완전한 해방과 행복한 삶이고 재앙을 받지 않는 삶이고 정말 생명이 태어나서 사는 것처럼 사는 삶이라고 합니다.

 

온 몸이 다 망가진 상태에서도 찬미하고 찬송하는 송명희 시인이나 한센병으로 눈과 코와 입 문드러진 몰골을 하고 손가락 없어 두 주먹 부딪치는 장단에다 망가진 목청 쇠소리를 내면서 찬송하는 소록도 교회 교우들이 바로 예수님을 믿고 얻은 생명을 증거해 주는 것 조에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같은 영생을 예수님을 믿는 저와 우리들에게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고후13:5“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는 약속대로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영생을 누리며 사는복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양식이 없으니까? 흙으로 쿠키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합니다. 영양가가 없으니까 그걸 먹어도 영양실조로 죽어갑니다. 이는 마치 생명이 없는 이단들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영생을 경함하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께 의지하고 그를 믿는 일입니다. 요6:47-48“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갑시다. 이 길은 주님을 믿는 길인데 곧 영생의 길입니다. 역경의 열매 sbs 예술단장 김정택장로 “히트곡 제조기”최고 전성기와 함께 온 허무함.. 70-80년대 전영록의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 심수봉의 미워요, 현숙의 정말로, 한전도사님의 물음..단장님 요즘 지내기가 어떠세요.. 그저 죽지 못해 살고 있지요. 뭐.. 비가 쏟아지는날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감까지 들었다..결국 주님을 찾고 믿어 지금의 영생의 복을 누리며 간증하러 다님..

 

십자가의 길은 영생의 길입니다. 이제는 주와 함께 믿음의 길인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 영생의 복을 누리는 역사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길을 갑시다.. 십자가의 길은 믿음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영생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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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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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love is | 작성시간 15.11.24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 작성자(一麥.) | 작성시간 16.01.04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장미화 | 작성시간 16.07.11 자료 감사합니다.
  • 작성자별이야 운영자 | 작성시간 18.04.19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 작성자요게벳~! | 작성시간 22.01.21 설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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