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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2강)*시험
야고보서 1장2-4절 / 신윤식 목사
➤<성경>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다 기쁨으로 여기라. 3. 너희 믿음의 단련이 인내를 이루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4. 오직 인내를 완전히 이루라. 이것은 너희가 완전하고 완벽하여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KJV)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흩어진 열 두 지파는 하나님이 세상에 세우신 참된 이스라엘은 힘있는 강한 존재가 아니라 약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약자보다는 강자가 되기를 원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세상에서 힘 되는 것을 구하는 것인데, 정작 하나님의 뜻은 강자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약자로 살아가는 것에 있다는 것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이러한 뜻 앞에서 신자는 힘 있는 자가 되고 싶어 하는 모든 욕망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신자에게는 큰 갈등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신자에게 시험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다 기쁨으로 여기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 역시 우리를 난감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든 시험이라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안하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의 사고방식이 성도에게는 시험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험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세상은 힘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돈이 힘이고 권세가 힘입니다. 그리고 힘없는 자는 자존심 상하면서도 굴복해야 하고 업신여김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신자를 약자로 부르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약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시험되는 일이 없겠습니까? 결국 세상이 추구하는 힘이 신자에게는 시험거리가 되는 것이고, 자신도 힘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가고 힘을 얻기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들이 바로 시험에 빠진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험을 참고 견디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힘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결말을 내다보면서 힘이 진리가 아님을 아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이 힘이 아니고 권력이 힘이 아님을 알고 생명의 나라에 진정한 힘으로 발휘되는 그리스도의 의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시험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믿는 자로 살고자 할 때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예수님을 이용해서 세상의 힘을 얻고자하는 방식으로 산다면 시험이 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내게 시험이 된다는 것은 곧 내 마음의 소망이 세상에 있기보다는 하늘에 있다는 흔적이며 그것은 성령의 간섭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신자는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신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인내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힘을 모아서 세상을 개혁하려고 하는 것조차도 시험에 빠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개혁하겠다는 것은 곧 내 마음에 드는 세상으로, 믿는 자에게 유리한 세상으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유혹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에는 세상을 바꾸시겠다. 거나 개혁해서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오직 내어버려두심으로써 악을 쌓게 하는 것이고, 때가 되면 그 악으로 인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인내만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이 힘을 추구할 때, 그 힘으로 인해서 약자가 무시 받고 괴로움을 받는다고 해도 힘의 결말을 알기에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만약 힘으로 사는 세상의 방식이 부러워지고 그 힘을 소망하게 된다면 그것은 인내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 2장15-16절을 보면 “15.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처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일 뿐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믿음은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받을 뿐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신자 역시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환경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믿음만을 고집하고 살아가는데 시험이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만약 시험이 없다면 그 이유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는 아예 세상으로부터 유혹을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정욕과 자랑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입니다. 또 하나는 아예 정욕과 자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자의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고, 후자의 사람은 성도가 아닙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정욕과 자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천국을 얘기하면서도 세상이 사는 것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힘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불평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시험이며, 이런 시험에서 하나님은 신자를 간섭하심으로써 세상의 힘이 결코 힘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의로움을 힘입는 믿음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간섭을 세상에서 받는 시험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성도에게는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성도가 시험을 만나고 믿음의 시련을 겪을수록 그 마음에 더욱 분명하고 선명하게 새겨지게 됩니다.
시험을 만나면서 끊임없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우리의 불의한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고, 불의함을 확인할수록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의 심중에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련, 시험이야 말로 신자로 하여금 십자가만을 소망하고 살아가는 인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4절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도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것. 즉 십자가만을 소망하는 것이야 말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하여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정욕과 자랑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의 심령을 지키심으로써 주님만을 소망하게 만드십니다. 이처럼 주님만 소망하는 것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상태로 여김 받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가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해야 할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인내하기 위해서, 온전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흔히 교회 공동체에서 ‘시험을 이기라’
‘인내하라’는 말을 하지만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시험을 이기고 인내할 수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시험을 이길 힘을 주시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면 힘을 주신 후에는 성령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세상은 인간의 능력을 믿습니다. 인간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능성은 스스로 선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까지 가능하게 해버립니다.
하지만 믿음은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의만 신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저한 약자의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성도는 주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만 바라는 것이 인내입니다.
이 인내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안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주님이 오신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사는 것으로 인해서 어떤 영향도 받지 마시고 주님이 오셨을 때를 기억하며 십자가만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돈으로 사는 세상을 오히려 우습게보면서 마지막 때 무엇이 참된 힘인가? 보여줄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